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경영자’넘어 자신만의 ‘경영 신세계’도전
‘삼합’동반성장 이끈‘미다스 손’

재계의 수많은 오너 CEO들이 은둔의 경영을 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사실일 것이다.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역시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며 그동안 대외적인 활동 및 적극적인 사업영역 확장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요즘 정 사장의 움직임을 보면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에너지 넘치는 CEO로 바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세계백화점이 최근 들어 기존 백화점 사업을 넘어서 새롭게 면세점, 뷰티, 홈퍼니싱 등 자신들의 사업 영토를 과감하게 늘려 나가고 있기에 그렇다. 덩달아서 사업 실적도 개선되고 있어 기존사업과 신사업 모두 실속을 챙기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정유경 사장은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는데, 정 사장의 오빠가 바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정유경 사장은 이화여대 비주얼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 그래픽디자인과를 졸업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1996년 신세계조선호텔에 입사한 뒤로 계속 디자인 전공을 살려 호텔 객실의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일에 매진했었다.

신세계에서 ‘NEW 신세계’ 만들다
정 사장이 신세계로 자리를 이동한 시점은 2009년 무렵으로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점의 개점을 준비하면서 부터다. 그녀는 올랜도, 두바이, 도쿄 등의 쇼핑몰들을 수시로 벤치마킹하면서 럭셔리 브랜드 담당자들과의 친분을 많이 쌓았다고 한다. 그래서 샤넬, 에르메스 등을 신세계 백화점에 입점시켰고 경영능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나 2010년 이마트가 야심차게 만든 생활용품 자체브랜드(PB)인 ‘자연주의’를, 정 사장이 이마트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로 들고 나와서 ‘자주(JAJU)’라는 브랜드로 리뉴얼 작업을 하면서 자신만의 경영 신세계를 펼치며 주목받았다. 이는 정유경 사장의 경영 능력을 평가할 때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분류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은 그룹 내에 입지력이 있는 오너 CEO라고 해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서다.
어찌됐든 정 사장은 상권분석과 입점 업체 관리가 생명인 백화점 사업에 있어 일가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2014년 신세계백화점 본관의 푸드마켓을 새로 단장할 때 기존에 있던 스타벅스 매장을 빼고 떡방을 입점시켰다. 스타벅스는‘스타벅스 상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고객 흡입력이 있는데, 정 사장은 파격적으로 떡방으로 대체한 것이다. 결국 그녀의 도전은 고객들의 호평과 매출 신장이라는 좋은 성적표로 입증이 됐다.
그녀가 CEO라는 직함을 단 것은 2015년 말이다. 특이한 것은 2015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는데, 이는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직책이었다. 그 뒤로 신세계의 실적과 주가는 정말 가파르게 상승을 이어가게 된다. 아마도 투자자 입장에서는 신세계와 정유경 사장에 대해 호평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개선이 이뤄졌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주가 상승은 대략 1년 동안 2배가 넘게 올랐는데, 주가가 오르는 비결은 결국 회사의 실적이 개선되고 새로운 사업들이 선전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세계가 새롭게 성장하는 기점을 만든 두 축은 단연 백화점과 면세점 사업일 것인데, 신세계 매출은 지난해 3조8714억원으로 전년대비 31%가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457억원으로 전년대비 37%나 증가했다. 올해 신세계의 매출은 증권업계에서 대략 4조8000억원으로 내다보고 있고 영업이익도 450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모든 성장의 기틀과 발단이 정유경 사장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세계백화점을 지휘할 때랑 겹치는 점에서 그녀는 확실히 실적 개선과 신사업 추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 확실하다.

