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년 사건이었던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는 ‘대표없이 과세 없다’는 조항으로 유명하다. 세금 부과는 국민 대표기관인 의회의 승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그 취지였고 왕의 전제를 제한하고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처음으로 문서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현대에도 세금을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떻게 징수하고 지출하느냐 하는 것은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세금 징수와 지출이 잘못됐을 때 반란으로 연결된 경우가 많았고 세금에 관한 제도와 운영이 국가 흥망성쇠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현대에는 특히 세금제도와 운용이 각국의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금내는 기업을 우대해야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금은 형식적으로 의회가 의결해 징수하고 예산안에 따라 집행되므로 간접적으로 국민이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기업과 국민이 세금을 내고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이 지출을 담당한다.
형식적으로는 국민이 상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과 국민이 세금을 내는 주체이고 정부와 공공부문은 세금을 쓰는 쪽이다.
민주주의는 수 백년 간에 걸친 시민혁명을 통해 조금씩 발달, 진화했는데 세금문제는 항상 그 핵심 이슈이었다. 민주주의의 진전은 세금을 내는 자의 지위가 조금씩 향상돼 온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공공부문에 대한 민간 부문의 상대적 지위가 지속적으로 향상된 과정이었다.
글로벌 시대에 이 부분은 민주주의의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이라는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공공부문에 대해 민간부문, 특히 기업을 우대하려는 것이다.
문호를 개방해 세계의 기업에게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경제력은 향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내는 자와 쓰는 자,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상대적인 지위는 어떠한가? 이것은 흔히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른 이야기이다.
쉽게 말해 전통적인 ‘관존민비’라는 질곡에 아직도 많이 묶여 있는가? 국가 정책 수립, 예산안 입안과 집행 등에 있어서 세금을 내는 기업의 지위를 얼마나 존중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그룹기업 등에 관한 공정거래 규제와 같이 특정 집단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을 보는 마인드와 그 상대적인 지위를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관존민비’의 마인드를 가지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세금 내는 자를 우대하는 마인드’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금 내는 자보다 세금 쓰는 자를 우대하는 마인드와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입으로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예산안을 만들 때 세금 내는 자보다 세금 쓰는 자들을 위한 예산안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국민들이 세금 내는 자가 되기보다는 세금 쓰는 자가 되고 고양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큰 일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을 생선을 잡는 어부가 되기 보다는 생선을 서로 많이 가져가려는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하기 좋은환경 마련을
이러한 마인드로는 위험을 감수하고 기업을 일으키는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기 어렵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고양이들이 실컷 먹다 남은 생선으로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제대로 추진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세금 내는 자가 존중 받고 우대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기업가와 경영자가 존중되는 사회이어야 한다. 세금 쓰는 공직자들이 하는 일 없이 기업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구조는 하루빨리 혁신돼야 한다.
세금 내는 자가 우대 받는 사회는 결국 국민이 만들 수밖에 없다. 세금 내는 자를 존중하고 기업을 위해 봉사할 사람들이 국민 대변자가 되고 고위 공직을 맡도록 국민의 권리를 충분히 행사해야 한다. 제멋대로 세금을 낭비하고, 생산적이지 못하면서 자리를 유지하는 공직자들이 많다면 그것 역시 국민 책임인 것이다.

김승일
비즈턴 M&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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