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 900만달러 포뮬러 원은 어떻게 달릴까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자동차 경주대회는 ‘포뮬러 원’(Formula 1: F1)일 것이다. 포뮬러 원이 현대 과학의 집합체라고 불리는 이유는 첨단 센서, 소프트웨어, 데이터 기반 등이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텍사스 주 오스틴에 위치한 서킷 오브 아메리카의 트랙은 미국 내 유일한 포뮬러 원 그랑프리 경기장이다. 경주용 차가 아스팔트 위를 달려 돌풍이 생겨나면, 일부 관객은 우비를 부여잡으며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강력하다.
900만달러 이상 가치를 지닌(운전대만 7만7000달러 이상이다) F1 경주용 차들은 단순히 트랙을 시속 300㎞ 이상으로 질주할 수 있는 값이 비싼 덩치 큰 기계가 아니다. 수백개의 센서가 탑재된 지능적인 첨단 장치이기도 하다. 각 센서는 트랙, 피트 크루(7초 정도에 불과한 피트 스톱 동안 타이어를 갈고 차를 점검하는 엔지니어), 현장의 방송 요원과 심지어 수백 ㎞ 떨어져 있는 유럽에 있는 엔지니어팀과도 연결돼 있다.
대다수 F1 관중들은 서킷의 언덕이나 헤어핀이 급격히 바뀌는 코너에서 경주의 승패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막강한 성능의 컴퓨터 상에서도 경기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F1 대회는 위험 부담이 큰 환경에서 사물인터넷(IoT)이 활용되는 단적인 사례다.
대회 참가팀들은 실제 사물에서 실시간으로 나오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한다. F1의 정보처리 능력은 상당히 정교한 수준이어서, 일부 레이스 팀들이 다른 산업에 기술을 전수할 정도다. 눈 깜짝하는 순간 엄청난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에 사활이 걸린 산업들이다. 일례로, 영국 자동차업체 매클래런(McLaren)은 미국 석유기업 코노코필립스에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전수해 원유 시추에 활용하도록 돕고 있다.
매클래런 어플라이드 테크놀로지스의 최고혁신책임자(CIO)인 제프 맥그래스는 “관리해야 하는 모든 수치를 경기 도중 측정하고, 예측 지능(predictive intelligence)을 이용해 차량이 어떻게 작동할지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매클래런 팀은 해당 시즌 센서 데이터를 통해 개발한 시뮬레이션과 기존 데이터를 토대로 각 트랙별 경주용 차량을 제작한다. 3D 프린터로 원형(prototype) 부품을 만든 뒤 풍동(wind tunnel) 실험을 거치는 식이다.
이후 승인된 디자인은 탄소 섬유를 사용해 차량으로 제작된다. 이 제작 과정을 통해 차량 디자인의 모든 부분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자동차의 새시, 타이어, 엔진 전반에 센서가 설치된다. 이 센서들을 통해 차체 앞부분에 가해지는 기압의 정도와 브레이크 온도, 타이어 공기압 등을 측정한다. 차가 미끄러지거나 화려하게 코너를 도는 순간에도 센서 작동은 멈추지 않는다. 서스펜션에 부착된 센서는 주행 속도를 측정할 뿐 아니라 바람의 힘이 자동차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한다. 앞서 언급한 7만 7000달러짜리 운전대도 손잡이와 버튼, 페달로 무장돼 있다. 운전대로 차 속도를 늦추는 것은 물론, 버튼을 눌러 드라이버의 헬멧에 음료수를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 가운데 드라이버가 실제로 체크하는 부분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오스트리아의 F1팀 인피니티 레드불 레이싱의 기술 파트너십 부문 대표 앨런 피즈랜드는 “(드라이버가 보는 데이터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차량 운전에만  인지능력을 전부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뮬러 원은 트랙 내 허용되는 크루의 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피티니 레드불 레이싱은 현장 엔지니어 60명, 영국 요원 30명으로 크루 수를 관리하고 있다. 피즈랜드는 가장 멀리 떨어진 호주의 트랙에서 보낸 데이터가 영국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00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엔지니어팀은 경기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타이어 교체, 추월 시도 등 모든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피즈랜드는 “직감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데이터 분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자동차가 정확히 얼마나 비스듬하게 트랙을 주행하는지 알 수 없으며, 타이어의 도로 그립감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드라이버뿐이다. 맥그래스도 “최고의 센서는 여전히 드라이버”라고 강조했다.

- 글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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