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노’직접 공개하며 현장 경영 박차
‘전략형   SUV’로 제2창업 승부수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매우 이례적인 경영 행보를 보여줬다. 지난달 10일 현대차의 중국법인인 베이징현대의 신차발표회장에 나타난 정 부회장은 직접 신모델 ‘엔씨노’(국내명 코나)를 발표한 것이다.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각각 매년 수많은 신차 발표를 한다. 그렇지만 해외시장에서 신차발표회에 오너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특별한 이유나, 사정이 없다면 굳이 이례적으로 발표회장에 참석할 이유가 없기에 그렇다.
마찬가지로 현대차그룹도 그동안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부회장이 해외시장에서 개별 신차 발표회에 모습을 나타낸 적은 거의 없었다. 이번 중국 시장을 예로 들자면 과거 현대차가 처음으로 중국이라는 대륙에 진출하던 2003년에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신차발표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이때 정몽구 회장이 발표회에 참석한 적은 있었다.
그때만 해도 현대차의 인지도가 중국시장에서 거의 없었기에 정몽구 회장이 직접 나서서 현대차 브랜드와 전략적인 신차 모델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15년의 금기 아닌 금기를 깨고 이번처럼 정의선 부회장이 신차발표회에 나선 것은 여러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위기의 진원지 중국 정면 돌파
‘절치부심(切齒腐心).’ 정의선 부회장이 보고 있는 중국시장은 이러지 않을까? 정의선 부회장은 올해 들어서 중국 출장만 3번이나 다녀왔는데, 지난달 10일 엔씨노 신차 발표 말고도 4월25일 열린 ‘2018 베이징 국제모터쇼’ 현장을 찾아 경쟁기업의 전시 부스를 일일이 살피기도 했다. 이에 앞서서 지난 2월초에는 엔씨노를 생산하는 충칭 지역의 베이징현대 제5공장 생산라인과 선전시를 찾았는데, 이는 대외적으로 공식적인 행보가 아니었다. 4월10일 신차 발표회에 앞서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자신의 눈으로 엔씨노의 품질과 양산계획을 살펴본 것으로 보인다. 중국시장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중국시장은 현대차에게 위기의 진원지라고 설명될 수 있다. 정의선 부회장이 중국 시장을 직접 챙기는 이유는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중국 판매량을 합산해 보면 2016년 114만대에서 2017년 78만대로 무려 32%가 급감한 걸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차의 전체 자동차 판매량 중에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일까? 무려 20%에 달한다고 한다. 중국시장은 북미시장과 함께 현대·기아차 최대 전략 시장으로 손꼽히는 격전지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시장에서 겪는 판매 부진은 글로벌 실적 악화로 바로 직결되는 것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해외시장 공략은 떠오르는 신흥 시장 위주로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중국시장의 수출기상도가 흐림을 보이면서 전반적인 해외 시장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한·중 국제 관계가 개선되면서, ‘사드 해빙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분위기가 위안은 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판매량도 회복 조짐에 있어 지난 3월 중국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35.4%가 늘어나 9만7555대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본격적인 회복세인지를 단정 짓기에는 아직 성급하다. 점유율이 2015년 이후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기에 그렇다. 중국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판매 순위는 2015년 5위에 랭크됐다가 3년만인 올해 10위로 밀려나게 됐는데, 현대차를 추월한 곳은 다름 아닌 가격 경쟁력이라는 액셀을 밟은 중국 토종 완성차 업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3월의 판매량 증가가 판매 호조의 신호로만 감지하기에는 섣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엔 현대차그룹이 끊임없는 신차 라인업을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만 하는 문제다. 지난달 10일 정의선 부회장이 이례적으로 신차발표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코나의 중국형 모델인 엔씨노가 중국시장에 선보이는 ‘전략형 SUV’이기 때문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중국시장에서 SUV 신모델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데, 엔씨노를 선보이기 전에 기아차에서 신형 스포티지인 ‘즈파오’를 내놓았고, 앞서 설명한 4월25일 베이징 모터쇼에서 현대차는 스포티 세단인 ‘라페스타’를, 기아차는 도심형 SUV ‘이파오’를 선보였다. 라페스타와 이파오는 엔씨노에 이어 본격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신차들이다. 중국에서 떠오르는 자동차 트렌드는 단연 SUV일 것이다. 연간 자동차 판매량 40%를 SUV가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은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전략형 SUV들로 정면 돌파를 선언한 것이다.

1분기 어닝쇼크 이후 실적 전망은?
