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박이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에 이어 철강 ‘관세폭탄’으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미국이 지정한 12개 수입 규제 대상국에 캐나다. 독일, 일본, 대만 등 다른 우방국은 빠진 채 유독 한국만 포함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중 간의 무역전쟁에 한국이 휘말리면서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수입 안보 영향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53%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입 규제 대상 12개 나라에 한국을 포함했다.

동맹국 중 한국에만 유독 가혹
미 상무부는 과도한 철강 수입으로 인한 미국 철강 산업의 쇠퇴에 대해 “미국 경제 약화를 초래해 국가안보를 손상할 위협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모든 국가의 철강 수출을 2017년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는 쿼터(할당)를 설정하거나 △모든 철강 제품에 일률적으로 24%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한국을 비롯한 브라질 중국 러시아 인도 등 12개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53%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 국가는 2017년 수준으로 수출을 제한하라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한편 미국에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국가 중 캐나다, 일본, 독일 등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은 12개 국가에 포함하지 않아 어떤 기준으로 12개 국가를 선정했는지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철강을 가장 많이 수출한 상위 20개 국가는 2017년 기준 캐나다, 브라질, 한국, 멕시코, 러시아, 터키, 일본, 독일, 대만, 인도, 중국, 베트남, 네덜란드, 이탈리아, 태국, 스페인, 영국, 남아공, 스웨덴, 아랍에미리트(UAE) 순이다.
캐나다는 대미 철강 수출 1위인데도 12개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웃인 멕시코와 전통적 우방인 일본, 독일, 대만, 영국 등도 제외됐다.
미 무역 전문지 ‘인사이드 US 트레이드’에 따르면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특정 국가들을 선정한 절차가 “꼭 공식에 따른 것은 아니다”(was not exactly formulaic)라고 밝혔다.
로스 장관은 12개 국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들 국가의 최근 몇년간 생산능력 확장 속도,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의 성격, 환적 여부 등 여러 요인을 분석했다고 설명하고서 특히 대미 수출 증가율이 ‘핵심 요인’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엔 규제 대상국 선정이유 빠져
하지만 이 같은 설명에도 한국이 대상국에 포함된 뚜렷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철강 수입 상위 20개국 중 한국산 제품의 수입 증가율(2011년 대비)은 11위에 그친다. 대만의 경우 증가율이 113%로 한국(42%)보다 2배가 높지만 12개 규제 대상국에서 빠졌고, 독일도 40%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역시 규제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의 철강 수입 1·4위 국가지만 반대로 미국산 철강을 많이 수입하고, 현재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규제 대상국에서 제외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에 한국산 철강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지만, 미국은 자국 철강산업을 살리기 위한 경제논리를 우선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국방은 물론 국가 핵심기반시설 유지에 필요한 철강을 자국에서 생산하려면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미국 철강산업”이 필요하다며 철강산업 경쟁력을 위해 2011~2016년 평균 74%에 그친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4월11일까지 최종 결정
우리 정부는 미국이 안보를 경제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군사 동맹 같은 전통적 안보 요인이 아니라 경제적 면을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고 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만 대미 수출이 많으면서 중국산 철강을 많이 수입하는 국가들이 포함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의 취지가 중국을 겨냥한 만큼 중국 철강산업의 저가 수출에 기여하는 국가를 수입규제 대상에 포함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보고서는 중국이 주도하는 고질적인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을 미국 경제를 약화하는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철강 수입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철강업체들이 232조 조사 과정에서 한국 철강업체가 중국산 강판을 강관으로 가공해 미국에 덤핑한다고 주장한 점도 상무부의 결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아직 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고 정부는 최종 결정 전까지 최대한 미국을 설득할 방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4월11일까지 상무부가 제안한 3가지 수입규제 중 어떤 방안을 적용할지 최종 결정한다.  

■무역확장법 232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수입을 제한하도록 규정한 미국 법안. 1962년 제정돼 그동안 실제 적용된 사례는 2차례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이 법안에 따른 철강제품의 안보 위협 조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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