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인물] 최태원 SK그룹 회장

올해 반도체 시장의 최대 인수합병(M&A) 대어(大魚)였던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사업 인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도시바를 둘러싼 갖가지 이해관계들로 인수의 향방이 매주 엎치락뒤치락했죠. 막판에는 인수자로 나선 SK하이닉스를 배제하는 듯한 도시바 측의 언사로 인해 물 건너 간 대어라고 낙담했었죠. 그때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특유의 뚝심과 승부사 기질을 보였습니다.
인수전은 결국 9부 능선을 넘었고, 도시바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반도체 자회사인 도시바메모리를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수총액은 2조4000억엔, 우리 돈으로 약 24조3000억원 수준입니다. SK하이닉스는 이 가운데 약 2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인수전이 최종 끝나지 않았지만, 최 회장의 뚝심과 결단력으로 만들어낸 반전의 드라마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도시바 인수전은 초반부터 최태원 회장에게 불리하게 진행됐습니다. SK가 1차 입찰에서 제시한 금액은 경쟁자들에 비해 1조원 이상 적었고 일본 내 여론은 한국이나 중국 등 경쟁국가로 자국의 핵심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했죠. 최 회장은 2차 입찰에서 반전 카드를 꺼냅니다. 지난 4월이었죠. 도시바와의 상생 인수방안 뜻을 밝히며 이후 일본으로 날아가 도시바 경영진과 면담을 하게 되죠.
이때 최 회장은 전환사채(CB)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전환사채라는 건 간략하게 설명해서 ‘채권+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옵션)을 주는 겁니다. 보통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전환사채는 자금을 끌어 모으는 비용, 즉 이자비용은 줄이면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도시바는 당장 자금확충의 압박을 받고 있죠. 또한 전환사채로 가면 도시바의 인력 구조조정과 기술 유출도 최대한 일본에 유리하게 풀 수 있습니다.
최 회장은 미국의 베인캐피털, 일본 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 일본정책투자은행 등과 한 배를 타면서 ‘한·미·일’ 컨소시엄을 공고히 합니다. 이러한 그림은 최 회장이 적극 나서서 결성된 겁니다. 경쟁자였던 미국 WD(웨스턴디지털)-홍하이그룹(폭스콘) 입장에서 애가 탈 수밖에요. 최 회장에겐 결정적인 ‘신의 한수’가 더 필요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또 다른 결정적인 반전의 카드는 다름 아닌 ‘애플’이었습니다. 애플, 델 등 미국 기업 네곳이 의결권 없는 우선주 형태로 한·미·일 컨소시엄에 뛰어든 겁니다. 이들 업체들은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싶은 전략적인 선택을 한 거였죠.
애플이 조인하게 된 결정적 배경에는 SK하이닉스가 있습니다. 한·미·일 컨소시엄 가운데 유일한 기업체인 SK하이닉스에 대한 애플의 신뢰감은 두터웠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각국의 이해관계입니다. 중국은 2013년부터 국가가 나서서 반도체를 밀고 있습니다. 웨스턴디지털과 도시바는 지금 서로 소송 중입니다. 경쟁자였던 폭스콘은 3조엔에 달하는 가장 높은 인수금액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도시바 입장에서는 세계시장 석권을 노리려는 중국에 기술을 내주고 사이가 틀어진 웨스턴디지털과 손을 잡기가 싫었을 겁니다. 그래서 최 회장은 한·미·일, 이라는 연합체로 명분을 만들고, 상생이라는 실익까지 제안한 겁니다.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인수가 마무리되면 최태원 회장은 SK그룹의 반도체 사업을 보다 안정적으로 끌고나갈 동력원을 찾게 되는 겁니다. 지난 2004년에 하이닉스를 전격 인수한 SK그룹은 에너지, 화학 중심에서 반도체로의 지속성장 가능한 도약대를 마련했었죠. 그 뒤에도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연구개발(R&D) 자금과 인력을 대거 투자합니다. 이제 최 회장이 그리는 마지막 그림이 완성 직전에 있습니다.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사업부가 어떻게 SK하이닉스와 시너지를 낼지 점점 궁금해집니다.
 
- 글 : 장은정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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