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춘-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흔히 요즘을 ‘규범의 혼돈’(chaos of norm) 시대라 부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그렇다. 각국의 이기주의와 보호주의로 2차 대전 이후 ‘자유무역’을 목표로 지향해 왔던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WTO(세계무역기구)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GATT·WTO 체제를 주도했던 미국이 이탈한다면 다른 국가가 지키기는 더 어렵다.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파리기후협약 등이 미국을 배제한 차선책이 논의되고 있으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제적 실리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그레샴의 법칙’(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심화됨에 따라 일본에 이어 ‘트리핀 딜레마’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국제 유동성과 달러 신뢰성 간 상충관계를 말한다.
규범과 체제가 흔들리면 관행과 경륜에 의존해야 혼돈을 바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아웃사이더 전성시대’(outsiders’time)다. 세계경제 최고단위인 주요 20개국(G20) 독일 정상회담만 하더라도 트럼트 미국 대통령,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데뷔 무대였다.
규범과 관행에 의존하지 못함에 따라 세계경제는 더 혼돈에 빠지고 있다. 올해로 ‘불확실성 시대’(케네스 갤브레이스)가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초불확실성 시대’(배리 아이켄그린)에 접어들었다. 이전보다 커진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긍정)과 부(否·부정), 부(浮·부상)와 침(沈·침체)이 겹치면서 앞날을 내다보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이다.
초불확실성 시대가 무서운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큰 변화’(big change)가 온다는 점이다. 규범과 관행에 의존하다보면 과감한 개혁과 혁신을 줄 수 없어 ‘작은 변화’(small change)만 생긴다. 하지만 의존하고 참고할 만한 규범과 관행이 없으면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개혁과 혁신을 생존 차원에서 추진할 수밖에 없어 어느 순간에 큰 변화가 닥친다.
‘뉴 앱노멀·빅 체인지’ 시대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리스크 관리’다. 일등기업이 됐다고 승리에 도취돼 있으면 곧바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걸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배치 보복을 앞두고 면세 사업권을 따내 성공을 자축했던 국내 백화점 업계가 지금은 텅 빈 매장으로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지속 가능한 흑자경영’은 모든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은 성장 동력을 개발하고 고객가치 창출과 전략을 설계하고 경영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해야 한다. 하지만 베인 앤 컴퍼니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이 목표를 달성해 생존한 기업은 10%도 채 못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전에는 지속 가능한 흑자경영 달성에 실패하는 것을 시장점유율 하락, 경쟁 격화, 기술진보 부진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서 찾았다.
하지만 뉴 앱노멀·빅 체인지 시대에는 오너십 약화, 의사결정 지연, 현장과의 괴리 등 내부요인에 더 문제가 있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초창기 왕성했던 임직원의 주인의식이 약화되면서 ‘승자의 저주’에 빠지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 기업은 ‘저성장 늪’에 빠져 성장 미래를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성장둔화 요인을 중국 추격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 ‘스스로의 도피’다.
기업 내부적으로 창업자 정신에 기반해 조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지, 철저하게 현장 중심적 의사결정과 사고체계를 갖고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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