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포커스] 제2도약 꿈꾸는 한글과컴퓨터

한글과컴퓨터는 1990년에 창립한 우리나라 1세대 사무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이다. 지금이야 한국이 세계적인 IT강국으로 우뚝 일어섰지만, 1990년만 해도 한국에 IT산업은 매우 낯선 분야였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쉽게 점칠 수 없던 시기였다. 한컴은 그렇게 열악한 시기에 한국의 IT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한축을 담당하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1990년대 PC가 막 보급되던 당시만 해도 단순한 게임을 하는 것을 빼고는 PC를 자유롭게 활용할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던 때다. 그래서 당시 한컴의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 시트 등이 포함된 소프트웨어(SW) 프로그램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컴이 만든 ‘아래아 한글’은 한국만의 워드 프로그램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지금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대부분이 매일매일 한컴의 아래아 한글 SW를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식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만의 자체 워드프로세서를 만드는 한컴이 있었기에 우리의 평소 생활에서도 큰 자부심을 느낄만한 것이다.
또한 한컴이 IT 1세대 기업으로서 27년 가까이 지속적인 경영을 이어가는 것도 신기하고,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새로운 도약을 노리고 있다는 점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우리가 수십년간 써온 아래아 한글의 주인인 한컴은 2000년 들어서서 경영권 분쟁과 저작권 논란에 휩싸여 오너가 여덟번이나 바뀐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대주주가 비리를 저질러 금융당국으로부터 한때 한컴의 상장폐지 실질심사까지 받는 등의 고충을 겪은 바가 있었다. 이러한 어지러운 과오를 딛고 한컴은 최근 들어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김상철의 한컴, 청사진을 펼치다
현재의 한컴은 지난 2010년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이 인수를 하면서 아홉번째로 오너가 바뀐 한컴이다. 그는 한컴의 지분(28%)을 670여억원에 인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컴의 내부 경영에 대한 신뢰성은 그렇게 투명하지 않았던 거 같다. 김상철 회장은 인수하자마자 한컴이 짊어지고 있던 각종 금융 부채를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업체와의 거래 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결제하는 등 혁신적인 투명경영에 나섰던 것이다.
동시에 김 회장은 한컴의 캐시카우라고 할 수 있는 ‘한컴 오피스’프로그램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신제품 개발과 사업 다각화에 매달렸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SW들이 바로 한컴의 클라우드, 사진편집 프로그램들이다. 현재 한컴의 매출은 1000억원을 돌파했는데, 김 회장이 인수한 이듬해 2011년부터 경영실적의 성장곡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2011년 매출은 약 570억원, 영업이익은 약 210억원으로 한컴이 더 이상 굴곡진 세월에 빠져 허우적대는 IT 1세대 기업으로 남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기업도 매출 1000억원의 기업으로 등극하는 일은 정말 보통의 일이 아닐 것이다. 한컴이 지난해 매출 1012억원(전년 대비 19.2% 증가)을 돌파하게 된 원동력은 뭘까? 업계에서는 2016년 1월에 선보였던 ‘한컴오피스 네오(NEO)’를 이야기 한다. 이 프로그램을 혁신적인 사무용 SW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그동안 국내에서는 두종류의 워드 프로세서를 같이 써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글(hwp)파일과 워드(doc)의 문서형식은 서로 만든 기업이 달라서 잘 호환되지 않았다. 워드 파일이 한글 파일에서 못 읽는 일도 많았고, 반대의 경우에도 불완전하게 구동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한컴이 내놓은 한컴오피스 네오는 바로 해외 고객들이 한컴에 모바일, 웹, PC를 모두 연동해서 쓸 수 있는 풀오피스(Full office)를 추구한다. 문서형식이 hwp든 doc든 상관하지 않고, 또한 언어가 달라도 호환성을 대폭 강화해 다채롭게 호환되고 번역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MS와의 호환성이 강화된다면, 말 그대로 사용자들이 한글 오피스와 MS의 워드프로세서를 왔다갔다 할 필요성이 줄어드는데 이때 한컴으로 사용자를 끌어 모으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앞서 설명한 풀 오피스 라인업이라는 SW는 전 세계를 뒤져봐도 한컴과 MS만 보유한 최신 기술력이라고 한다. 한컴이 세계 사무용 SW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이다.

