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4만명의 소도시인 독일 암베르크에 자리한 지멘스의 스마트공장은 모든 공정을 정밀 추적해 수집되는 하루 5000만건의 정보를 바탕으로 전 제품의 99.7%를 주문 후 24시간 이내에 출하할 수 있고 불량률은 0.001%에 불과하다.

독일 뮌헨에서 북쪽으로 200㎞ 떨어진 암베르크는 인구 4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물론 전 세계 기업인들이 4차 산업혁명을 공부하기 위해 몰려든다. 이들이 암베르크를 찾는 이유는 지멘스의 스마트공장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더스트리 4.0’ 핵심과제 ‘디지털라이제이션’
지멘스는 전자전기 분야에서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1879년 지멘스는 세계 최초로 외부 전력에 의해 움직이는 전기기관차(전철)를 개발했고, 1880년에는 지금과 같은 전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제작했다.
또한, 이후에도 인공심장박동기, 뇌 단층촬영기, 컬러 액정 휴대폰 등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2000년대부터는 에너지, 산업자동화, 헬스케어 분야 쪽으로 사업을 집중 발전시켰다.
이렇게 하드웨어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있던 지멘스 역시 독일 제조업 위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독일 제조업 정책의 핵심은 생산기지를 자국 내에 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흥국들의 저가정책과 후발국가들의 기술발전은 이를 위협했고, 제조업 위기를 타개할 복안이 필요했다.
이때 메르켈 총리가 2011년 하노버 산업박람회(Hannover Messe)에서 이야기 한 것이 바로 ‘인더스트리 4.0’(Platform Industry 4.0)이었다.
제조업이 강점인 독일이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잡은 출발점은 첨단 IT산업과 제조업의 유기적 결합이었다. 인위적으로 IT 위주로 산업 구조를 바꾸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강점 분야인 전통산업에 IT의 색깔을 덧입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스마트공장이다. 스마트공장이 인더스트리 4.0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 혁신을 위해 지멘스는 ‘인더스트리 4.0’의 과제를 크게 3가지로 봤다. △제품개발 가치사슬(value chain)의 수평통합 △엔지니어링 통합 △공장 생산설비의 수직 통합이었다. 그리고 통합을 위한 지멘스의 답은 바로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 스마트공장화였다. 현재 지멘스 인더스트리 4.0으로 대표되는 독일 암베르크 공장은 디지털라이제이션의 전초기지다.

하루 5000만개 데이터 처리
암베르크 공장은 먼지 한점 없이 깨끗해 마치 커다란 병원 수술실 같다. 축구장의 약 1.5배인 1만㎡의 널찍한 공간에서 컨베이어벨트는 쉴 새 없이 돌아갔지만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암베르크 공장에선 전체 공정의 75%가 인간의 손이 필요 없는 자동화로 진행된다. 이 공장이 만드는 건 ‘시마틱 프로그램 가능 논리 제어 장치’(PLCs)로 불리는 일종의 칩이다.
암베르크 공장이 놀라운 건 이곳에서만 1000개가 넘는 변형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하나의 제품만을 만들 수 있는 일반 공장과 비교하면 엄청난 혁신이다.
예를 들어 일반 공장이 자동차용 PLCs와 선박용 PLCs를 만들기 위해선 2개의 생산 라인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암베르크 공장에선 컴퓨터에 입력하기만 하면 같은 생산 라인에서 자동차용 PLCs와 선박용 PLCs를 함께 만들 수 있는 것이다.
1년에 5000여차례나 생산 라인이 자유자재로 바뀐다. 비용 절감은 물론 고객이 직접 디자인한 다양한 상품을 실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암베르크 공장의 모든 부품은 일련번호가 있어 이상 발생 시 어느 지점에서 어떤 부품이 잘못됐는지 즉시 확인할 수 있다. 기계 이상과 불량품 생산을 감지하는 1000개의 센서와 스캐너가 설치돼 있다. 제조 공정 각 단계마다 제품의 이상 유무를 점검한다.
생산현황 모니터링 시스템 화면을 터치하면 전체 공장의 생산현황이 도표로 표시되고, 총 생산량과 지난 자정부터 지금까지 발생한 불량제품 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불량제품이 발생한 부분은 터치를 통해 어떤 제품이 몇번째 라인에서 언제 생산됐는지까지 초 단위로 기록되며, 불량이 발생한 생산라인 상황 확인 및 해당 라인 생산 속도 변경, 불량 제품에 문제가 된 부품을 교체하는 것까지 모두 가능하다. 불량품을 막기 위해 하루 5000만개의 데이터를 처리한다.

