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탈세 등 전방위 수사로 3세 승계 빨간불
도덕성 회복해‘난기류’탈출할까

최근 재계의 이슈 중에 ‘오너 리스크’가 계속 이어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있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사태와 각종 범죄 혐의다. 일단 한진그룹 오너 일가 대부분이 최근 두달 사이에 조사를 받기 위해 모두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는 점은 이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둘째 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 바 ‘물컵 갑질’ 사태 이후 조 회장의 일가들이 줄줄이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조세포탈,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기까지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조 회장의 첫째 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이 출석했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지금 경찰, 검찰, 세관, 법무부, 공정위 등 사정당국의 전방위적인 수사 압박을 받고 있는데, 오너 일가에 대한 수사당국의 포토라인 횟수는 무려 9회에 달한다. 단순하게 힘 있는 자의 갑질 사태가 아니라 상속세 탈루, 일감 몰아주기, 밀수 의혹까지 수사 범위도 전방위적이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제외하고 모두 서로 다른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한진그룹의 오너 리스트는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조현민 막말로 열린 판도라 상자
어떻게 보면 이번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위기는 최근 조현민 전 전무의 ‘막말’ 하나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볼 점은 이 후폭풍이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강압적인 오너 일가의 막말과 폭행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한진그룹의 과거 경영권 승계 과정까지 다시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갑질 논란이 수십년 전 경영권 승계의 적합성까지 논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승계 이슈가 다시 회자되는 건 그만큼 요즘 한진그룹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나빠졌다는 방증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면, 지난 2002년에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이 타계를 하면서 이른 바 경영권 승계를 두고 ‘형제의 난’이 발생하게 된다. 조중훈 회장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조양호 회장,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삼남은 고 조수호 한진그룹 전 회장, 사남은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다.

이들 형제는 조중훈 창업주가 타계하고 각자 계열사 분리를 하면서 사세를 키워나갔다. 그런데 형제들 사이에서는 유산배분이 그렇게 공평하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나왔고, 심지어 창업주인 조중훈 창업주의 유언장을 두고 진위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한진그룹 2세들은 형제 간의 갈등으로 인해 조중훈 창업주의 제사까지 따로 지내기도 했으며, 법정 싸움도 진행했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점은 형제간의 갈등에 앞서 1999년 한진그룹이 1조원의 조세포탈 혐의로 사상최대 추징세액인 5416억원을 내야 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몇년 사이에 이들 한진그룹 2세들은 해외 상속세 탈루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러니까 1999년 이후 한진그룹은 세금 관련해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조양호 회장은 한진그룹 총수에 오른 지 15년이 지났고 그 사이에 조 회장의 세 자녀들도 계열사 핵심보직을 맡으며 승계를 대비해 오고 있었다. 그룹 지배구조도 후계 승계에 유리한 지주회사로 탈바꿈하면서 과거와 같은 경영권 승계 논란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요즘 오너 일가의 각종 사건으로 인해 승계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올리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 원래가 경영승계에 직위를 승계하고 지분을 승계하는 2개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면 현재 한진그룹은 직위를 승계하는 부분에 있어 과연 3세 경영인들이 그럴만한 자질이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산 불리는’공익재단에도 눈총
3세 경영인들에 대한 직위 승계에 빨간 불이 켜졌다면 조양호 회장의 지분 승계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조양호 회장은 세 자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 조원태 사장, 조현민 전 전무에게 1990년대부터 대한항공 지분을 소량(0.01~0.02%)씩 20여년간 균등하게 나눠줘 왔다. 이들 세 자녀의 계열사별 경영 참여를 봐도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게 순서대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결정적으로 2013년 조양호 회장은 자녀들에게 대한항공 지분을 각각 1.06%씩 증여했고 한진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직전에 완료했다. 삼남매는 이때 물려받은 지분을 발판으로 지주회사 재편 과정에서 한진칼 주식과 맞바꾸게 되는데 지금 삼남매가 가진 지주회사 한진칼의 지분(각 2.5%)은 대부분 조 회장이 나란히 물려준 주식에서 나온 것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30억원 이상 주식을 증여할 경우 50%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조 회장이 가진 2000억원어치 한진칼 주식을 물려받으면 1000억원 가량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지금처럼 세명이 균등하게 물려받으면 한사람당 300여억 원의 세금 납부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세금 문제가 승계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 것이 삼남매는 지금까지 한진 그룹 내 다수의 계열사 임원을 겸직하면서 받은 연봉만 따져도 적지 않기에 그렇다.

더욱이 한진그룹의 공익재단도 든든한 우군이다. 한진그룹엔 일우재단과 정석물류학술재단, 정석인하학원 등 3개 공익재단이 있는데, 현행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은 특정회사 지분을 증여받을 때 5%까지는 세금이 면제된다. 재단 3곳이 현재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많게는 2.14%에서 적게는 0.16%까지 도합 4.38%인데, 세금 한푼 내지 않고 3개 재단에 증여할 수 있는 지분이 아직 10% 이상이라는 말이다. 한진 공익재단 이사진에는 오너 일가의 지근거리에 있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고, 이명희 이사장이 일우재단을 맡고 있는 것도 우연히 아닐 것이다.

여기서 세간에서는 이명희 이사장이 운영하는 일우재단에도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공익재단인데도 공익사업에 쓰는 목적사업비의 비중이 낮은 데다, 자산만 불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에 그렇다. 한진 창업주 조중훈 회장도 타계 직전 대한항공과 한진 주식 대부분을 인하학원과 정석학원, 일우재단 등에 넘기기도 했다. 이번에 일련의 한진그룹 사태들이 터지면서 일우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다.

전문경영인 도입, 이미지 쇄신이 관건
원래 조양호 회장은 조현아 전 사장은 호텔, 조원태 사장은 대한항공, 조현민 전 전무는 진에어로 각각 경영수업을 하면서 각각의 사업에 대해 승계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3세 경영승계 전략은 전면 수정해야 할 듯싶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진그룹 3세들 중에는 조원태 사장만 경영 일선에 남은 상황이긴 하지만 조원태 사장마저 이번 사태로 다시 한번 과거 도덕성 문제가 리스크로 돌아오고 있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2000년 6월 차선을 위반한 조 사장을 단속하려던 교통경찰을 치고 달아나다 시민들에게 붙잡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입건됐고 2005년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70대 할머니를 밀치고 폭언한 혐의로 입건됐다. 과거 논란이 됐던 사건들이 다시금 회자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는데, 지금 한진그룹 경영진에게는 경영능력 보다는 도덕성이라는 잣대가 상당히 중요한 자격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유독 한진그룹에게 도덕성 잣대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고 있는 사업 자체가 항공, 호텔, 물류 등 국민들에게 서비스하는 업종이기에 그만큼 대외 이미지가 사업을 지속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대한항공 같은 기업은 공공기관에 준할만큼 사람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쳐주고 있는 이유였기도 하다.

이러한 오너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이미지 쇄신을 하고, 사업을 재도약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장 오너 3세들의 빈 자리를 메울 대안책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당장에 조현아, 조현민 자매가 빠진 빈 자리만 채우는 데도 6명의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너 경영인과의 궁합을 위해서가 아니라 빈 자리 채우기식이라면 이는 3세 경영인들의 영구적인 경영일선 퇴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한진그룹은 이번 사태가 3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지만 구체적이고 명확한 경영권 향방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심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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