‘내우외환(內憂外患).’ 현대차그룹이 처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면 이러지 않을까? 정의선 부회장이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시장에 올해만 3차례 출장을 다니며 공을 쏟고 신차 효과를 기대하며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내수시장인 한국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위기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객관적인 데이터가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등의 실적동향일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는 지난 1분기 ‘어닝쇼크’(실적 급락)를 기록하고 말았다.
현대차는 지난 1분기 매출 22조4366억원, 영업이익 6813억원을 기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 45.5% 줄어든 수치다. 당기순이익은 731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8%나 급락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영업이익 1조원이 깨진 것과 당기순이익이 역대 최저수준이라는 점이다. 한국경제에 IFRS(연결재무제표)가 본격 의무적용된 것이 2010년부터인데 이후 현대차 분기 영업이익의 추이를 살펴보면 1조원에 미치지 못한 것은 지난해 4분기 7752억원이 처음이었고 지난 1분기 6813억원이 최저치였다.
현대차그룹의 실적을 이야기할 때, 같이 살펴봐야 할 것이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의 실적 추이다. 현대모비스의 1분기 매출액은 8조1943억원, 영업이익 449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1.6%, 32.7% 감소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실적 급락의 발단은 중국과 북미시장에서의 판매량 부진일 것이다. 물론 해당 해외시장의 판매 저하 악재가 있었고 이와 함께 그간 수출기업의 골머리 중 하나인 원화강세 여파와 1분기에 발생한 파업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이렇게 실적 악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현대차의 위기가 비단 작년과 올해 초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그렇다. 지난 2012년과 2013년까지만 하더라도 현대차의 분기별 영업이익은 2조원을 계속 넘어섰었는데, 그 수치가 2014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올해 1분기 전성기 대비 30%대 수준이 된 것이다.
이렇게 1분기 어닝쇼크를 겪은 현대차가 2분기부터 액셀을 밟으며 성장의 기대를 걸어도 되는 걸까?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냉철하게 분석하려고 하는 증권가에서는 현대차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편이다. 안팎으로 경영환경 악화를 겪고 있지만 현대차의 실적 개선이 오는 2분기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의 근거는 현대·기아차가 최근에 발표한 주요 해외 법인별 올 2분기 판매량 전망치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인데, 대략 10%대의 판매량 성장률을 기록하며 현대차는 약 120만대, 기아차는 74만대가 팔릴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이미 4월 한달간 판매량이 젼년대비 10% 증가하면서 그나마 좋은 청신호를 보내주고 있다. 4월 판매량 성장세만을 가지고 단정을 지을 수는 없겠지만 현대차그룹이 1분기 실적부진으로 미래 성장의 가능성까지 일축할 만큼 매우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차 효과로 대내외 악재 털까?
이제 정의선 부회장이 믿을 최후의 카드는 ‘신차 출시 효과’ 뿐일 것이다. 내수시장인 한국에서 현대차는 지난 3월 신형 싼타페를 출시했는데, 폭발적인 인기로 사전 계약에서 일주일만에 1만4000대가 팔렸고, 2달 연속 1만대 이상 판매되는 성과를 보였다고 한다.
여기에 기아차 역시 지난 2월 출시된 준중형 세단 ‘K3’는 전년 대비 147% 늘어난 6925대의 판매 성과를 보였고, 지난달 출시된 대형 프리미엄 세단 ‘K9’도 출시 첫 해인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월간 판매량 1000대를 넘어서는 등 조금씩 신차 효과를 보는 와중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에 이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을 승계 받을 후계자다. 지난 2009년 8월 기아차 사장에서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함으로써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도 한층 빨라지고 있는 와중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을 둘러싸고 지배구조 개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경영권 승계의 마지막 단추인 지분 승계를 위해 그룹의 순환출자를 해소하면서 나오는 이슈들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3개 계열사에 대해 이렇다 할 지분이 없기 때문에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그룹의 지배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 부회장은 이번에 맞닥뜨린 경영상의 난맥을 슬기롭게 해결하면서 자신의 경영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야 할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때 아닌 위기에 처한 현대차그룹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놓고 자신의 길을 다시 개척해야 한다. 정몽구 회장이 한국의 토종 완성차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면, 그의 후계자 정의선 부회장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무한경쟁에서 생존하면서 지속가능한 강소기업으로 혁신해야 한다.
최근 중국 신차 발표회장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참여해 홍보에 적극 나서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정 부회장과 현대차그룹은 지금 제2의 창업에 가까운 변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