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훈-ASE코리아 본부장

미국 유명 반도체 회사의 임원급 인사를 최근에 만났다. 베네수엘라계 미국인인 그에게 무심코 인사로 건넨 모국의 상황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나라가 붕괴하고 있는 중이라 남아 있는 그의 가족들을 유럽 등지로 탈출시키려 모색 중이라 했다. 자신의 두형제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도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다음날 공원을 산책하면서 동영상을 통해 검색해 본 베네수엘라의 현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국가에서 82%가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중산층마저 먹을 음식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생필품도 턱없이 부족하고 재고가 있어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사실상 구매가 불가능한 처지였다. 치안이 엉망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도시는 무법천지라 무차별적인 살인이 자행돼 수도의 번화가도 해만 지면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한때 베네수엘라 같은 산유국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공룡이 살았다는 한반도에 웬만한 나라엔 다 있는 석유가 매장돼 있지 않아 고가의 세금이 포함된 휘발유나 경유를 사야만 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가봐도 우리와 비슷한 위도에 있는 나라치고 더 덥거나 추운 곳이 없다. 격해도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겨울에도 잔디가 파랗다. 눈도 잘 내리지 않고 내린다 해도 땅에 내리자마자 녹는다. 반면에 우리는 혹한을 견뎌야 하는 곳에 살고 있다.
실내에선 난방이 필수고 외출할 때도 외투가 없으면 안 된다. 수필가 김소운의 표현대로 어떤 때는 외투를 위해 겨울이 존재한다고 할 만큼 외투는 꼭 필요하다.
러시아 소설가 고골리의 ‘외투’라는 단편 소설에 보면 주인공은 말단이긴 하지만 정규직 공무원인데도 연봉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줘야 살 수 있는 새 외투 때문에 형편없이 낡은 외투를 입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어렵게 장만한 새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기고 추위에 병을 얻어 결국은 죽고 만다.
다소 극적인 요소가 있지만, 궁핍하고 물자가 부족했던 상황을 유사한 경험을 했던 작가가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젠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곤 누구나 외투를 장만할 수 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정 러시아의 상황과 현재를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시간만 흐른다고 경제가 좋아지는 건 아닌 것을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열악한 근로조건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공장에서 일한 사람들의 덕분에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 품질이나 가격 차이는 나겠지만 웬만한 공산품이나 식료품을 부족함 없이 누구나 살 수 있다. 얼마 전 방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경이적인 발전상을 극찬한 것은 협상을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적 수사(rhetoric)임을 고려한다 해도 상당부분은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지나친 자만은 금물이겠지만, 우리는 위대한 성취를 이뤘고 더 빛난 가능성을 향해 가고 있다. 경제적 약자,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이 모두 공장의 힘이며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물론 그들을 지원하는 서비스 업계의 숨은 노력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광훈-ASE코리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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