많은 CEO가 두려워하게 된 엘리베이터가 있다. 바로 맨해튼 중심가의 화려한 뮤지엄 타워 레지던스 호텔 엘리베이터다. 최근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이 호텔에 도착한 ‘패밀리 달러 스토어’의 CEO 하워드 러바인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흰 장갑을 낀 엘리베이터 운행직원이 러바인의 목적지인 51층 펜트하우스 버튼을 눌렀다. 그곳에서 러바인을 기다리고 있던 인물은 칼 아이컨이었다.

강력한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아이컨 엔터프라이즈의 설립자인 아이컨은 패밀리 달러의 주식 9.4%를 매수했다고 공표했다. 그는 패밀리 달러 본사에 있던 러바인에게 전화를 걸어 비행기를 타고 건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러바인 이전에 아이컨을 만났던 다른 CEO들(애플의 팀 쿡에서부터 체서피크 에너지의 전 CEO 오브리 매클렌던, 모토로라 솔루션의 그레그 브라운에 이르기까지)처럼, 러바인도 행동주의 투자자가 주도하는 ‘궁극의 의례’에 초대받은 것이었다.

월가 최고의 투자자가 자신의 최근 투자대상을 초대해 향후 어떻게 할지를 세세하게 코치한다? 러바인은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컨이 러바인에게 사업을 매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바인 집안이 55년간 가업으로 경영해온 회사를 운영을 더 잘하고 규모도 더 큰 경쟁업체 ‘달러 제너럴’에 넘겨야 한다고 압박한 것이었다. 러바인은 달러 제너럴로의 매각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업 회생을 위한 훌륭한 계획이 있음을 강조했다.

아이컨은 그의 말을 단칼에 끊었다. “변명은 그만! 당신 어머니나 그런 변명을 들어주겠죠”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러바인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이컨이 CEO를 대할 때 보이는 다양한 태도에 대해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거친 태도 중간 중간에 수준 높은 유머가 섞여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최근 몇년 동안 미국 비즈니스계에서 행동주의 투자자의 부상보다 더 큰 이슈는 없었다. 앞서 언급한 저녁 식사 에피소드는 행동주의 투자자(아이컨을 비롯한 소수의 억만장자)가 지닌 막대한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회사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래협상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CEO들이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다.

패밀리 달러 스토어를 둘러싼 경쟁은 이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전투였다. 명망 있는 월가의 투자자들이 나섰고 과감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금융가 큰손들이 서로 맞섰다. 사실 지금은 헤지펀드가 끝없이 더 높은 목표를 세우며 잘나가고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새천년 이후 가장 뜨거웠던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전쟁이 저소득층 고객에게 99센트짜리 칫솔이나, 2달러짜리 세제 따위를 파는 저가 매장업체를 두고 벌어진 것이었다.

여기서 우린 행동주의 투자자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확실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기업 CEO라면 어떤 형태로든 행동주의 투자자를 상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싸움은 결국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귀결됐다. 저가 매장업체의 신참이라 할 수 있는 달러 트리 스토어가 패밀리달러와 인수합병하면서 새로운 강자가 된 것이다. 달러 트리는 약 1만3000개의 매장과 함께 25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됐다. 그렇게 되면 근소한 차이로 달러 제너럴을 따돌리고 저가매장 최대 체인업체가 된다. 동시에 저가제품을 찾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월마트를 대신할 대안이 될 것이다.

저가매장 주요업체인 달러 제너럴과 패밀리 달러는 ‘저가매장’이라 불리지만, 사실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대가 보통 1달러에서 20달러 사이다. 집안 살림을 꾸려가며 몇가지 제품만을 구매하는 여성들이 주요 고객이다. 크로거나 월마트를 일주일에 한번 정도 방문하고, 그 사이 저가매장에 들러 화장지나 6개들이 콜라 등을 구매하는 것이 그들의 구매 패턴이다. 수십년 동안 달러 제너럴과 패밀리 달러는 저가매장 업계의 코카콜라와 펩시 같은 존재였다. 현재 달러 트리는 전통적 사업방식을 고수하며 모든 제품을 1달러 이하에 판매하고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의 여파로 수천만명의 신규 고객들이 저렴한 생필품을 구매하고 있다. 저가 매장 업체 세곳은 각각 매년 수백개의 신규 매장을 열기 시작했다. 2005년 말 당시 모두 합쳐 1만6753개였던 달러 제너럴, 패밀리 달러, 달러 트리의 매장 수는 약 50% 급증하며 현재에는 2만5340개에 이르고 있다. 매장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월가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저가 매장의 호황기다. 이 세 업체들을 두고 인수합병이든, 매각이든 투자자들과 CEO들의 피말리는 투자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 글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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