근로자 수 유지하면서도 생산량 13배↑
암베르크 공장은 1년에 1500만개의 제품을 생산한다. 초당 한개꼴로 만드는 셈이다. 1989년 설립된 이 공장은 지난 20여년간 스마트공장으로 차츰차츰 진화해 생산량을 13배로 늘렸다. 그러나 전체 근로자 수는 75%의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음에도 공장 설립 때와 비슷한 1300여명이다.
공장 완공 당시와 동일한 생산면적과 노동력에서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던 이유는 암베르크 공장이 자동화에만 집착한 것이 아닌 기계와 인간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구분해 최적의 생산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공장 자동화율이 높을수록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컸다. 기계에게 단순 노동 일거리를 넘겨주는 대신에 암베르크 공장 직원들은 소프트웨어(SW) 관련 교육을 받고 데이터 분석과 시스템 관리 업무로 전환하는 노동의 고도화를 이룬 것이다.
지멘스 관계자는 “미래의 공장들은 지금보다 훨씬 탄력적이고 신속하게 일회용 제품들을 제조하는 경쟁력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그러려면 복잡하고 고도로 숙련된 작업들은 SW의 도움을 받아 사람이 처리하는 방식의 디지털 생산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암베르크 공장이 가장 자랑하는 건 바로 품질이다.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의 생산비율) 99.999%, 즉 100만개당 불량품이 10개에 불과하다. 1991년에는 100만개당 500개가 넘었으나 50분의 1로 줄었다. 비슷한 제품을 생산하는 일반 공장 불량률은 평균적으로 100만개당 300~400개(0.03~0.04%) 수준이다.
지멘스는 물건을 생산하기 전 컴퓨터에서 먼저 만들어 본다. 공장과 똑같은 조건으로 꾸며진 가상현실(VR)에서 생산 라인을 만들고 물건을 찍는다. 실제와 똑같은 물건이기 때문에 ‘디지털 트윈’으로 불린다.
디지털 트윈을 보며 상품성이 있는지, 오류는 없는지 등을 검사한다. 실제 물건에선 실수나 시행착오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인 셈인데, 디지털 트윈은 ‘상품 개발-생산-사용’의 모든 과정을 포괄한 개념이다.

스마트공장 제어 솔루션 ‘마인드스피어’
스마트공장을 만들고 난 다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스마트화된 공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마트공장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멘스 디지털라이제이션은 이제 스마트공장 공급뿐만 아니라 마인드스피어(MindSphere)를 통해 한단계 더 도약하고 있다. 스마트공장 데이터를 제어하기 위한 산업용 클라우드 솔루션이 바로 마인드스피어다. 마인드스피어는 클라우드 베이스 솔루션으로 가고 있는 제조업의 변화에 맞춘 개방형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이다.
예전에는 고객이 솔루션을 구매하면 공장에 설치하는 투자가 병행돼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인프라 투자를 없애는 것이다. 클라우드 솔루션을 이용하면 투자나 투자설비 관리 인력도 필요 없다.
마인드스피어를 이용하면 고객 수요와 패턴을 정확히 판단해 즉각 생산·재고현황에도 반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카메라를 산 사람이 얼마나 자주 사진을 찍는지, 어떤 설정을 자주 쓰는지, 줌은 어느 정도 당기는지 등을 낱낱이 파악해 서버에 전송한다. 카메라 각 부품마다 센서가 달려 있어 정보 수집이 가능하다.
또한, 언제 어디서나 클라우드 디바이스를 통해 데이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핸드폰 앱을 이용하듯이 클라우드 플랫폼에서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보면 된다.
지멘스가 전통 IT서비스 기업이 아니었음에도 이런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클라이언트사와 같은 제조업 회사로 출발해 산업과 공정에 대한 노하우와 지식이 있었고, 디지털라이제이션이라는 변화에 맞춰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인수하는 과감한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