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훈(ASE코리아 본부장)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불과 몇주만 지나도 숲속이 아니라면 오래 걷기에 그리 좋은 여건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가능하면 점심 후 직원들과 잠시 산책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동네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는데 회사 앞도 예외는 아니다. 가끔 들러 에스프레소 커피나 최근 돌풍을 일으킨 ‘얼음 따로 음료 따로’를 사기도 한다.

그 동안 A가 단골 편의점이었다. 점주가 신규 에스프레스 장비도 도입했고 초기 투자 금액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 본사와의 계약에 따라 물건 단가도 낮췄다는 말도 했다. 편의점의 유일한 약점인 가격 경쟁력에서 타점포에 앞서는 듯했다.

또 다른 편의점 B도 같은 산책길에 있는데, 다른 팀 직원들의 단골 가게였다. 분명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것도 아닌데 그 비결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내 한가지 비결을 알 수 있었다.

얼음 따로 음료를 샀는데 4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여직원이 쓰레기통을 못 찾는 필자의 빨대 비닐 커버도 대신 버려주고 컵도 흔들어 뭉친 얼음을 컵 내에서 골고루 퍼지게 했다. 게다가 음료수를 컵에 부어주는 서비스도 하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양도 못했다.

아마 필자가 처음 산 것이라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1000원짜리 음료를 산 손님에겐 과분한 친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친절이 모든 손님에게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매출에 크게 기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른 편의점에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신의 점포에서 구입도 하지 않은 타이어를 두말없이 교환해 줬다는 노드 스트롬의 서비스 신화가 떠올랐다.

최근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대형 건물에 갔다가 T물산이 건재한 것을 보고 놀랐다. 섬유 제조업과 무역업을 하던 중견 기업이었는데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신혼 초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이 T물산의 임원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건설과 섬유, 전자, 화학을 주력 업종으로 하던 기업이 30대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강한 기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생존한 기업이 강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몽골이 세계의 제국으로 도약하기 전 극복해야 할 첫 관문은 호레즘 제국이었다. 호레즘 제국은 지금은 생소할 테지만 몽골 제국 이전에 234년이나 지속한 제국으로 현재의 이란 전역,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해 북으로는 아랄 해와 카스피 해 동부와 남부를 아우르는 대 제국이었다.

호레즘의 군사력 역시 기병을 주축으로 하는 유목민족으로 군사력에서는 결코 몽골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몽골은 나폴레옹이나 한니발이 그랬듯 상식을 뛰어넘는 발상으로 상대의 허를 찔러 승리를 거머쥐었다.

탕평이라는 말이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지만, 산술적인 인사의 안배보다는 능력과 덕망, 서번트 리더십을 갖춘 사람들이 대우받는 시대가 와야 한다. 엉터리도 살아야 하지만 엉터리가 행세하고 주류가 되는 세상에선 미래가 없다.

세계 업계를 호령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선 엉터리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상념에 잠기며 걷다 보니 어느덧 회사 정문으로 되돌아 왔다. 우리의 노후와 후손들의 잔치를 위해 다시 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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