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포커스] 삼성의 조용한 행보

삼성그룹은 대외적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일에 열렸던 ‘신경영선언’이 24주년을 맞았지만 별다른 행사 없이 조용히 보냈다. 사실 지난 201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기념행사를 열지 않고는 있지만 의례적으로 해왔던 축하만찬, 사내방송 등 기념행사는 진행하지 않았고, 사내 인트라넷에도 이와 관련한 축하메시지도 올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영선언은 지난 1993년 6월7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들을 모두 불러 혁신을 강조하며, 새로운 삼성의 경영 비전을 제시한 중요한 날이다. 이때 이건희 회장이 말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아직도 삼성의 혁신을 이야기할 때 언급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서 지난 1일에 개최된 ‘호암상 시상식’에는 관례적으로 참석했던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불참한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됐다. 제27회를 맞은 호암상 시상식은 과학, 공학, 의학, 예술, 사회봉사 등 각 분야 수상자들에 순금메달과 상금을 전달하는 행사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대부분 참석했고, 정부에서도 국무총리가 함께하며 수상자들과 만찬을 하는 등 성대한 행사였다. 올해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등 주요 계열사 대표들만 자리를 함께 했다. 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이 오너 행사의 호스트가 된 모양새다. 삼성그룹에게 있어 이병철과 이건희라는 두 거목을 기리는 6월 행사가 이렇듯 조용한 것은 관련 행사가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삼성그룹은 지금 ‘침묵의 경영’에 빠져 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향방은
삼성이 침묵의 경영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이병철, 이건희에 이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이제 막 쥐려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큰 이유는 삼성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라고 할 수 있는 삼성 미래전략실이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따라 해체가 되면서 올해 자체 행사가 간소하게 열리게 된 것이다.

지금 삼성이라는 커다란 배는 선장을 잃은 꼴이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의 무죄 입증만이 그룹을 정상화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란 것을 안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죄 재판 상황은 어디까지 왔을까?

이 부회장의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결국 대가나 부정한 청탁을 한 정황이 입증돼야 할 것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1차 독대한 2014년에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다지만, 삼성은 합병 이후인 2015년 7월에 최순실 측근인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를 통해 알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을 언제부터 알았느냐가 뇌물죄 입증에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특검이 주장하는 2014년의 주장과 증거가 재판부에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다. 애초에 특검은 삼성과 관련해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자신감을 보였었다. 하지만 재판 분위기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리 흐르고 있다. 

삼성 재판과 관련해 증인들이 결정적인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공판에서는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진술조서가 잘못됐다”고 언급했는데, 공정위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서 순환출자 고리가 새로 생기자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때 처분한 지분을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주는 과정에 청탁이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김학현 전 부위원장은 최상목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이 삼성물산 지분 처분에 대한 공정위 검토를 제대로 해 달라는 식의 민원성 전화를 넣었다고 특검에서 진술했었다. 그런데 이번 법정에서는 해당 진술을 자기가 하지 않았고, 검사가 본인의 생각을 자신의 진술인 것처럼 적었다고 진술을 바꿨다. 김 부위원장의 진술은 삼성과 청와대, 그리고 공정위로 이어지는 청탁의 연결고리를 완성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결국 특검의 결정적 한방이 변수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선고는 언제 나올까? 원래는 지난달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자꾸 미뤄지면서 오는 8월 정도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는 특검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기소된 때는 2월 28일이었다. 구속만기일인 6개월 안에 재판을 끝내려면 8월27일전까지는 1심 선고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1심 선고가 구속만기일을 넘기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이 부회장을 석방해야 한다. 그리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검찰이 작정하고 구속시킨 피고인을 불구속 상태로 만들면서 재판을 이어간다면, 분명 여러 가지 부담이 가중되리라 예측된다. 그래서 결국 검찰은 이 부회장의 1심 선고를 8월 안에 나올 수 있게 일을 진행하리라 보여진다.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어떻게 이야기하면, 삼성그룹의 오너가 구속되면서 삼성전자와 같은 초우량 회사가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일 수 있다. 실제로도 최근 삼성전자의 외국인주주 비중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최근 그 비중이 54%까지 다달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만 해도 50%선을 유지해왔다.

삼성전자 주식 중 우선주는 외국인 주주 비중이 상당하다. 그동안 70%대를 유지하다 최근 84% 정도로 늘어났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현금배당 등에 더 우선순위를 확보하고 있는 주식이라서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것 같다.

오너의 구속수사라는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8% 가까이 급등하고 있고, 신고가 행진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1주에 225만원~230만원 안팎으로 거래되고 있는데, 국내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최대 300만원으로 내놓고 있다. 외국 투자기관들은 이 보다 높은 330만원까지 제시하는 분위기다. 외국인 주주들이 매수행렬에 동참할 동기부여가 큰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외국인 주주들이 주가상승을 이끌고 있는 것은 오너 리스크에 빠진 삼성전자에게 큰 호재일 수 있지만, 다른 편으론 삼성 오너가의 우호지분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면서 경영권 방어에 힘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계획을 철회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재벌개혁이 가속화된다면, 앞으로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과 경제민주화법안 등으로 인해 외국인 주주의 비중은 더 높아지는 상황이 뻔해 보인다.

삼성그룹은 이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거센 공격을 받으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외국계 대주주가 다시 삼성의 경영권을 노려 비슷한 공격에 나선다면, 이를 쉽게 막아낼 원동력은 이전과는 사뭇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짚어볼 것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일 것이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대기업의 상호출자제한기업(대기업)집단 규제 및 지배구조 개편은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과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는 7개의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졌는데,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이 과거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고 판단하는 것이 정부이기 때문에 삼성은 순환출자 해소 이후 점진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선고가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 삼성그룹이 주식시장, 자본시장에서 자신만의 길을 걷느냐 못 걷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올 여름은 삼성에게 아주 뜨거운 계절이 될 것이다.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