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우려했던 대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자는 권고안을 내놨다. 국내 전자업계는 이번 ITC의 결정에 대해 “세탁기 완제품은 적어도 절반 가량을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돌리고, 부품은 100% 현지화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진은 22일 서울 시내 전자제품 판매장.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수입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기로 했다. 가전업계는 이번 ITC 결정에 대해 “세탁기 완제품은 적어도 60% 이상을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돌리고, 부품은 100% 현지화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ITC 권고안에 어떤 내용 담겼나
ITC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모든 국가로부터 미국에 수입되는 대형 세탁기 중 120만대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 3년간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저율관세할당(TRQ) 권고안을 발표했다. TRQ는 일정 물량에 대해서는 낮은 관세를 매기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수입제한 조치다.
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모든 세탁기에 대해 50%를 물릴 것을 요구했고, 삼성·LG전자는 불가피하다면 145만대 초과분에 대해서만 50%를 부과하라고 요청했던 점에 비춰보면 쿼터 물량을 120만대로 잡은 ITC의 권고안은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미국 대형 가정용 세탁기 시장의 업체별 점유율은 월풀이 38%, 삼성전자 16%, LG전자 13% 순이다.
다만 쿼터 이내 물량에 대해 관세 20%를 물리자는 의견이 채택될 경우 삼성·LG전자의 세탁기 수출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ITC는 또 부품의 경우 쿼터를 1년차 5만, 2년차 7만대, 3년차 9만대로 잡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관세를 50%(1년차), 45%(2년차), 40%(3년차)씩 물리자고 했다. 쿼터 이내 물량은 무관세다.

年300만대 수출…삼성·LG ‘초긴장’
가전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삼성·LG전자가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는 연간 300만대 안팎으로 추산된다.
두 회사가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대형 가정용 세탁기는 금액으로 치면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 수준이었다. 여기에 비춰보면 ITC가 권고안에서 제시한 120만대는 수출 물량의 40%에 불과한 수준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연간 120만대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다른 국가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도 모두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월풀 등도 해외 공장을 대거 지은 뒤 여기서 제조한 제품을 자국으로 들여오고 있는데 이 역시 수출 물량에 포함된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0만대를 쿼터로 정한 ITC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삼성·LG전자가 수출하는 세탁기 중 최소 180만대 가량이 ‘관세 50%’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수출 물량 중 거의 3분의 2가 쿼터 초과분에 해당해 50%의 관세를 물게 되는 것이다.
특히 ITC 위원 중 일부는 쿼터 이내 물량에 대해서도 20% 관세를 부과하자고 한 만큼 이 안이 채택될 경우 막대한 타격이 우려된다. 수출 물량 300만대 전체에 기본 20%의 관세가 붙고, 180만대 초과분에는 50%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는 삼성·LG전자 세탁기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치명적이다.
결국, ITC의 권고안은 “미국 공장에서 세탁기를 생산해서 판매하라”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세탁기 공장을 건설 중이며 내년 1분기 중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LG전자도 테네시에 세탁기 공장을 짓고 있는데 당초 2019년 1분기로 잡았던 가동 개시 시점을 최대한 앞당겨 내년 연말까지로 앞당길 계획이다.

정부 “WTO 제소 등 적극 대응”
우리 정부도 ITC의 이번 권고안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2일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서 외교부 및 삼성전자, LG전자 등과 ‘미국 세탁기 세이프가드 관련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열었다.
정부와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안에 서명할 때까지 이번 조치의 문제점을 최대한 알려 쿼터 내 물량에 대해서까지 20% 관세가 적용되는 상황을 막을 방침이다. 업계는 쿼터 내 물량에도 20%의 관세가 적용될 경우 가격이 10∼15%는 올라갈 텐데 이는 미국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일이라는 논리다.
미국이 세이프가드 시행을 강행하면 WTO 협정 위반 여부 등을 분석해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4일 ITC 권고안을 보고받고 그 후 60일 이내 최종안을 결정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강성천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1~2달여 정도 시간이 있는데 남은 기간에 대미 아웃리치(순회설명회)를 통해 행정부, 의회, 주(州) 정부 인사 등에 우리 입장을 적극 설명하고 우리 기업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으로 결정되도록 업계와 같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은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가 협정 위반이라고 판정한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관세를 여전히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2013년 2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 세탁기에 각각 9.29%, 13.2%의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했다.
정부는 미국이 반덤핑 협정에서 금지한 제로잉 방식으로 한국 기업의 덤핑 마진을 부풀렸다고 판단, 2013년 8월 WTO에 제소했다.
WTO 분쟁해결기구는 지난해 3월 1차 심리에서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WTO는 미국에 분쟁 당사국에 허용되는 최대 이행 기간인 15개월을 줬다. 이 기한은 올해 12월26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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