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 근로시간 단축 제도 시행을 앞두고 최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300인 이상 기업이 대상이다. 300명 회사가 인원이 줄어 다음달 중 290명이 되거나, 직원 290명인 회사가 다음달 직원이 늘어 300명 이상이 돼도 모두 주 52시간 제도가 적용된다. 50~300인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적용된다.
고용부의 이번 가이드라인은 판례와 행정해석 등을 토대로 유형별로 정리한 것이지만 구체적 개별 사안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어 당분간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양한 사업장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도 “근로시간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는 굉장히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 별로 판단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개별 사업장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경우 오히려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관리를 위한 기준을 만들 때 가이드라인을 참고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회식이나 거래처 고객을 접대한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 회사 지시로 교육을 받거나 출장을 간다면 근로시간으로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등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 근로시간 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기업 관계자들이라면 꼭 참고해 봐야 하는 내용들이다. 이밖에 구체적 사례에 관한 판단이 필요할 경우 고용부의 지방노동관서와 상담을 하는게 나을 것이다. 이번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정리해 봤다.

접대 및 대기시간 ‘근로 인정’
1주 단위로 법정근로(40시간)에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포함해 68시간이던 주 최대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와 연장근로(12시간)를 합해 52시간으로 줄인게 핵심이다. 기존 근로기준법에서는 연장근로와 휴일근로가 별개였으나 개정법에서는 연장근로가 휴일근로를 포함한다.
연장근로 한도가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무제한 근로가 가능했던 ‘특례 업종’은 26종에서 5종으로 대폭 줄었다. 특례유지 업종 5개는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기타 운송 관련 서비스업, 보건업 등이다. 특례 업종에서 제외된 사회복지서비스업, 연구개발업, 방송업 등 21종 사업장에서는 내년 7월1일부터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된다. 운송업(노선버스업 제외), 운송서비스업, 보건업 등 남은 5개 업종에서는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근로자가 특정 업무를 하지 않아도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인정한다고 봤다. 대법원 판례에도 고시원 총무가 자리에서 특별한 업무를 하지 않고 쉬거나 공부하며 보낸 시간도 대기시간에 해당한다는 예도 있다.
현재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가장 큰 혼란이 일고 있는게 바로 접대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이다. 근로자가 업무 수행과 관련 있는 외부 인사를 일과가 끝난 저녁에 만나 식사를 같이하는 등 접대할 경우 이를 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사용자의 지시 또는 최소한 승인이 있는 경우에 한해 근로시간으로 인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고용부가 근거로 든 것은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판례로 당시 재판부는 회사 부서장의 휴일 골프 라운딩에 대해 “사용자의 구체적인 지휘·감독하에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없다”며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회식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가이드라인이다. 부서장이 주재하는 회식에 참석하는 것은 근로시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고용부 입장이다. 고용부는 “회식은 근로자의 기본 노무 제공과는 관련 없이 사업장 내 구성원의 사기 진작, 조직 결속 및 친목 등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임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출장기간의 인정 수준은 노사 합의
출장기간 중 얼마만큼을 근로시간으로 봐야 하는지도 논란거리다. 이에 고용부는 출장기간의 근로시간 인정 수준을 노사가 합의할 문제로 남겨뒀다.
출장의 경우 교통편 이용을 위한 준비와 대기, 이동 등에 걸리는 시간이 많아 어디까지가 근로시간인지 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출장이 사업장 밖에서 이뤄지는 점 또한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출장이나 그 밖의 사유로 근로시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근로해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소정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소정근로시간은 사업장별로 취업규칙 등을 통해 정하는 업무 시간으로, 보통 8시간이다. 소정근로시간을 넘는 경우 그 업무 수행에 ‘통상 필요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간주한다. 고용부는 “출장과 관련해서는 통상 필요한 시간을 (사업주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통해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워크숍은 업무수행 능력 증진을 위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진행되는 워크숍과 세미나 등은 근로시간으로 간주했다. 토의 시간이 길어져 소정근로시간 범위를 넘어서면 연장근로 인정도 가능하다.
다만 워크숍 프로그램 중 친목 도모 활동은 근로시간에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 고용부 설명이다. 보통 친목 도모 활동을 겸하는 워크숍 특성상 어떤 프로그램을 근로시간에서 넣고 뺄지 결정하는 것 역시 판단이 쉽지 않다.
또한 근로자가 참가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하게 돼 있는 교육일 때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업무와 관련해 실시하는 직무교육’과 ‘근로시간 종료 후 또는 휴일에 의무적으로 소집해 실시하는 교육’은 근로시간에 포함된다는 행정해석 등이 근거다.

中企 “생산차질 납기 준수 곤란할 것”
근로시간 단축 정착을 위해선 과제가 적지 않다. 산업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포괄임금제도 문제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연장·휴일근로 수당을 미리 정하고 급여에 포함해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로, 초과근무를 일상화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판례상 포괄임금제는 꼭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오·남용 사례가 많다. 이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 실효성을 높이려면 포괄임금제를 대폭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고용부는 당초 이달 중으로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현장 실태조사 등에 시간이 걸려 다음달에도 발표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포괄임금제를 급격히 제한할 경우 중소기업 등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 큰 문제는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인건비 부담 때문에 많은 기업이 인력 충원보다는 일단 기존 인력의 생산성 향상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가 최근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 관련 중소기업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소기업계는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평균 6.1명의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시 애로사항으로 ‘가동률 저하로 생산 차질과 납기 준수 곤란’(31.2%)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에 중소기업들은 정부에 △신규채용 또는 기존근로자 임금감소분 인건비 지원 △인력 부족이 심각한 업종에 대한 특별공급대책 △설비투자 확대 자금 지원 △탄력적 근로 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와 같은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이번 근로시간 단축 시행 관련해 직장인들도 우려 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최근 잡코리아에 따르면 최근 직원 수 300명 이상의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9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근무시간 단축으로 걱정되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절반 이상인 55.2%가 ‘그렇다’고 밝혔다. 걱정하는 요인 1위는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수당만 받지 못하는 상황’(60.8%·복수응답)이었으며, ‘인력 미충원’(44.2%)과 ‘업무성과 저하’(39.2%), ‘지출 증가’(24.4%)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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