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실려 있다. 원문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이다. 흔히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알고 있는데 손자병법에는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것을 최선이라고 알고 있지만 손자병법에는 무조건 이기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손자가 활동하던 춘추시대는 수많은 나라들이 치열하게 전쟁하던 시대였다. 만약 적과 싸워 승리한다고 해도 자신도 큰 피해를 입는다면 다른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손자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다음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번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험에 빠진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정보전에 실패해서 적을 알지 못하면 상대와 한번씩 승패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적은 물론 나 자신도 몰라서 싸울 때마다 위험에 빠진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전쟁을 하려고 나선 군대가 어떻게 자신도 모를 수 있을까?
하지만 전쟁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의외로 스스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 성격과 기질은 물론 능력과 가능성도 제대로 모른다. 사람들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데는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 두가지가 바로 자기 비하와 자만심이다. 자기비하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자만심에 빠질 때 사람들은 스스로를 냉철하게 보지 못하게 되고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옛날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고 다녔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도 ‘스스로를 알라’는 가르침이 많은 고전에 실려 있다.
<한비자>에는 “지혜의 어려움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는 데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실려 있다. <도덕경>에서도 “남을 아는 것은 지식이지만 스스로를 아는 것은 현명함이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지만 자신을 이기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다”라고 했다.
공자도 제자들과 이에 관해 대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공자가 “지혜로운 자는 어떠하며, 어진 자는 어떠하냐?” 묻자, 자로가 대답했다. “지혜로운 자는 남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도록 하며, 어진 자는 남으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도록 합니다.”
자공은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알고, 어진 자는 사람을 사랑합니다”라고 했고, 안회는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알고, 어진 자는 자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세명의 제자 중 안회를 가장 훌륭한 군자로 인정했다. 즉, 사람을 아는 것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아는 것은 자기 성찰의 자세이며 진정한 자존감을 지닌 상태이다. 또한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은 높은 가치관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게 된다.
모든 관계의 출발은 자기 스스로를 알고 사랑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 《천년의 내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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