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계속돼 온 국내기업들의 산업시설 해외이전이 최근 위험수위를 넘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까지 훼손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중소기업청,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3개 기관은 지난달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간 7명의 ‘산업공동화 민관 합동조사팀’을 구성해 중국의 청도, 상하이, 천진 3곳을 방문했다.
이들 조사팀이 이곳 현지에 진출한 7개 중소기업 관계자를 직접 만나 실태조사한 결과는 한마디로 ‘산업공동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조사에 참여했던 기협중앙회 조유현 국제협력팀장은 “산업공동화는 제조업의 고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모든 면담자들이 한결같이 이런 견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생산기지 해외이전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대체산업이 형성되기도 전에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이들 중국진출 기업인들의 공통된 견해였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면담자는 “한국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성장동력까지 넘어가나= 문제는 이들 중소기업인들의 생각이 단지 ‘기우(杞憂)’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섬유,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에 집중됐던 중국으로의 시설이전현상이 정보통신, 자동차, 조선 등 분야를 안가리고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젠 평범한 뉴스가 돼 버렸다.
특히, 세계최고 경쟁력으로 중국 보다 무려 10년이나 앞서 있다고 자부하던 조선, 조선기자재 업체들조차 최근 중국으로 빠져나갈 기미를 보이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7월 부산 최대의 조선기자재업체인 (주)오리엔탈정공(대표 서종석)이 중국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다롄경제개발구에 합작법인 ‘다롄동방정공선박배투유한공사’를 설립, 2년 뒤부터 선체 블록, 상부구조물, 선박용 의장, 항해장비, 배관 등을 생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를 계기로 국내 조선기자재업계의 중국진출이 본격화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은 지난 수십년간 부품산업을 육성하면서도 한국에 기술이전을 해주지 않고 있어 한국은 무역흑자의 대부분을 일본에게 까먹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들은 너무 쉽게 중국에 길을 터주고 있는 느낌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높은 인건비와 공장분양가, 인력부족 등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모든 생산요소들이 해외이전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많은 기업인들은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기업외적인 부분에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즉, 불안한 노사관계, 일관성 없는 정책, 끊임없는 정쟁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10월 중기협이 433개 중소제조업체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중소기업 생존전략에 관한 CEO의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조사에서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현 경제상황에 대해 느끼는 불안심리지수는 36.3(기준치 90∼110)을 기록, 일할 의욕을 상실한 ‘심리적 허탈’수준을 기록했다.
또한 ‘기업하기 가장 싫을 때’를 묻는 질문에 대해 ‘정부 경제정책에 일관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36.7%)와 ‘노사분규가 발생할 때’(21.5%)가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박영배 세명대교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건비, 임대료상승 등은 기술력과 브랜드로 만회해 볼 수 있지만 정치·사회불안에 따른 ‘미래예측 불가능’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면서 “현 상황은 정부와 국회, 각 정당은 모든 정쟁을 중단하고 중소기업인들의 기(氣)를 살려주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펴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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