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박부품 제조업체 A사는 단가협상을 할 때면 대기업 구매담당자로부터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받고, 사정 반 협박 반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강요받는다. 다른 계약조건에 대해서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가 없다. 결국은 해달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다.

#2의류잡화 부자재 제조업체 B사는 대기업으로부터 단가 인하를 위해 연매출에 육박하는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자금 지원은 없다. 장비가 좋아지면서 생산비는 절감이 되지만 이에 따른 이익은 대기업의 몫이다. 아울러 B사가 견적서를 작성해 대기업에 제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기업이 견적서를 작성해 B사에 전달하는 방식이 오래 전부터 유지되고 있다.

#3자동차부품 제조업체 C사는 매년 3%의 단가인하를 조건으로 대기업과 계약했다. 단가인하의 여력은 제한돼 있는데 계약기간이 끝나면 거래보장을 전제로 계속 단가인하를 요구한다. 자동차의 경우 한번 개발되면 10년씩 생산하는 것도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부품의 경우 단가가 안맞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대기업들이 중소제조업체들과 납품단가 협상에 있어서 일방통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당 단가결정에도 협력업체 10곳 중 6곳은 별다른 대책 없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는 납품단가 협상이 연초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해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하도급거래 부당 단가결정 애로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中企 35% “일방적으로 정한 뒤 합의 강요”
조사결과 납품단가 협상시 대기업의 일방통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 단가결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업체 중 34.9%가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단가를 결정한 후 합의를 강요했다고 응답했다.

지속적인 거래관계 보장을 전제로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결정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23.3%였다. 대기업이 부당하게 단가를 결정하는 이유는 과도한 가격경쟁(58.1%), 경기불황(14.0%), 업계관행(11.6%)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납품단가 협상은 1월(50.6%), 12월(14.9%), 3월(11.9%)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협상주기는 수시(50.3%)로 협의하거나 1년 주기(40.3%)로 조사됐다. 업종별로는 조선업종이 타 업종에 비해 1년(61.4%) 마다 협의한다는 비율이 높았다.

전체 조사대상 업체의 14.3%가 부당 단가결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58.1%)은 ‘거래처의 가격경쟁에 따른 원가 인하 전가’를 경험했다고 했다. 이는 지난 2015년 중소제조업체 400개사를 대상으로 한 같은 질문에서 나타난 응답률 5.5%보다 높다.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음에도 사라지기는커녕 늘어난 셈이다.

업종별로는 조선업종이 19.3%로 가장 높았으며, 전기·전자(15.9%), 자동차 (13.3%) 순으로 조사됐다. 조선업종의 경우 노무비가 원가구성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정확한 납품단가 산정이 어렵고,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조선업종의 불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제조공정 개선으로 대응’은 9% 그쳐
특히 협력업체들은 부당한 단가결정에도 ‘별다른 대책 없이 수용’(62.8%)하는 경우가 많아 대기업의 가격경쟁에 따른 부담이 협력업체로 전가돼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기업의 요구에 따라 납품단가는 속수무책 내리고 있는데, 물가 등이 올라 납품단가 인상요인이 발생해도 반영되지 않는 것. 인건비도 오르고, 전기요금이 올라도 이는 고스란히 중소기업 부담이다. 납품단가를 올려야 하는 사정이 생겨도, 대기업과의 갑을 관계 때문에 중소기업은 이렇다 할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재료비 절감(저가 원부자재로 교체)을 통해 부당 단가결절에 대응한다는 업체는 14.0%에 그쳤다. 제조공정 개선을 통해 대응하는 업체도 9.3%로 많지 않았다. 제조원가를 구성하는 요소 중 인상요인이 있음에도 납품단가에 가장 반영이 되지 않는 항목은 노무비(47.9%)이고, 그 다음은 재료비(38.7%)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자유로운 납품단가 조정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이유로는 ‘거래처의 우월적 태도’가 33.3%로 가장 높게 조사됐다. 다음으로는 ‘납품단가 인상 가능성 희박’(29.3%)‘보복(거래단절, 물량감소 등) 우려’(20.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결정하는 행위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업체가 바라는 정책방향은 ‘자율적인 상생협약 유도’(45.3%) ‘판로다변화’(19.0%)‘모범 하도급업체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19.0%) 순으로 나타났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납품단가 협상이 많이 이뤄지는 연말·연초에 공정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며 “대기업은 일방적인 단가 인하보다는 공정한 방법을 통해 협력업체와 함께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납품단가 조정 신청이 실제 반영되도록 제도 손질해야
한편 정부는 대기업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에 임금 인상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는 엄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6일 하도급 업체의 납품단가를 결정할 때 최저임금의 인상 등 노무비 변동분도 반영하겠다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보고했다.

이한주 국정기획위 경제1분과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그동안 하도급 납품단가 결정 시 원자재 가격 인상은 반영하게 돼있다”며 “앞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무비 변동이 있을 경우도 납품단가 조정 대상에 포함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이 같은 방안이 중소기업의 요구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가다. 대기업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는게 중소기업계의 시각이다.

지난 1월 발표된 중소제조업 하도급 거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조원가가 상승한 업체는 52.0%지만, 납품단가가 인상된 업체는 12.8%에 그쳤다. 현재 원재료 상승에 대한 조정신청권이 법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이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하도급법 제16조의2에는 ‘원재료의 가격 변동에 따른 하도급대금의 조정’에 따라 ‘원재료의 가격변동’에 대해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나아가 개별 수급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을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회원사를 위해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신청’과 ‘협의’에 그칠 뿐, 반영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협의과정에서 하청업체의 신원이 드러나고 이를 계기로 거래단절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무비 변동 시 하도급 업체의 납품단가 조정요구권을 인정하는 방안 추진을 논의중이다. 원재료 가격변동에 따른 조정신청권을 노무비까지 확대한 것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기존과 같은 수준의 입법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표준계약서에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치를 사전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건비 뿐만 아니라 전기료 등과 같은 경비부분도 협의 대상에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납품단가 현실화가 대·중기 임금격차 해소 ‘열쇠’
중기중앙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 최저임금은 각각 7.1%, 8.1%, 7.3%가 상승했지만, 최저임금이 납품단가에 반영됐다는 중소제조업체는 57.1%에 불과했다.

인건비가 오름에따라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한다면, 중소기업은 임금을 올릴 여유가 생기고 이로 인해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도 일정부분 줄어들 수 있다는게 중소기업계의 시각이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고발을 하면 나중에 보복을 당한다”며 “보복 금지 강화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관련 조치로는 대기업이 협력사에 단 한번만 보복해도 최대 6개월간 공공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있다. 지난달 18일부터 시행됐는데 아직까지 제재 사례는 없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중소기업학회장)는 “불공정 행위를 못 하게 막는 것보다 기업이 잘하도록 유인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협력업체와의 관계 점수 등이 포함되는 동반성장지수에서 높은 등급을 받은 기업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성과공유제도가 보다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감시·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잘하는 기업은 관급공사 입찰 때 가산점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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