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가 경쟁 입찰할 때 공급업체 간 가격경쟁을 유도해 단가를 인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최저가를 써낸 업체 1위부터 3위까지 물량을 주겠다고 해서 3곳을 선정한 후 모든 업체에게 동일하게 최저가를 적용한다. 선박부품업체 A사는 이럴 경우 인건비를 맞추기 힘든 상황이 발생한다고 하소연했다. A사의 관계자는 “우리 회사도 지난해 같은 방식으로 두차례나 20~30% 낮은 단가로 납품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가스를 제조하는 화학업체 B사의 관계자는 “원사업자와 협력사 간 가격협상 과정 자체가 부당하다”며 “원사업자는 단가인하를 요구할 때 특별한 부가적인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반면 협력사가 단가인상을 요청하려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료를 요구하거나 준비시킨다”고 토로했다.
#원·부자재와 인건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20년 전과 같은 단가에 납품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원단 생산업체인 C사는 “지역에 따라 단가가 다를 수 있는데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타 지역(서울)의 단가를 언급하며 여기에 맞춰달라고 한다”며 “계속된 경영악화로 폐업위기에 놓여 있으나 당장 문 닫을 순 없어 빚을 내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가 지난 2~3월에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 제조업체 50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제조업 납품단가 반영 실태조사’의 핵심은 ‘제조원가는 오르는데, 납품단가는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기업의 57.7%는 지난해 제조원가가 전년보다 올랐다고 답했다. 그러나 납품단가가 인상됐다는 업체는 17.1%에 그쳤다. 제조원가를 세부적으로 따져봐도 같은 결과 였다.
504개사가 응답한 제조원가의 구성요소는 재료비, 노무비, 경비 등이지만, 이 제조원가가 올랐다고 응답한 업체는 각각 53%, 51.8%, 35.5%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조사한 52.7%, 56.7%, 35.7%와 유사한 수치로, 제조원가가 계속해서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조원가가 상승세에 있다면 결국 납품단가의 인상도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실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거래실태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원사업자가 지급하는 납품단가가 인상됐다고 응답한 중소 제조업체는 각각 16.3%, 13.1%, 9.5%로 원사업자 대부분이 중소 협력업체의 제조원가 상승 부담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 납품단가 인상 여부를 묻는 응답은 각각 23.0%, 25.0%, 12.3%로 조사된 바 있다. 올해가 지난해 보다 재료비, 노무비, 경비 등에서 원가부담이 훨씬 늘어난 것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제조원가 가운데 재료비, 노무비, 경비 비중을 각각 56.6%, 27.0%, 16.5%로 잡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섬유·의류(33.2%), 조선(30.2%) 업종의 노무비 비중이 타 업종에 비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원사업자로부터 부당한 단가인하를 경험한 업체는 지난해 14.3%보다 소폭 감소한 12.1%로 조사됐다. 하지만, 섬유·의류 업종의 경우 업계 평균보다 약 2배 높은 21.6%로 나타나 납품단가 관련 불공정행위가 가장 심각한 업종인 것으로 조사됐다.
원사업자가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인하하는 방법은 ‘경쟁업체와의 가격경쟁 유도’(34.4%)와 ‘추가 발주를 전제로 단가를 인하’(23.0%)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밖에도 ‘지속적 유찰을 통한 최저가 낙찰’(19.7%) ‘주기적 단가 인하’(8.2%) 순으로 조사됐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화학’(75.0%), ‘금속·비금속’(50.0%),‘자동차’(75.0%)의 경우 ‘추가 발주를 전제로 단가 인하’ 비중이 타 업종들과는 달리 가장 높게 조사됐다.
