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주춤했던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가 약 4개월 만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진은 은행권이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을 비롯한 새 대출규제를 시행한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은행 창구 모습.

잠시 주춤했던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세가 약 4개월 만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달 말 시중은행이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등 고강도 대출규제를 도입하기로 하자 도입 전에 미리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취약차주의 이자 부담이 1.7%포인트 상승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에 접어든 가운데 한계 차주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우려를 낳는다.

“규제 전에 대출받자” 가계 빚 급증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 등 5개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3월말 현재 총 534조736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에 비하면 3조688억원 늘어났다. 증가액은 지난해 11월 4조6509억원 증가 후 넉달 만에 가장 많았다.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매달 3조∼4조원씩 늘어났던 가계대출 잔액은 8·2 부동산 대책과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의 여파로 올해 들어 급격히 증가세가 둔화했다.
올해 초 새로운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이 시작되면서 1월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1조5462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증가액은 지난해 4월 이후 가장 적었다. 2월에도 증가액은 1억8137억원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달에는 가계대출 잔액이 돌연 3조원 이상 증가한 것이다.
가계대출 가운데서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1월과 2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전월 대비 증가액은 각각 9565억원, 1조5493억원이었다.
하지만 지난달에는 전월보다 2조2258억원 증가하면서 382조528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26일 DSR 등 고강도 대출규제 도입이 예고되자 일부 차주들이 미리 대출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DSR는 1년 동안 갚아야 하는 원금 및 이자를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기존 DTI·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는 주택담보대출만 따졌지만 DSR는 학자금 대출, 자동차 할부금, 마이너스 통장까지 모두 따진다. 이 때문에 DSR를 적용하면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이 더 까다로워진다.
마이너스 통장 등 신용대출이 많은 유주택자라면 DSR 도입 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두는 편이 유리한 셈이다.
지난달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도 넉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주요 은행 개인사업자 대출은 지난달 2조2108억원 늘어난 206조431억원을 기록했다. 개인사업자 대출이 전월보다 2조원 이상 늘어난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자영업자를 겨냥한 소득대비대출비율(LTI) 도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LTI는 자영업자의 소득에 견줘 대출 규모를 따지는 지표다.
아직은 참고 지표에 불과하지만 1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에 대해서는 LTI를 산출해두고 10억원 이상 대출에는 LTI를 따져 심사의견을 기록하도록 했다. 자영업자 차주 입장에서는 부담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DSR 등 강화된 대출규제 도입을 앞두고 추가 대출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사람들이 미리 대출을 신청하는 등 쏠림 현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취약차주들에 금리 인상은 ‘치명타’
한편 취약차주 5명 중 1명은 연 소득 40% 이상을 이자 갚는 데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약차주는 3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면서 저신용(7∼10등급) 또는 저소득(하위 30%) 차주를 의미한다. 금리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취약차주의 부담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통화위원회 금융안정회의에 보고한 ‘금융안정상황’ 자료에서 지난해 말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바탕으로 이러한 분석 결과를 내놨다. 다만 한은은 이번 조사에서 이자 상환액만 연 소득과 비교한 ‘이자 DSR’을 추정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대출 전체 차주의 이자 DSR은 9.5%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른다고 가정하면 이자 DSR은 10.9%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취약차주의 이자 DSR은 24.4%에서 26.1%로 1.7%포인트 상승한다. 반면 비취약차주의 상승 폭은 1.4%포인트(8.7%→10.1%)다.
금리가 2%포인트 상승하면 전체 차주의 이자 DSR은 12.3%, 취약차주는 27.8%가 된다. 5%포인트 상승 시에는 전체 차주는 16.4%, 취약차주는 31.9%까지 이자 DSR이 오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자 상환 부담이 큰 고 DSR(이자 DSR 40% 이상) 차주 비중은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 4.2%에서 5.0%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차주의 경우 고 DSR 비중(19.5%→21.8%)은 2.3%포인트나 확대된다. 취약차주 5명 중 1명은 순수하게 이자만 갚는 데 소득의 40% 이상을 쓴다는 의미다. 비취약차주(3.0%→3.8%)에선 그 비중이 0.8%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취약차주는 지난해 말 149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가계대출자(1876만명)의 8.0% 수준으로, 한은이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4년 이래 최대다. 이들의 대출 금액은 전체 가계대출의 6%인 82조7000억원이었다. 취약차주 부채가 80조원을 돌파한 것도 지난해이 처음이다.
다중 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인 차주는 40만6000명에서 41만800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가계대출자의 2.2% 수준이다. 이들의 대출 금액은 12조7000억원으로 전체 대출의 0.9%에 달했다. 취약차주 대출의 66.4%는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은행에 의존하고 있었다.

한은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할 것” 전망
가계대출 연체율은 저신용자에서 상승하는 모습이다. 전체 가계대출자 중 연체 차주 비율은 2016년 4분기 이후 2% 후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7등급 이하 저신용자에선 연체율이 2016년 4분기 38.4%에서 지난해 4분기 41.7%로 올랐다.
한은은 “취약차주의 차주 수와 부채 규모가 늘어나는 가운데 대출 금리 상승 시 이들 차주의 채무 상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유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취약차주 부채 전망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대출 규제 대책이 시행된 지 오래지 않았기 때문에 대책 효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은은 지난달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연 27.9%에서 24.0%로 낮아짐에 따라 금리가 올라가더라도 취약차주들의 금리 부담은 이전과 견줘 다소 완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금리가 상승하면 가계 이자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단기적으로 큰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부채 보유 가계가 소득과 자산이 높은 층이 많아서다.
한은에 따르면 순자산(총자산-총부채) 상위 40% 가구의 부채가 전체 금융부채의 59.2%를 차지한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대출 중 고소득(상위 30%), 고신용(1∼3등급) 차주의 대출 비중은 각각 65.9%, 68.7%로 1년 전보다 0.4%포인트, 3.0%포인트 상승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5.2%포인트 상승한 159.8%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가계부채 증가율은 8.1%로 처분가능소득 증가율(4.5%)을 웃돌아서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2016년말 81.8%에서 지난해말 83.8%로 상승했다.
한은은 “신DTI, DSR, 예대율 규제 변경 등 추가 대책, 대출 금리 상승 압력 등으로 향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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