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 나이키의 새로운 마케팅 마법

나이키 본사의 제리 라이스 건물 3층을 방문한 외부인은 거의 없다. 심지어 나이키 직원 대부분도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 비밀스러운 장소는 오리건 주 비버톤에 소재한 80만㎡ 규모의 나이키 본사 북쪽에 있다. 주 출입문에는 ‘제한구역: 노크를 해도 못 열어 드립니다’라는 사인이 붙어 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회의실마다 5~6명씩이 모여 있다. 벽의 흰 칠판에는 난해한 방정식이 잔뜩 쓰여 있다. 그들의 정체는 MIT와 애플 출신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다. 정보 유출은 엄격히 통제된다. 방문객이 컴퓨터 화면을 조금이라도 오래 쳐다보면 홍보 담당자가 뛰어나와 그 앞을 가로 막는다.        
과거 한때 이 회의실에서는 최첨단 스니커 운동화 기술(새로운 거품 형태의 폴리우레탄이나 일부 획기적인 완충작용 원리 등) 개발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신발이나 옷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은밀하게 마케팅 혁명을 모색하고 있다. 
사람들이 일벌처럼 바삐 움직이는 이곳이 바로 나이키가 2010년 야심 차게 출범시킨 나이키 디지털 스포츠의 본산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사업부는 사용자들이 어떤 운동을 하든 개인 기록을 추적할 수 있는 장치와 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대박을 터트린 가장 유명한 제품은 애플과 공동 개발한 나이키 플러스 러닝 센서로 운동량을 측정하는 장치다.
현재 약 500만명의 러너들이 나이키에 접속해 그들의 운동량을 체크한다. 디지털 스포츠가 내놓은 제품인 퓨얼밴드(FuelBand)가 운동하는 사람들의 에너지소모를 측정한다. 단순히 보면 팔찌지만 최첨단 디지털 스포츠가 적용된 사례다.
디지털 스포츠는 단순히 스포츠 필수 장치를 개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고객들의 데이터에 근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디지털 제품을 통해 고객들을 추적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한 관계를 조성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케팅 역량을 디지털 영역에 집중하려는 나이키의 더 원대하고,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어쩌면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을 창조한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잠시만 최근 TV에서 본 나이키 광고 몇개를 한번 떠올려 보자. 기억이 안 난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나이키의 미국 내 TV와 인쇄매체 광고비는 3년 만에 40%나 줄었다. 심지어 전체 마케팅 예산이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역대 최고치인 24억달러를 기록했는데도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나이키는 요즘 좀처럼 매체 광고를 하지 않는다.
단 한개의 히트작을 앞세워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하향식’ 마케팅은 이제 사라졌다. 이제 그 역할은 나이키가 직접 고객들과 소통하는 다양하고 혁신적인 쌍방향 시스템이 대신하고 있다.
가령 운동량 측정 팔찌나 트위터에 올라온 팬들의 반응을 모아 요하네스버그 도심에 설치한 30층 높이의 초대형 광고판에 소개하고, 오스카상 후보 감독이 제작한 CF를 프라임 시간대의 TV가 아닌 페이스북에 가장 먼저 선보이는 광고 전략이 대표적이다. 나이키는 더 이상 TV 광고를 많이 하지 않아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마케팅의 방향을 선회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이키는 진짜 고객이 있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 신발 구입에 어른들보다 20%나 더 지출하는 열일곱살짜리 ‘핵심 고객들’은 무수히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드나드느라 TV를 안 본 지 오래다. 나이키는 과거처럼 TV 광고를 쏟아 붓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면 소비자들과 좀 더 긴밀하게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키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수십명의 엔지니어를 신규 채용했다. 디지털 스포츠 사업부는 지난 6개월간 직원을 100명에서 200명으로 늘렸고, 본사 외곽에 있는 좀 더 널찍한 공간으로 옮겼다. 나이키는 또 온라인 캠페인에 집중하기 위해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주요 스포츠 이벤트에 투자했던 1억달러 이상의 광고비 효과를 정밀 분석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과거에는 특정한 날 나이키 광고를 본 최다 시청자수가 2억명 정도였다. 슈퍼볼 같은 빅 매치가 열릴 때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에도 전체 사이트와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를 통틀어 그 정도 히트수는 나온다.
물론, 나이키가 유명 스포츠 스타들을 통한 마케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는 나이키의 두번째 주요 시장인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스타다. 마이클 조던 브랜드 역시 여전히 가장 잘 팔리는 나이키 프랜차이즈 중 하나다.
그러나 나이키는 제품을 팔기 위해 소수의 슈퍼스타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회사 역사상 초유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나이키는 마케팅 전략에 있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 글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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