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제

중국 춘추시대 때 이야기다. 초나라의 장왕이 진(晉)나라 군대를 굴복시켰을 때 장군 자중이 세번이나 장왕의 지혜를 따르지 못했다. 그러자 장왕이 밥을 거르며 한탄했다.

“내가 들으니 한 임금이 어질고 곁에 스승이 될 만한 신하가 있으면 패왕이 될 수 있고, 임금이 중간 정도의 지혜가 있고 스승이 있으면 왕이 될 수 있고, 임금도 못 났고 여러 신하도 임금만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지금 나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임금인데 신하조차 나보다 못하니 나는 우리가 망하지 않을까 참으로 두렵다. 천하에는 성인들이 끊임없이 나타날 것이고, 나라에는 현자들이 끊임없이 있을 터인데 나 홀로 현자를 얻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밥을 넘길 수 있겠는가?”

초 장왕은 춘추5패 중의 한 사람으로 그 시대를 주름잡던 위대한 군주였다. 초 장왕은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일면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삼년불비(三年不飛)’라는 고사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왕의 자질을 갖춘 군주가 3년 간 환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그를 아끼는 신하들이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 신비로운 새’에 그를 비유해 깨닫게 했던 고사이다. 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환락과 방탕에 빠져 있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 탁월한 능력과 재능을 드러내며 멋지게 등장하는 장면은 우리가 잘 아는 전설적인 영웅담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 장왕은 이와 같이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 한 나라의 왕을 넘어 패왕까지 됐던 카리스마와 함께 겸손함을 겸비했고, 공명정대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인물이었기에 다른 나라의 오래 전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친근감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위의 고사에서 초 장왕은 겸손한 자세로 진정한 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가에서 좋은 일이 있을 때, 특히 자신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뤘을 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교만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초 장왕은 자신의 지략과 계책으로 진나라 군대를 굴복시키고도 자만하지 않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특히 자기보다 못한 신하를 혼내고 지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군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성인은 일이 잘 풀려나갈 때에 더 경계해야 한다(聖人爲戒, 必於方盛之時)”라는 <근사록>의 말이 있다. <좌전>에 실려 있는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 생각하면 대비할 수 있고, 대비하면 환란을 피할 수 있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도 가장 편안하고 안전할 때 반드시 위기를 대비하라는 가르침이다.

장왕은 최고의 순간에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의 경각심을 자극해 이끌어가는 지도자도 훌륭하다. 하지만 모두가 승리에 도취하는 순간, 위기를 감지하고 장래를 걱정하는 인물은 그보다는 몇수 위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위협, 사드로 인한 외교 및 경제마찰, 전임 대통령의 탄핵 등 누란의 위기상황에서 진정한 지도자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천년의 내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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