면세점 시장의 다크호스
정유경 사장이 지난 3년간 독보적인 경영 성과를 숫자로 입증하는 것에 있어 가장 큰 예는 아마도 신세계 면세점 사업일 것이다. 특히나 2015년 이후 두차례 벌어진 서울의 시내면세점 입찰에 뛰어들어 모두 사업권을 따내면서 명동과 강남에 문을 열었는데, 신규 사업자로는 눈에 띄는 상승세를 펼치고 있다.
일단 지난해는 중국의 사드 여파로 모든 면세 사업자들이 곤혹을 겪었고 신세계 면세점도 지난해 1분기 1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 1분기 신세계 면세점은 영업이익 236억원을 기록하면서 순항중이다. 면세점 업계에서 신세계가 차지하는 입지도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2016년 7.7%에 불과했던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12.7%로 높아졌다. 매출은 이미 1조원을 돌파했으며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 롯데, 신라에 이어 3위권으로 올라섰다.
정 사장이 백화점과 면세점 못지않게 챙기는 사업이 바로 패션 사업인데 정 사장이 2대 주주로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2% 증가한 265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32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무려 전년대비 195.8% 증가한 수치다. 백화점과 면세점 그리고 자회사인 패션 사업 모두에서 양호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 성장성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깜짝 실적이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재계에서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자주 비교한다. 특히나 이번에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을 둘러싸고 호텔신라와 신세계가 한바탕 붙으면서 때 아닌 대결 구도로 언론이 자주 다루고 있다. 면세점 업계의 다크호스인 신세계가 당장 면세점 업계에서 30년을 넘게 주름 잡은 호텔신라(신라면세점)를 따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신라면세점이야 국내 2위 업체이자 세계 5위의 면세점사업자이고 오는 7월이면 사업 경력만 32년 넘는 배테랑이기에 그렇다. 이부진 사장이 2011년 사장 자리에 오르고 해외 진출에 주력하면서 면세점사업도 날개를 달았다. 제주공항, 인천공항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주요 허브공항이라고 불리는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과 홍콩 첵랍콕국제공항에서도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신세계는 패기를 통해 신라면세점을 상대하고 있는데, 이번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5년 운영권 입찰가격에서 신라면세점보다 무려 3300억원이나 많은 금액을 제시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이나 정유경 사장이 매우 공격적으로 면세점 사업을 확장하려는 의지가 읽히는 부분이다.

새로운 자체브랜드(PB) 론칭 준비
정유경 사장의 면세사업에서의 도드라진 경영 행보를 보다보면 본업인 백화점 사업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다. 최근에 백화점 업계는 불황기에 접어들어서 신규출점 계획도 쏙 들어갈 만큼 암울한 분위기다. 그런데 백화점 업계에서도 신세계는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보여주고 있다. 정 사장은 신세계백화점의 증축은 물론 신규 출점 효과를 제대로 내고 있는데, 신세계백화점 본점인 강남점부터 시작해서 부산 센텀시티점의 증축으로 매출액이 급증했다. 이밖에도 하남점과 김해점, 대구점 신규 오픈 효과도 있다. 올해 1분기 신세계백화점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7% 증가한 592억원이고 백화점업계가 갈수록 힘들다고 하지만 신세계는 주요 도심의 대형 점포 중심의 전략으로 불황기를 확실하게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정유경 사장은 기존의 자체브랜드(PB)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올해에도 새롭게 브랜드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준비하는 PB는 뷰티, 패션, 리빙 등으로 백화점 내에서 새로운 콘텐츠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앞서 정 사장은 ‘JAJU’ 라는 브랜드를 리뉴얼한 적이 있는데, 이후에도 PB 전문 브랜드로 2016년 캐시미어 ‘델라라나’를 론칭했고, 2017년 다이아몬드 ‘아디르’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란제리 브랜드 ‘언컷’이나 캐주얼 브랜드 ‘일라일’도 그녀의 작품이다.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에 취임한 뒤로 2년 사이 4개의 PB 라인을 내놓았다는 것은 그녀가 PB의 경쟁력을 상당히 중시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정유경 사장은 신세계의 본업인 백화점의 성장동력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PB라인들을 통해 수많은 유통업체와의 상품 경쟁에서 백화점만의 특성과 강점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앞서 정유경 사장을 ‘은둔의 경영자’라고 평가했지만, 사실 그녀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신세계라는 세상을 그저 만끽하는 현실주의자가 아닌, 도전하고 시도하는 진취적인 CEO라는 걸 새삼 발견할 수 있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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