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 요구르트 제조업체 다농

식품회사들은 미생물 군집(micro-biome·인간의 소화기관에 있는 수조개의 박테리아)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제품이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프랑스 유명 요거트 제조업체 다농은 이 같은 제품의 슈퍼마켓 출시 경쟁에서 초반 주도권을 잡기를 원하고 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에 있는 다농의 화려한 신규 연구시설 4층. 이곳에 위치한 통풍이 잘되는 생명과학 연구실의 세련된 기계들 사이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 기계 1대가 놓여있다. 플라스틱 관과 형형색색의 밸브가 경이롭게 얽혀져 있다. 이 기계는 연구실에서 ‘TIM’으로 불린다.
화려해 보이진 않지만, TIM은 매우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 위장 관이다. 이 기계는 인간의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고 역동적인 소화 과정을 모방하고 있다. 식품이나 성분이 관을 타고 내려온 후, 생화학적 장애물을 통과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극도로 강한 위산과 소장에 있는 침식성 효소와 작용을 일으킨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하루 종일 벌어지는 이 모든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본다.
다농의 과학자들은 TIM을 통해 자사 제품이 인간의 몸 안에서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또 인간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제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엿볼 수 있다. 이는 미생물 군집을 파악하고자 하는 다농의 핵심 목표다. 미생물 군집이란 인간의 몸 안에서 또는 인간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100조개로 이뤄진 미생물 덩어리를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최근 평균 2㎏ 가량의 박테리아가 인간의 내장에서 중요한 역할(비타민과 필수 산을 생산하고, 면역체계를 구축하고 활성화하며 소화도 조절한다)을 한다고 밝혀낸 바 있다.
다농의 연구자들은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비만, 당뇨를 비롯해 자기 면역질환, 자폐증, 우울증까지, 의료 비용 상승의 주범이 되는 질병과 연관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들은 또 선진국이 이 문제 중 일부를 야기했을 수 있다는 증거도 찾아냈다. 항생제와 가공식품, 그리고 항균 세정제의 과다 사용 탓에 ‘좋은’ 미생물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농의 이 연구기관은 미생물 군집의 균형을 회복할 일말의 가능성도 찾아냈다. 과학을 통해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한때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던 이 미생물학은 이제 건강 증진을 위한 슈퍼푸드 개발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연구원들은 인간이 섭취하는 유용 미생물 ‘프로바이오틱스’와 장내 유익 박테리아의 생장을 돕는 난소화성 성분 ‘프리바이오틱스’가 가진 미지의 효과를 밝혀낼 엄청난 양의 새로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 두 성분은 한때 ‘소화를 돕는’ 첨가물 정도로만 인식됐다.
세계 1위 유제품 제조업체 다농의 대표 제품은 장에 좋은 식품으로 가장 잘 알려진 요거트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인기 상품이다. 다농은 미생물 연구에 가장 먼저 투자한 기업 중 한곳이기도 하다. 현재 다농은 이 분야 약 100개의 임상 실험에 참여하고 있고, 40개 이상의 학계 또는 업계 파트너들과 협업하고 있다.
기업들이 미생물 군집 해독에 성공하면, 그 혜택은 엄청날 것이다. 시장 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건강기능 식품의 전 세계 매출은 이미 2750억달러를 넘어섰다. 비만 억제나 어린이 성장 촉진을 위한 맞춤형 식품이라고 광고하면 매출 또한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농의 연 매출은 280억달러에 달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1987년 출시된 프로바이오틱스 강화 요거트 액티비아(Activia)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유제품이다. 새로운 분야에서의 혁신을 통해 다농이 판매하는 모든 제품이 액티비아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다농이 미생물 군집 분야에서 경쟁업체보다 최소 2년 앞서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렇게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다농의 오랜 유산 덕분이었다. 회사는 지난 수십년간 전 세계에 서 4000여개의 곤충을 수집해 식품업계에서 가장 방대한 박테리아 종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곤충들은 작은 유리병에 섭씨 영하 80도로 냉동 처리돼, 파리에 있는 다농의 미생물 연구소에 보관돼 있다. 슈퍼푸드의 미래를 열 보물상자다.
식품업계 못지 않게 존슨 앤드 존슨과 화이자, 그리고 사노피 등 수많은 제약업체들도 현재 장 미생물 군집 연구를 하고 있다. 기술업계 역시 이 트렌드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미생물 군집 연구에 참여하는 거의 모든 이들은 머지않아 진단 도구가 개발돼 사람들의 장 박테리아 를 분석하고, 가장 필요로 하는 식품을 알려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대부분은 스마트 변기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사물인터넷과 맞춤식 영양의 보편화가 만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다농을 비롯한 수많은 거대 기업들이 인간의 대장에 승부를 걸고 있다.

- 글 :  하제헌 객원기자
- 일러스트레이션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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