또한, 중소 제조업체 10곳 중 7곳이 올해 16.5%나 폭등한 최저임금 인상이 제조원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들 업체 중 제조원가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공정하게 반영될 것이라고 응답한 업체는 불과 37.2%에 그쳤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제조원가 인상이 납품단가에 공정하게 반영되기 위해서는 ‘원사업자의 자발적 인식변화를 통한 공정원가 인정문화 확산’(48.4%)이 가장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공정한 납품단가 결정을 위한 법·제도 마련’(34.5%), ‘수급사업자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협상력 강화’(9.7%), ‘우수 원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5.6%) 순으로 조사됐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적정한 납품단가가 보장될 때 중소제조업체도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한 혁신을 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공정한 납품단가를 인정하는 공정거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하며, 정부는 불공정행위가 빈번한 업종과 노무비 비중이 높은 업종에 대한 납품단가 반영 실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적 상생 방안 마련 기틀도
중소기업계는 중소기업 납품단가의 현실화가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입장으로 제도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표준하도급계약서 개선 및 활용 권고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 적용 범위 확대 △납품단가 조정협의신청 보복금지 조항 신설 등 중소기업계의 오랜 숙원 사항을 현실화해 주길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당정협의를 개최하고, 중소기업의 고충인 납품단가 현실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방안은 정부가 공공조달 시장의 인건비 산정 기준이 되는 ‘중소제조업 직종별 임금 조사’를 현재 연 1회에서 연 2회로 늘리는 등 공공부문에서 먼저 납품단가의 현실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다.
이어 정부는 민간하도급 시장에서도 중소기업의 최저임금 인상분을 단가에 반영해 주도록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자발적 협력을 유도할 방침이다. 이번 당정협의의 주요 방안은 인건비 상승 부담은 분명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와 대·중견기업이 함께 나눠서 져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지난 6일 ‘하도급분야 상생방안 발표회’를 개최하면서 협력 중견기업과 상생을 위한 대기업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독력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 발표회에는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LG디스플레이, 포스코,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9곳과 중견기업인 1차 협력사 2곳이 함께 했다. 직접적으로 중소기업과의 상생 현안은 아닐 수 있지만, 대·중견기업 간의 하도급 상생의 잰걸음이 향후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현실화의 실마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드는 부분이다.
이날 참석한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1차 협력사는 물론 2, 3차 협력사(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해 상생펀드를 마련하거나, 기금을 출현하고 기술협력을 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기아차는 2, 3차 중소 협력사의 인건비 부담 완화를 위해 기금을 신규로 조성해 자금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등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한편 공정위는 공정거래협약 제도를 더 손봐서 상생협력의 효과가 2차 이하 거래단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에게도 확산되고 관련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이 개선될 수 있도록 이번 달 안에 평가기준을 보완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부당 전속거래도 개선해야
중소 제조업체가 납품단가의 인상을 원사업자에게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중소 협력사에게 특정 대기업과 거래하도록 강요하는 전속거래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속거래는 원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협력사에 특정 사업자와만 거래를 강요하는 행위를 말한다. 전속거래가 협력중소기업에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할 수 있고 기술 탈취, 글로벌 진출 제한 등 불공정거래를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특히 한국경제의 큰 축인 자동차와 전자업종을 중심으로 대기업과 전속거래 관계에 있는 협력중소기업에서 큰 폐해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의 경우 최근 3년간(2014년~2016년) 영업이익률을 보면 완성차 업체 6~9%대, 완성차 업체 계열사 7%대, 전속협력업체 3%대로 조사돼 경영성과의 격차가 뚜렷한 것으로 분석됐다. 비전속협력업체의 경우 최근 2년 (2014년~2015년) 영업이익률이 4~5%대로 비전속협력업체와 비교했을 때도 경영성과가 뒤처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자산업도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영업이익률 격차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3년간(2013년~2015년) 영업이익률을 살펴보면 대기업은 9~13%대, 전속협력업체는 3%대로 6~10%포인트의 경영성과 격차를 보였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전속거래 개선 방안과 관련해 “전속거래를 제한할 경우 국내 협력업체의 위기는 단기적으로 가중될 것”이라며 “기존의 하도급 관계가 파트너 관계로, 수직적 거래가 수평적 거래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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