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외길…‘아날로그+기술력’으로 세계시장 진출
장수 넘어 장인기업 역사 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사람들이 기록하고 읽고 하는 첨단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아날로그 연필의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런 세상의 빠른 변화 속에서도 4대에 걸쳐 연필 등 문구류를 만드는 기업이 있다. 바로 동아연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디지털 시대에서 문구는 사양산업일 것이다. 그럼에도 72년 동안 꿋꿋하게 문구 제조기업으로 살아남은 동아연필의 비결은 무엇일까? 앞으로도 동아연필은 아날로그 감성의 대표격인 연필 등의 문구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72년의 장수기업
일단 동아연필의 업력은 장수기업이라고 할 만큼 오래 됐다. 지난 1946년 고 김정우 회장이 일본에 미츠비시 연필 주식회사에서 연필 만드는 기술을 배워와 동아연필을 설립한 것이다. 동아연필은 문구산업의 선두주자로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국내 연필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현재는 문구점에 가면 다양한 국가의 필기구 등이 만날 수 있는데, 60, 70년대만 해도 연필 한자루가 귀했고, 대부분 일본 제품을 수입해다가 써야 했다. 동아연필이 탄생하면서 어떻게 보면 수입대체 효과도 올렸던 것이다.
지금은 연필 등 필기구 시장이 크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동아연필은 2016년 기준으로 4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중성펜 등 주력 제품은 시장 점유율이 무려 60%에 달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대전에 자리 잡은 기업인데, 지난해에 대한민국 명문 장수기업으로 선정될 만큼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레트로 등 아날로그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연필 등 필기구 사업을 하는 동아연필에게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창 시절에 필기구에 대한 애착을 한번씩은 가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잘 써지는 필기구, 디자인이 좋은 필기구, 아니면 유명한 캐릭터가 그려진 것을 선호하기도 했을 것이다.
현재 김학재 대표가 동아연필의 가업을 4대째 잇고 있는데, 김학재 대표도 학생 때 필기구, 특히나 연필을 많이 썼던 아날로그 세대였다. 비교적 젊은 CEO이긴 하지만 이러한 아날로그 감성이 있기 때문에 70년도 넘게 필기구 사업에 주력하는 동아연필의 가업을 물려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전자 필기구가 있는 시대이고, 업무를 하거나 과제를 할 때도 PC 키보드를 치는 세상인데, 사람들은 왜 연필과 같은 필기구를 사용하는 것일까? 아날로그 감성을 유발하는 매력은 아무래도 부드러운 질감과 사각사각 써지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쓴다는 건 어떤 필기구로 쓰느냐에 따라서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감성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글을 쓰거나 기록하는 사람이 연필로 쓰느냐, 볼펜으로 쓰느냐, 만년필로 쓰느냐에 따라서 본인 스스로 글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달라지는 매력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기술 집약적인 제조기업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아날로그의 향수와 감성을 느끼는 세대는 그나마 30대 이상 되는 세대일 것인데, 그렇다면 동아연필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도 10대와 20대를 공략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원래가 문구를 만드는 제조기업의 기반은 상당히 취약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국내에서 직접 연필, 볼펜 등과 같은 필기구를 만드는 곳이 2014년 기준으로 8곳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취약한 내수시장인데, 더 품질이 좋다거나 가격경쟁력이 높은 외국 브랜드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다 보니까 시장 자체가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볼펜 하나만 놓고 보면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산업이라는 특이점도 있다. 볼펜을 쓰다보면 잉크가 쏟아져 나오는 일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필기구에도 많은 기술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동아연필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다시 신제품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문구류는 수명이 짧은 편이라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나 동아연필이  보유한 기술 중에서도 중성펜에 장착한 잉크가 흘러내리지 않는 ‘역류 방지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또 필기구를 사용할 때만 잉크가 나오는 ‘U 스프링 기술’도 내놓으라 하는 기술력이다. 볼펜 뚜껑을 미처 닫지 못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소비자의 실수로 펜의 잉크가 마르지 않도록 하는 투명한 ‘고체형광펜’도 동아연필이 자랑하는 기술상품이다.
동아연필은 대략 60개의 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약 130명 직원 중에 30명 가까운 기술인력을 배치하고 있다고 한다. 나름 동아연필만의 기술이 70년 넘게 축적되고 발전되고 계승돼 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동아연필의 제조 환경은 여간 까다로운 분야가 아닌 것이다.

해외시장에서도 우뚝
동아연필은 현재 동남아시아, 유럽 등 70개국에 수출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과 일본 등의 기업들이 전 세계 문구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연필은 자신들의 주력 품목인 중성펜 생산량의 65%를 해외 수출하고 있는 중이다. 동아연필은 1963년부터 수출기업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으며 1999년에는 중국에 ‘광저우 동아문구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동아연필은 해외 문구시장에서는 가격대비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여기서 일본이나 독일이 문구를 잘 만드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원래 그 나라가 제조업 분야에 있어 강국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문구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뿌리에는 자국의 제조 노하우가 풍부해야 하는데, 특히나 정밀 기계공업의 기초와 기반이 아주 탄탄해야 한다. 동아연필의 고민은 항상 여기에 있었다. 품질로는 일본이나 독일 기업들을 넘어야 했고, 가격으로는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를 이겨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산업을 이끌고 가려면 기술력이 충만한 제조업 기반의 중소기업이 필요하고 장수기업이 필요한 것이다. 장인이란 한 분야에 오래 기술을 쌓은 사람을 일컫는데, 한마디로 문구산업에서는 장인기업이 되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동아연필은 장수기업을 넘어 장인기업이다.
최근 젊은 층이 손글씨, 캘리그라피 등을 배우면서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은 동아연필에게는 좋은 트렌드다. 이러한 손글씨, 캘리그라피 등의 유행으로 온라인 마켓에서 문구류 판매율이 무척 늘었다고 하고, 특히나 만년필의 경우에는 지난해 19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문구류 소비 증가의 원인을 단순히 아날로그 감성으로의 회귀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스몰 럭셔리’ 소비 경향으로도 봐야 한다. 문구류는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재화이다. 손으로 만지작 거릴 수도 있고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나 젊은 층은 손글씨, 캘리그라피 등으로 쓴 자신의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SNS 등으로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문구 제품을 통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동아연필은 생존전략이자 시장의 돌파구를 새롭게 찾아야 한다. 그 방편 중에 하나가 고급화 전략이 아닐까 싶다. 동아연필은 72년 역사에 걸맞은 명품 제품이 필요하다. 스몰 럭셔리 소비 등 하나를 소비해도 가치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고급화 전략은 동아연필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방편으로는 디지털 제품에  대한 도전이다. 최근에 IT기업에서 종이에 필기를 하면 디지털로 기록되는 전자펜이 출시됐다. 얼리어답터들이라면 아는 제품이다. 이것은 역발상 전략이다. 특히나 펜이 있는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스마트폰에서 전자펜을 쓰다 보면 연필이나 만년필을 쓰는 듯한 필기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력을 실감하고 있다. 동아연필이 여러 도전을 통해서 세계 문구 시장에서 ‘Made in Korea’의 위상을 떨쳐 글로벌 장인기업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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