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미국의 철강 ‘관세 폭탄’을 일단 피했다. 다음달 말까지를 기한으로 관세 유예조치를 받은 것이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명령 발효를 하루 앞두고 최악의 상황을 피하면서 ‘영구면제’를 위한 협상 시간을 번 셈이다.
지난 2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캐나다, 멕시코, 호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6개국과 유럽연합(EU)에 대해 관세 부과를 잠시 중단(pause)하기로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명령은 이번에 잠정 유예된 나라들을 제외하고 중국, 인도 등 나머지 국가들을 대상으로 지난 23일부터 효력이 발휘됐다.
미국, 중국과의 무역전쟁 동맹 확보
미국은 4월말까지 유예조치를 받은 국가들과 관세 면제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이들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통한 무역적자 축소,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전쟁 동맹국 확보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화를 더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진행 중인 캐나다와 멕시코의 경우 일찌감치 NAFTA에서 ‘공정한 결과’를 얻으면 이 두 국가를 면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21일(현지시각) 미 하원 세입위원회에서 캐나다와 멕시코를 거론하면서 “우리는 한·미 FTA를 개정하는 절차에 있기 때문에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U는 미국의 철강 관세에 대한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으며 최근 관세 등 무역 문제에 대한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미국과 시작했다.
미국은 관세 면제 조건으로 EU가 미국이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데 공조할 것을 요구하는 등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동참할 동맹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이며 대미 철강 수출 규모가 크지 않다. 주요 철강 수출국인 브라질은 보복 위협과 양국의 우호 관계를 내세워 관세 면제를 설득해왔다.
미국이 관세를 유예하겠다고 밝힌 국가에 또 다른 동맹인 일본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두고는 아직 협상이 그만큼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주요 우방인 데다 중국을 상대로 한 무역전쟁에 필요한 국가라 결국 면제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있다.
FTA 중대기로…車 재협상 관건
이번 유예조치와 관련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잠정유예를 받은 국가들은 ‘조건 협상’을 해야 한다”면서 “우리도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건 협상이란 한·미 FTA와 철강 관세 면제를 연계한 협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김 본부장을 위시한 우리 협상단은 한·미 FTA와 철강 관세 면제 문제를 묶어 협상을 진행해왔다.
철강을 볼모로 압박하는 미국의 요구를 적절한 수준에서 막아내지 못할 경우 한·미 FTA에서 철강보다 더 큰 것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은 한·미 FTA에서 최대 관심 분야인 자동차를 중심으로 다양한 요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는 2017년 전체 대미 무역흑자(178억7000만달러)의 72.6%(129억6600만달러)를 차지했다.
미국이 한·미 FTA 개정을 요구한 이유가 무역적자 해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동차를 건드리지 않고 미국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게 정부와 통상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미국은 안전기준 미충족 차량에 대한 2만5000대 수입 쿼터 확대, 트럭에 대한 관세 연장 등 관세 양허 일정 조정, 원산지 기준 개정 등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정부가 NAFTA 회원국인 캐나다, 멕시코를 ‘성공적인 나프타 재협상 완료’조건으로 철강 관세 대상에서 처음부터 일시 면제한 것과 비슷한 유형의 사례로 자주 거론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