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사드 엎친데 통상임금 덮쳐 글로벌 車시장‘나홀로 역주행’

주식시장은 냉혹하다. 지난달 31일 통상임금 소송 1심 결과가 발표되자 기아자동차의 주식이 전일 대비 3% 넘게 하락했다. 기아차와 지분법 영향 관계에 놓인 현대자동차도 2%대 약세를 보여줬다. 그간 잠재 됐던 현대·기아차의 통상임금 리스크가 1심 판결로 현실화 가능성이 터져 나오면서 앞으로의 주식 시장에서도 두 회사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기 힘들어 보인다.
정기상여금과 중식비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만으로 기아차는 노조에 4000여억원을 더 지불해야 할 판이다.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통상임금 리스크는 현대·기아차에 있어 뼈아픈 결과라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나란히 미국과 중국 등 해외시장은 물론이거니와 왕국이라 부르던 내수시장에서도 실적부진을 겪고 있다.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도 사정은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악화일로의 결과가 현대·기아차에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지금 일본, 미국, 중국 등의 경쟁 완성차들은 커다란 실책이나 부진 없이 정속주행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구조적으로 자동차산업이 이상 신호를 보이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현대·기아차에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가 터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중국서 반토막 난 현대차그룹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기업의 중국 수출 차질에 대한 변명도 더 이상 현대자동차그룹의 최근 난항을 설명하기에는 좀 부족해 보이는 구석이 많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성 행정들만으로 수출 곡선이 하향한 것이 아니란 것인데, 일부 중국 매체에서는 중국시장의 소비자들에게서 현대·기아차가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중국은 세계 자동차시장 가운데 가장 핫하고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상반기에만 중국시장에서 총 약 43만대(현대차 30만대, 기아차 13만)를 판매했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 약 80만대와 비교하면 절반에 그친 수준이다. 중국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이 얼마나 곤욕을 치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무차별적인 극심한 판매부진 속에서 심지어 현대차와 베이징기차의 현지 합작법인 베이징현대가 최근에 대금 지급 문제가 발생해서 자동차 부품 업체가 납품을 중단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완성차 업체에서 자금이 쪼들리다 보니까 제때에 지급을 못한 것인데, 이 일로 한때 베이징에 있는 1, 2, 3공장과 함께 중국 허베이성 남동부에 있는 창저우 공장까지 잠정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일시적인 자금흐름의 경색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근본적으로 판매량 부진에 따른 자금 위축이기 때문에 본사의 자금 수혈이 중장기적으로 필요하다는 분석들도 나온다.
돌이켜보자면, 불과 3, 4년전까지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차는 중국 현지 토종 완성차보다 더 좋은 품질과 낮은 가격을 메리트로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넓혀왔는데, 이제 중국을 대표하는 지리 등 토종기업들이 가격이면 가격, 품질이면 품질 등을 업그레이드하면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자리를 뺏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기아차의 포지셔닝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를 테면, 벤츠, BMW 처럼 럭셔리 세단을 앞세운 브랜드적 가치를 내세운다기 보다는 현대·기아차는 대중적인 브랜드적 가치가 더 높기 때문에, 단박에 중국 토종 완성차 업체들에게 따라잡힐 공산이 컸던 것이다.

통상임금 리스크 더 번질 듯
앞서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한 결과로 기아차가 지불할 예상금액을 4000여억원 안팎으로 추산한 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당장 3분기 기아차의 영업적자가 예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욱이 기아차는 자체 문제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연결고리가 있는 현대차그룹의 다른 협력 계열사 등과도 연계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1심 선고에서 패소했다고 당장에 3분기 영업적자를 예견한다는 게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4000여억원이라는 통상임금을 추가로 지불하려면 적어도 쌓아놓고 있는 자금들이 필요하다. 기아차는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전 세계 판매량이 153만대 수준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8.9% 감소한 수치다. 그래서인지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40%, 2분기는 48% 가까이 감소했다. 그래서 쌓아놓은 영업이익이 상반기에 7870억원 수준이었다.
기아차의 부진은 마치 두바퀴로 굴러가는 자전거에서 바퀴 하나가 삐걱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와 기아차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를 이미 갖춘 구조이다. 두 완성차 업체가 신차개발을 같이 하고 이에 따른 부품이나 자재 등을 공유하면서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만들었는데, 기아차가 위기를 겪게 되면 여기에 수반되는 부품, 자재, 물류 등 현대차그룹의 다른 비즈니스에도 큰 실적부진을 전가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거기다가, 현대·기아차와 손에 손을 잡고 있는 협력업체들 역시 전방위적으로 자금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매출로만 따져도 재계 2위의 아주 상징적이고 중요한 기업이기 때문에 수백, 수천개의 협력업체들에게 미치는 경제적 타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란 것이 조심스러운 전망이다. 현대·기아차를 따라 중국 현지에 진출한 1, 2차 협력업체들도 사드 타격은 물론 이번 중국 현지에서 불거진 대금 지급 지연의 악영향을 받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리스크가 연쇄 반응을 보이며 터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삼성동 현대차그룹 신사옥도 난관
이런 와중에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숙원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강남 삼성동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잘 알려진 대로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와 기아차를 비롯해 현대모비스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지난 2014년에 한국전력 부지를 10조5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사들였다. 오는 2021년까지 2조5721억원의 공사비를 더 추가해 신사옥을 세우기로 했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지난 5월말 글로벌비즈니스센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놓고 재심의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재심의를 결정했기에 올해는 인허가 절차를 완료하고 착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허가를 받은 뒤에도 과연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하는데 현대차그룹이 과연 감당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부호가 달리는 와중이다. 인수비용과 공사비용의 부담은 현재 현대차가 50%, 기아차가 20%, 현대모비스가 25% 등을 져야 한다. 당장 기아차는 통상임금 판결 리스크로 1조원의 추가부담금이 발생했고, 거기에 국내외 판매량 부진의 손실을 져야 한다. 현대차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러저러한 사업적 리스크를 모두 감내한다고 해도 올해 기아차는 대규모 손실이 불 보듯 뻔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는 현대차그룹의 상징이 될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매년 2조5000억원이 넘는 순수 투자비용이 투입돼야지만 볼 수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통상임금 리스크, 판매량 부진, 세계 경쟁 심화 등의 초대형 파고를 넘지 못한다면 글로벌비즈니스센터도 답보 상태에 빠질 것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