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에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가 실려 있다. ‘나무그루터기에 앉아 토끼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성어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옛날 중국 송나라의 농부가 밭을 갈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토끼 한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은 것이다. 횡재를 한 농부는 그 때부터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당연히 토끼는 오지 않았고, 농부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고사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에만 얽매여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자신이 배웠던 지식과 경험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결국 뒤처지게 되고 세상의 비웃음만 사게 된다.
수주대토의 농부는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그쳤지만 큰 비극을 맞게 된 사람도 있다. <욱리자(郁離子)>에 실려 있는 고사다.
“구장(句章) 땅의 농부가 풀로 울타리를 덮었다. 하루는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 풀을 들추어보니 꿩 한마리가 거기에 있었다. 횡재를 한 그는 다시 풀을 덮어놓고 꿩이 잡히기를 기대했다. 하루는 또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 풀을 급히 들추자 그 속에는 독사 한마리가 들어있었다. 그는 독사에 물려 죽고 말았다.
욱리자가 말했다. ‘이는 작은 일이지만 커다란 교훈이 될 수 있다. 천하에는 뜻밖의 복이 있지만 뜻밖의 화도 있다. 소인들은 화와 복이 서로 기대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요행이 늘 있을 걸로 여기는 이유다. 실의(失意)는 늘 득의(得意)로부터 비롯된다. 이로운 것만 보고 해로운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남는 것만 알고 패망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욱리자의 이 말은 <도덕경> 58장에서 비롯된다.
“화는 복이 의지하는 바이고, 복은 화가 잠복하는 곳이다(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위의 두 고사가 ‘복은 화가 잠복하는 곳’이니 당장의 횡재에 안주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라면, <회남자(淮南子)>에 실려 있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는 두가지 상황을 어우른다.
“변방의 마을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노인이 아끼던 말이 도망가자 이웃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노인은 태연히 말했다. ‘괜찮소.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노인의 말을 듣고 비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몇달 후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마리를 거느리고 돌아왔다. 주변사람들이 축하를 하자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어떻게 압니까?’라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낙마를 해서 다리가 부러졌다. 노인은 이때도 ‘이게 복이 될지 모릅니다’라며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얼마 후 변방에 오랑캐가 쳐들어왔고 온 나라에 징집령이 내려졌다. 다리가 부러진 노인의 아들은 징집되지 않았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극적인 일이 반복돼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우리 삶을 멀리 보면 새옹지마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무조건 좋은 일도, 무조건 나쁜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행운이 비극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간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원리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눈앞의 어려움에 절망하고 포기하거나 작은 성공에 도취돼 자만에 빠지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주어진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을 보는 관점과 대처하는 자세가 문제다.

- 조윤제 《천년의 내공》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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