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건실해졌습니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9위 수준이 됐습니다. 금융과 기업의 수익성도 크게 나아졌습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도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국가부도사태를 맞았던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2018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20년 전의 한국경제와 현 상황에 대해 비교하는 말을 했다. 올해는 IMF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1997년 11월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직장인들이 백수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경제 펀더멘털(기초)이 무척 튼튼해져 어지간한 내외부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들도 안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8년에 발발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한국경제는 큰  내상 없이 다른 국가 대비 빠른 성장세를 회복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IMF 이후 저성장과 실업이 구조화됐고, 국민들의 인식 수준은 20년전과 비교해 ‘삶의 여유가 없고, 행복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1997년과 2017년의 한국경제 변화와 앞으로의 숙제에 대해 짚어봤다.

중소기업 대출심사 담보 위주 여전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충격은 일부 대기업을 몰락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은행까지 그 여파가 번졌다. 이로 인해 동남, 동화, 충청, 경기, 대동은행 등이 금융시장에서 퇴출됐으며 인수합병(M&A)에 내몰리게 됐다. 이때 은행권에서도 튼튼하다고 정평이 나있던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등도 간판을 내렸다. 당시 33개 은행 가운데 절반인 16개사가 구조조정됐다.
정부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은행들의 건전성과 수익성 향상을 도모했다. 은행 건전성의 종합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은 1997년 말 당시 7.04%로 국제기준(8%)에 미달했지만 2017년 6월 현재 15.37%로 상승했다.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도 1997년 -0.90%에서 2017년 6월 현재 0.62%로 높아졌다.
은행의 내실은 20년 만에 완전히 회복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등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분야에 집중하면서 손쉽게 대출 마진으로 덩치를 키웠다는 문제는 여전하다.
지난 7월에 취임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는 식의 전당포식 은행 영업 행태는 금융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업대출 분야도 심각하다. 신한은행·우리은행·KEB하나은행 등의 기업대출 비중은 1999년 70~90% 수준이었으나 최근 40%대로 떨어졌다. 은행 총 대출 중 가계대출 비중도 외환위기 당시 30%가 채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43%까지 올라갔다. 중소기업 대출은 여전히 담보나 보증 위주이고 은행들이 손쉽게 수익을 올리는 데만 몰두하다 보니 가계부채가 급증하는데 한몫 한 것이다.

大·中企 격차는 더욱 심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수준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직원들의 근로 의욕을 높이고 성취 동기를 자극하는 ‘성과급’에서 대·중소기업간 격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분석한 ‘중소기업 임금격차 완화와 성과공유제 활성화 방안’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간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997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 수준이 77.3%였는데 지난해엔 62.9%로 14.4%포인트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대기업 근로자 임금이 100만원이라면 1997년 77만3000원을 받던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이 지난해 62만9000원으로 줄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특별급여 즉 성과급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점이다. 지난 20년간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성과급 수준이 22.3%포인트 줄었다. 대기업 성과급이 지난 20년간 평균 50만원에서 128만원으로 늘 때 중소기업 성과급은 평균 26만원에서 37만원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노동생산성 또한 뒷걸음질 중이다. 노동생산성은 노동자가 일정기간 일했을 때 만들 수 있는 부가가치를 의미한다.
노민선 연구위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중소기업 노동생산성지수는 지난 2008년 106.4에서 지난 2014년 105.8로 0.6포인트 하락했다. 이 기간 대기업 노동생산성지수는 43.2포인트(320.6→363.8) 상승했다.
중소기업계는 20년전 IMF 외환위기 시절보다 기업환경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세계일보가 중소기업중앙회의 협조를 받아 중소기업인 164명을 대상으로 1997년 IMF 외환위기 시절과 현재 경영 여건을 비교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현재 경영·창업에 실패해도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재기할 수 있는 패자부활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를 선택한 응답자는 21.3%(35명), ‘별로 그렇지 않다’고 답한 건 51.2%(84명)에 달했다. 부정적 응답이 70% 이상을 기록한 것.
‘보통이다’라고 답한 이는 21.3%(35명)였고, ‘잘 작동하고 있다’와 ‘아주 잘 작동하고 있다’는 답은 각각 3.7%(6명), 0.6%(1명)에 그쳤다.
중소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많이 사라졌냐는 물음에도 부정적 응답이 절반 가까이 됐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7.3%(12명), ‘그렇지 않다’는 40.9%(67명)로 나타났다. 반면 ‘매우 그렇다’(2명)와 ‘그렇다’(9명)를 포함한 긍정적 응답은 6.7%에 그쳤다.
중소기업 발전을 저해하는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부당거래, 특허침해 문제 또한 IMF 외환위기 시절 대비 크게 개선된 바가 없다는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대·중소기업 간 부당거래 관행이 개선됐는가를 묻는 질문에 ‘전혀 나아진 게 없다’는 응답은 15.2%(25명),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39.6%(65명)에 달했다. 반면 ‘많이 나아졌다’는  4.9%(8명), ‘조금 나아졌다’는 20.7%(34명)였다.

대기업 지형도 크게 바뀌어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 간 국내 재계의 지형도가 바뀌었다. 30대그룹 가운데 19곳이 해체되거나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남은 11곳 중 현대, LG 등 5곳도 여러 그룹으로 쪼개졌다. 20년 동안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곳은 롯데, SK, 삼성이었다.
외환위기 발생 직후인 1998년 초와 올해 30대그룹 현황을 비교한 결과, 외환위기 당시 30대그룹 중 19곳(63.3%)의 변화가 발견됐다. 19곳 중 그룹이 해체된 곳은 11곳이었으며, 30대그룹에서 밀려난 곳은 8곳이었다.
그룹이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곳은 대우(당시 3위), 쌍용(7위), 동아(10위), 고합(17위), 진로(22위), 동양(23위), 해태(24위), 신호(25위), 뉴코아(27위), 거평(28위), 새한(30위) 등 11곳이다. 한라(12위), 한솔(15위), 코오롱(18위), 동국제강(19위), 동부(20위), 아남(21위), 대상(26위), 삼표(옛 강원산업, 29위) 등 8곳은 30대그룹에서 밀려났다.
현재까지 30대그룹에 남아있는 곳은 삼성, 현대, SK, LG, 롯데, 한화, 두산, 한진, 금호, 대림, 효성 등 11곳에 불과하다.
지난 20년간 그룹 순위는 롯데가 11위에서 5위로 6계단 뛰어 상승폭이 가장 컸다. SK는 5위에서 3위로 2계단 상승했고, 삼성은 2위에서 1위로, 두산은 14위에서 13위로 각각 1계단씩 뛰어올랐다. 삼성의 경우 계열사가 62개로 20년 동안 1개 밖에 늘지 않았지만,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의 공정자산 규모가 217조원으로 20년전의 삼성전자보다 845.6%나 급증해 그룹 성장을 견인했다. 

- 일러스트레이션 최진영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