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인물] 재도전 나선 한경희 대표

한경희생활과학이 지난 20일 법원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조기 졸업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해 5월 경영난 끝에 법원 문턱을 두드린 지 불과 10개월 만인데요. 그간 샐러리맨의 신화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주부 신화 이야기는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큰 성공과 실패를 겪고 이제 재기를 꿈꾸는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만큼 주부 신화를 대표할 사람도 없을 듯하네요.
대표 상품인 스팀 청소기는 2000년 초반 정말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혼수 필수품으로 거론될 정도였는데요. 실제로 많은 판매가 있었고, 집 청소에 이골이 난 주부라면 1대 쯤 구매를 하려고 고려했을 겁니다.
대략 900만대가 팔렸다고 하니 두집 중 한집은 한경희 스팀청소기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경희 대표는 걸레 청소를 좀 더 쉽고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따뜻한 스팀이 나오는 청소기를 개발했습니다. 아이디어 상품이었던 거죠.
한경희 대표는 이력이 특이합니다. 사업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공무원 출신으로 교육행정사무관을 지냈습니다. 공무원이 사업가가 되는 케이스는 매우 드뭅니다.
게다가 그녀는 두아이의 엄마로 워킹맘이었죠. 일과 집안 살림을 함께하는 워킹맘이 겪는 생활 고충을 어떻게 풀까, 하는 고민에서부터 한경희생활과학이 출발한 겁니다.
지난 1999년 한영전기를 설립해서 스팀청소기 개발에 들어간 한경희 대표는 집 담보로 1억원 대출을 받는 등 주부로서는 배포가 컸습니다. 그런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투자금을 10억원 정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히트 상품이 나오지 않으면 사업을 포기할 상황까지 치달았는데요.
그걸 한방에 전세 역전 시켰던 계기가 있었습니다. TV홈쇼핑이었죠. 2000년대 중반부터 TV 방송을 타면서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국내시장에서만 대박을 친 것에 머물렀다면 한경희 대표가 주부 CEO 신화로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다.
2006년에는 해외 진출에 시도합니다. 그 과정도 참 신기했는데요. 한경희 대표는 미국의 전설적인 마케팅 전략가인 알 리스 회장에게 이메일을 씁니다. “나는 미국에 진출하고 싶고, 우리 회사 제품은 이런 것이다”라고 직접 설명을 하는 메일을 여러 차례 보내 설득합니다. 알 리스는 결국 한경희생활과학을 미국에 진출하게 도와주게 되는데요. 알 리스는 스팀청소기를 마루 살균기(Floor sanitizer)라고 포지션을 잡아줬고 브랜드 마케팅을 코치해 줬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TV홈쇼핑으로 성공을 했듯이 미국에서도 홈쇼핑을 통해 유통마진과 홍보효과를 보려고 했습니다. 세계 1위 규모 홈쇼핑인 미국 QVC에서 론칭방송을 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2시간만에 4만대가 넘게 팔렸는데요. 우리 돈으로 약 5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겁니다. 그뒤에 2008년 800만달러를 기록했고 역사적인 2009년에 16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QVC가 한경희스팀청소기에 Rising Star라는 상까지 줍니다. 그래서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선정한 세계적인 여성기업인 50인에 한경희 대표가 선정되는 기쁨도 안게 됩니다.
이때까지가 한경희생활과학의 성공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못가 회사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흔히 말하는 승자의 저주가 시작된 겁니다.
“무조건 많이 팔면 좋은 것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한경희생활과학이 미국시장에서 간과한 것은 국내 홈쇼핑과 미국 홈쇼핑의 판매방식과 판매계약조건을 꼼꼼하게 따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미국은 반품, 환불까지 판매자가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판매자가 방송국의 방송시간을 사는 겁니다. 방송국은 방송만 서비스하는 일종의 스튜디오 임대사업 같은 거였습니다.
더 간과한 것은 많이 팔았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AS망을 구축했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생활가전만큼 AS가 중요한 제품도 없을 겁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미국시장에서 AS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2008~2009년 사이에 한경희생활과학은 2배나 성장을 했는데요. 이렇게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할 때는 사업 전반에 적신호가 나타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겁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당시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을 너무 서둘렀습니다. 한 대표는 미국 시장의 어려움을 만회하려고 미국 캡슐음료시장에도 도전하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경희 대표의 사업을 어렵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시작됩니다. 바로 한통의 이메일 때문이었는데요. 2014년 부에노라는 사람이 메일을 통해 한경희생활과학과 탄산수 제조기 업체인 SDS의 상호협력을 제안했다는 겁니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1년 6개월 안에 IPO로 7500만 달러 수익이 가능하다는 솔깃한 제안이었죠. 마침 한국시장에서도 탄산수 열풍이 불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한경희 대표는 역시 통 크게 120억원을 SDS에 투자합니다. 문제는 탄산수 제조기 샘플을 받았는데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대 실패였습니다.
한경희생활과학의 가장 큰 자산은 한경희 대표 자신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가전제품을 개발한 가전 전문기업도 아니었고, 연구개발(R&D) 비즈니스 관련 투자도 많지가 않았습니다. 스팀청소기는 아이디어 상품이지, 기술력으로 타 브랜드와 경쟁하기 어려운 상품이 아니었습니다.
이걸 한경희 대표가 몰랐던 건 아니겠죠. 다만 “한경희가 만들면 다르다”라는 브랜드 가치를 세일즈했던 겁니다. 실제 사례로 한경희 대표는 한경희뷰티라는 화장품 계열사를 통해 2011년 진동파운데이션으로 홈쇼핑에 진출했고, 5개월만에 100억원 매출을 돌파합니다. 대박이었죠. 문제는 여기서도 과욕이 보입니다. 파운데이션 분야를 넘어서 기술력과 노하우가 필요한 기초화장품 시장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죠.
한경희생활과학은 2009년 매출 975억 영업이익 88억으로 정점을 찍고 계속 하향추세를 유지하다 2014년 매출 633억 영업이익 -71억을 기록합니다. 그 이듬해 순손실 300억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들어갑니다. 지난해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배경에는 이러한 여러 사건이 있었던 겁니다.
한경희 대표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도약을 선언했습니다. 그녀의 브랜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다만,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성공을 위해서는 이제라도 경영기술이 뛰어난 전문경영인의 영입이 필요해 보입니다.

- 글 : 장은정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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