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엔 금리인하→경기부양‘비둘기파’행보
통화정책‘우회전 깜빡이’켜나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오는 4월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현 한국은행 총재를 지명했다. 한국은행 총재 연임은 4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은 총재는 김성환 전 총재(1970~1978년) 이후 44년이 넘도록 연임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아주 특별한 자리였다.  이주열 총재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오는 21일에 진행이 되지만, 사실상 2014년 취임당시 한차례 인사청문회를 통해 재산 문제, 도덕성 등과 관련한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지난 4년간의 과오를 따지는 정책청문회가 될 전망이다.   
사실상 지난 4년 이주열 호(號) 1기 체제가 큰 과오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인사청문회에도 무난하게 통과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고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설명한대로 한국은행은 44년 만에 연임 수장을 맞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지난 1997년 ‘개정 한국은행법’에 따라서 중앙은행의 법적 독립성이 부여됐었다. 이와 함께 1998년부터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통화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됐고,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성을 부여받았다.
1997년 한은법이 개정된 이후 취임한 5명의 한국은행 총재들은 모두 임기를 보장 받으면서 그 독립성을 확실하게 보장 받았는데, 이번에 이주열 한은 총재가 연임을 하게 된 것은 더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다. 보수정권에서 임명된 한은 총재가 진보정권에서 임기를 보장 받았다는 것을 뛰어넘어서 연임을 했다는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
한국에서는 44년만에 중앙은행 총재의 연임 가능성이 큰 뉴스거리가 되고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중앙은행 수장이 연임을 하면서 안정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가는 사례가 많다. 대부분 중앙은행 총재 임기는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8년까지 보장돼 있으며, 연임을 해서 10년 이상 재임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관례적으로 연임을 하게 된다. 최근 40년 동안 연준 의장이 연임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연임 총재가 한국에서도 나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국도 선진국처럼 통화정책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뿌리가 서서히 내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주열 총재는 누구?
한국의 통화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이주열 총재는 1952년 강원도 정선군 출신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를 졸업하고 1977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등 주요 요직을 거치고 나서 부총재까지 줄곧 승진한 정통 한은맨이다. 그는 주로 조사국에 있었는데, 조사국은 한국은행의 성골 부서라고 할 수 있다. 내부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웠고 통화신용정책 분야 최고 전문가로 불렸다. 특히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은이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하는 데 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부총재를 끝으로 퇴임을 했다가 한국은행 총재로 2014년에 다시 화려하게 돌아왔는데, 한국은행 내부 출신이 총재가 된 사례는 지난 2006년 23대 한국은행 총재로 취임했던 이성태 전 총재에 이어 두번째다.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통화정책 최고 기관인 중앙은행의 수장의 성향을 두고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난 2014년 이주열 총재가 취임할 때만 해도 그를 두고 매파로 분류하기도 했었다. 매파 성향은 금융시장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통화긴축정책을 선호하는 스타일을 일컫는다. 그런데 의외로 이주열 총재의 지난 4년은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을 도모한 비둘기파 성향을 보여줬다는 건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이주열 총재는 재임 4년 동안 기준금리를 6차례 변경했는데, 이 가운데 5번은 기준금리를 내렸고, 단 한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지난 2014년 취임 당시 기준금리는 2.25%였던 것을 2016년 6월 1.25%까지 내리는 과감한 인하정책을 펼쳤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0.25% 인상하면서 기준금리는 현 1.50%가 유지되고 있다.
매파적 성향이 강했던 이주열 총재가 취임 이후 매의 발톱을 숨기고 인하 정책을 유지해왔던 것은 아무래도 취임한 첫 해부터 세월호 사태를 시작으로 메르스, 사드 문제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내수 경기를 위협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여기에다가 이전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대폭 편성하면서 경기부양을 본격화했다는 것도 이주열 총재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방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매파 성향의 정책기조 펼칠까?
어떻게 보면 이주열 총재가 지난 1기 체제에서 통화긴축정책을 통한 매파적 성향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점은 대내외 악재의 여파를 너무 고려한 처사가 아니었나 하는 지적도 일부 있다. 결론적으로 대내외적인 경기여건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계속 인하했음에도 결국 경기침체가 계속된 것은 특수한 상황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좋은 성적표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 2기 총재 체제에서 반드시 극복할 사항도 통화정책에 있다.
어찌됐든 이주열 총재가 새롭게 연임을 하게 된다면 자신의 성향대로 통화정책의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까? 시장에서는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단 문재인 정부는 이 총재의 연임을 내정하게 된 배경으로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명분을 달았다. 한국은행 총재의 권한을 어느 때보다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해 6월이 돼서야 금리 정상화를 하겠다는 걸 시장에 드러냈고 11월에 현 1.50%으로 인상했다. 이렇게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연임의 초입을 걷게 된 것이다.
이주열 총재가 임기를 마치기 전에 금리를 인상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 금리인상 시기를 놓치면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고 물가도 불안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기준금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기준금리가 지난해 연말부터 계속 올라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챙겨봐야 할 사항이다.미국 연준은 올해 최대 4번이나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는데,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1.25~1.50%로 형성돼 있고 한국 기준금리 1.50%와 같기에 미국이 올해 금리를 올리고 한국이 제자리걸음을 걷게 되면 금리가 역전돼 버린다. 금리 역전은 한국의 자본유출의 빌미가 되기 때문에 이주열 총재의 통화정책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주열 1기 체제 동안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등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매번 어떻게 갈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는데, 이는 이주열 총재가 시장과의 소통에서 다소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한 반성이었는지 그는 2015년 취임 1주년 자리에서 “지난 1년 동안 가장 아픈 점은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판”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주열 총재 시절에는 특이하게도 한국은행 창립 이후 처음으로 외부 홍보전문가 출신을 채용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하기도 했다.

소통하는 한국은행으로 변해야
그렇지만 임기 내내 이주열 총재는 언론이나 대외적인 자리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만 언급하고 다른 메시지는 던지지 않는 특유의 화법만 고수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관망 주열’이라는 별명도 달았다. 그가 앞서 설명한대로 경제지표 등 수치를 주로 다루는 통화신용정책 분야에만 오래 일해서 팩트 이외에 화법을 절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정통 한은맨들은 외부와 소통할 때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건 언급자체를 안 하는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과거보다 독립성이 커진 한국은행의 연임 총재로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러한 화법과 태도는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중앙은행의 수장은 시장경제는 물론 대통령의 행정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다. 금리가 낮은 기조에서는 가계와 기업이 은행 대출에 부담이 없어지게 되는데, 이 시기에 투자와 채용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겉으로 보면 커다란 양적 팽창이 일어나는 거 같지만, 무리하게 금리를 내리게 되면 물가가 치솟고, 가계 빚은 급증하고 부실기업이 속출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올해 금리인상 기조의 바람이 대외적으로 불고 있지만 한국은행이 어떠한 통화정책을 펼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다. 한은 총재도 함부로 시장에 메시지를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은의 결정에 앞서 시장에서는 이를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상시적인 교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일관된 이야기다.
한국경제의 주요 공직 수장 자리 중에서도 한은 총재처럼 참 어렵고도 중요한 자리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주열 총재가 1기 체제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2기 체제에서는 능수능란하게 보완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일 것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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