한컴은 M&A의 귀재
한컴이 1000억의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성공적인 인수합병(M&A)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많다. 특히나 김상철 회장은 M&A의 대상들을 2010년 이래 영업이익률이 15% 이상은 돼야 하는 건실한 SW 업체들만 인수해왔다. 임베디드 SW 업체인 MDS테크놀로지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MDS테크놀로지는 2014년 영업이익이 108억원에서 2015년 123억원으로 그리고 2016년에는 137억원으로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건실한 기업이다. 최근까지 살펴보면 72분기 연속 흑자를 내는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MDS테크놀로지가 영위하는 사업분야는 사물인터넷(IoT)인데, 주로 스마트폰, TV, 냉장고, 자동차, 항공기 등에 장착되는 임베디드 시스템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러한 임베디드는 현재 IT업계에서 블루오션으로 등극한 자율주행 자동차시장에서 아주 중요한 솔루션을 수행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컴은 건실한 IT기업을 인수하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짙은 사업분야의 기업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 7월에 개인 안전장비 기업인 ‘산청’을 자그마치 2650억원에 인수한 사실도 IT업계에서는 빅이슈였다. 산청은 호흡기, 마스크, 보호복 등을 생산하는 하드웨어 전문기업인데, SW기업인 한컴이 자기네 덩치보다 훨씬 큰 2650억원을 들여 인수한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산청은 김상철 회장이 그리는 큰 그림의 마지막 퍼즐일 수도 있다. 한컴은 2013년 MDS테크놀로지를 통해 유니맥스정보시스템(국방 항공용 컴퓨터 업체)을 인수했는데, 이로써 방위 산업 분야에서도 하드웨어 기술과 소프트웨어 기술의 융합을 시도할 수 있었다. 지금 한컴은 하드웨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수 전략을 토대로 그동안 한컴은 MDS테크놀로지, 한컴시큐어, 한컴지엠디 등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인수를 추진해 왔다. 그래서 한컴은 관계기업까지 포함한 한컴그룹으로 따져서 총 매출 규모가 무려 3500억원대에 달하는 국내 1위 소프트웨어 그룹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한컴의 미래 SW 전략 방향은
오랜 인지도와 2010년 들어 발군의 경영 능력을 선보이며 한컴이 창사 이래 첫 매출 1000억원 돌파를 하고 있지만 반면 한국의 SW 시장은 정체기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나라 SW기업 가운데 무려 95% 이상은 100억원 미만의 매출을 간신히 기록하는 영세 기업들이다. 왜 이렇게 수많은 SW기업들이 영세 중소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SW시장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SW시장은 저가 사업 수주, 저렴한 유지보수요율 등이 보편화된 시장이라고 한다. 한컴은 국내 대학, 행정기관, 공공기관, 연구소 등등의 시장에서 특화된 SW영업이 가능했기에 그나마 열악한 내수 SW시장에서 버텨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결국에는 신사업과 해외진출에 따른 매출 확대가 되지 않는다면, 매출 2000억, 3000억원으로 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컴은 자체적으로 해외사업을 전담하는 ‘글로벌 사업단’을 꾸리고 한컴그룹 부회장이 이 사업단을 직접 이끌도록 했다.
한컴이 지난해 선보인 한컴오피스 네오의 경우 MS오피스와 100% 호환이 가능해지면서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인도, 남미, 중동 등을 5대 거점으로 수출을 가속화하는 중이다.
또한 김상철 회장은 한컴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IT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KAIST, ETRI 등의 기관과 손을 잡고 인공지능(AI), 증강현실, 빅데이터, IoT의 신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수백억원의 연구비도 쏟고 있다. 27년을 함께 해온 한컴이 또 한번 다시 태어나는 혁신을 맞이할까? 이미 김상철 회장이 그 큰림을 그려놓은 거 같다.

- 김규민 -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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