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 ‘탈 석유’ 빨라지는 지구촌

 

정치색을 떠나, 점점 더 많은 세계 최고 부자들이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승부를 걸고자 의기투합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분야에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워드 맥널리도 처음부터 친환경 기술의 지지자가 될 생각은 아니었다. 160년이 넘은 여행기업 랜드 맥널리의 창업자 5대손인 그는 1997년 가문의 비즈니스를 매각하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맥널리는 현재 부자들에게 사모 펀드 투자에 대해 조언해주는 시카고 회사 맥널리 캐피털의 공동 창업자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돈이지, 환경 보존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석유로 큰돈을 번 한 억만장자가 고민을 안고 그를 찾아왔다. 그 고객은 가족의 핵심 수입원인 화석연료의 위험을 상쇄하기 위해 친환경 기업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 억만장자는 지식이 부족해 스마트 그리드 인프라와 태양열 그리고 풍력 발전 같은 분야에서 예리한 투자 결정을 하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그는 시간과 비용을 직접 투자해 대규모 전문가 팀을 꾸리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맥널리는 그 순간 갑자기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억만장자들이 지식과 자금을 공유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투자 기회를 공유할 수 있도록 친환경 투자자 네트워크를 만드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몇달 후 맥널리는 ‘친환경기술조합’(the Clean Tech Syndicate)이라는 단체를 출범시켰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이 투자 그룹에는 그를 비롯해 친환경 기술 분야에 투자하고자 하는 11개의 가족 자산 운용사들(석유 부자들도 합류했다)이 참여했다. 이 가문들의 순 자산 총액은 무려 600억달러에 달한다. 현재까지 이 조합은 친환경 기술에 14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맥널리에 따르면 이미 투자한 돈도 수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친환경기술조합은 에너지금융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최신 트렌드 중 한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 트렌드란 미국 최상위 부자들이 친환경 기술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기후변화를 막는데 자신의 재산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다.

또 누군가는 이것이 21세기의 가장 큰 투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이 두가지 이유 모두 때문에 투자를 진행한다. 동기야 어쨌든, 이들은 모두 큰 수익을 기대한다. 최상위 부자들의 청정에너지 투자가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수년간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리처드 브랜슨 그리고 억만장자 헤지 펀드 매니저 톰 스테이어 등 일부 유명 기후변화 운동가들이 주로 자선활동을 통해 청정에너지를 지원해 왔다.

규모는 작지만, 점점 더 많은 억만장자가 비공개로 청정에너지 기업과 프로젝트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며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가 수년 안에 저탄소 경제로 이행할 것이라는 거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한다.

미국 서부의 심각한 가뭄이나 중국의 지하수면 감소가 보도되는 상황에서, 폐수 정화용 나노기술 필터나 에너지 효율적인 바닷물 담수화 기술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공익사업, 자동차, 조명, 물 그리고 식품을 비롯한 많은 에너지 관련 산업도 비슷한 기술혁신을 맞이할 시기가 됐다.

그러나 거대 석유업체들도 에너지 혁신에 그다지 열정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는다. 친환경 에너지의 잠재적 영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석유 회사 CEO들은 약 27조달러의 화석 연료가 아직 땅속에 매장돼 있기 때문에 에너지 경제의 어마어마한 셈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 수요 연구를 위해 일단의 유능한 애널리스트들을 고용하고 있는 엑손 모빌은 2040년이 돼도 전 세계가 화석 연료에서 에너지 수요의 75%를 충당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현재 에너지 시스템이 얼마나 크게 발전했는지, 저렴하고 믿을 수 있는 에너지에 전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중독됐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하루에 9300만배럴의 석유를 태우고, 개도국에서도 석탄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들은 꾸준히 석탄공장을 짓고 있다.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억만장자들에게 거대 석유업체라는 기득권 세력이 틀렸음을 증명할 방법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가격과 효율성 면에서 화석 연료에 버금가는 청정에너지기술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에너지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방법은 더 많은 최상위 부자들이 음지에서 나와, 자신들이 하는 일과 명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들이 청정에너지 투자로 더 큰 부를 쌓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청정에너지 투자는 큰 인기를 얻게 될 것이다.

 - 글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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