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웃으면 세상이 웃고 당신이 울면 당신은 혼자다’라는 말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웃으면 세상은 다 웃는다’. 중소기업이 울면 어떻게 되는가. 중소기업이 울면 가정과 사회, 경제는 물론 온 나라가 괴롭다.
2003년은 유난히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2003년을 잘 표현하는 말로 ‘우왕좌왕’이 선택됐다. 경제실적이 이렇게 나빴던 해는 과거 정치적 소용돌이와 석유파동을 겪었던 1980년과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밖에 없었다. 경제성장률은 2%대에 머물고, 실업률은 치솟고, 신용불량자는 300만명을 웃돌고, 국책사업은 갈팡질팡이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한국을 외면하고, 한국기업은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세계환경 탓이 아니다. 해외환경은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이라크 전쟁도 빨리 끝났고 북핵문제도 악화되지 않았다. 미국도 일본도 경기가 살아난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우리만 죽을 쒔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2003년 68개국 중 25위로 2001년 21위, 2002년 24위에서 계속 뒷걸음치고 있다. 한국의 생산성수준은 미국의 50%, 싱가포르·홍콩의 60%, 일본의 66%에 불과해 선진국진입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이대로 가면 중국, 인도 등 후발개도국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5년 안에 기술력도 중국에 뒤진다고 하지 않는가.

정치싸움에 뒷걸음질하는 한국경제
중소제조업의 가동률은 60%대로 저조했다. 중소기업은 일감이 없어 문을 닫고, 일감을 얻어와도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고 물건 만들어 팔기도 어렵지만 팔아도 자금회수에 몇달이 걸린다. 인력난은 여전하고 기술은 모자라고 자금줄은 막혀 있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와 주5일제는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가중시킨 잘못된 정책선택이었다. 임금인상과 단체협상에서 승리한 대기업 노조의 환호성은 중소기업에게는 납품단가를 깎겠다는 청천벽력이었다.
2004년 올해는 어떤가. 한국은행은 5.2%의 경제성장을 예측했지만 낙관적 전망에 불과하다. 노사갈등과 금융불안은 여전하다. 우리 경제와 사회, 정치 어디를 둘러봐도 고비용·저효율구조를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거나 애쓰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2004년은 희망의 해가 될 것인가. 어려울 때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진리다. 기본은 뭔가. 생산성 향상이다. 이를 위해 기술개발도 원가절감도 품질개선도 해야 한다.

정부·정치권은 中企살리기에 나서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의 조성이다. 이는 정부당국과 정치권의 몫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뻘 밭 싸움하는 사이에 우리사회는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클린턴은 걸프전에서 승리한 현직 대통령 부시를 물리쳤다. 클린턴의 캠페인 문구는 “경제가 문제야, 멍청이 같으니라구! (It’s the economy, stupid!)” 였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클린턴의 메시지가 미국 국민에게 먹힌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경제를 살렸다. 그래서 숱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중요한 건 경제다. 우리는 어떤가. 경제가 수렁에 빠져 있어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국민노릇 하기’ 정말 힘든 세상이다. 대통령은 ‘시민혁명’의 필요성을 말할 뿐 경제 살리기에 힘을 쏟는 지도력은 보여주지 않는다. 정치권은 올 4월 총선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그래서 싸움질이다.
기업 옆구리 찔러 정치자금 받아썼으면서 많이 받고 적게 받은 걸 셈하고 있다. 법을 어긴 것은 불법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 아니다. 남보다 10분의 1 받으면 불법이 없어지는 것인가. 국민들은 하루를 살기 힘드는데 이런 싸움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이런 판에 중소기업 살려달라고 하소연하는 게 부질없어 보인다. 그래서 중소기업인은 더욱 허탈에 빠져 있다. 하지만 어쩌랴. 중소기업의 성패(成敗)는 중소기업인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낡은 관습 떨쳐내고 혁신과 변화에 앞장서야 살아남는다. 다시 한번 뛰자. 그 길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와 중소기업에 관심없는 자들을 심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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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길
숭실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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