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이 쓴 《사기》는 인류 최고의 역사서로 꼽히는 책이다. 고대 중국 역사를 만들어왔던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가장 극적인 인물 중의 하나는 <항우본기>에 실려 있는 항우다.
항우는 유방과의 쟁패전에서 패해 황제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사마천은 항우를 황제들의 역사인 <본기>에 실었다. 항우가 거의 다 잡았던 황제의 자리를 놓쳤던데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기》에 항우의 최후는 이렇게 실려 있다.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쫓겨 오강에 다다랐을 때 그 지역 정장(亭長)이 항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동이 작기는 하지만 땅이 사방천리이고 백성의 수가 몇십만에 달하니 왕 노릇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대왕께서는 서둘러 강을 건너십시오.”
그러자 항우가 한탄하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데 내가 강을 건너서 무얼 하겠는가? 강동의 젊은이 8000명이 나와 함께 서쪽으로 갔지만 이제 단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 설사 강동의 백성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설사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이 항우의 마음이 부끄럽다.”
항우는 결국 그곳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이다 자신의 목을 찔러 스스로 죽고 만다.
비록 유방에 패하기는 했으나 항우의 영웅 됨을 기리고 그 비참한 최후를 안타까워하는 중국인들은 많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고사성어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권토중래’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온다”로 직역되는데,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힘을 길러 다시 천하를 도모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항우가 죽은 지 1000년이 지난 후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자신의 시 〈제오강정(題烏江亭)〉에 실었다.
위의 고사에서 오강의 정장도 말했듯이 잠깐의 치욕을 참고 훗날을 기약한다면 충분히 재기를 할 수 있을 텐데 31세의 젊은 나이에 그렇게 쉽게 미래를 포기한데 대한 아쉬움을 ‘권토중래’라는 한마디에 담았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도 실업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년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 같다. 창업을 그 대안으로 삼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창업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벤처창업의 경우 생태계의 미비, 판로의 어려움들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는 실패자들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인데다가, 다시 도전해서 재기할 수 있는 여건과 시스템이 조성돼 있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시대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은 물론 탁월한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이 과감하게 투자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줘야 한다.
하지만 사업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가 되는 풍토에서는 과감한 도전은 불가능하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자산이 돼 다시 권토중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의 정신이 사회전반에 뿌리내려야 할 것이다.

- 《천년의 내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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