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업들이 이달부터 시행된 노동시간 단축에 적응하는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업종별 제반사항을 고려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업계의 의견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조선·기계 등 수주업종 어려움 호소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일 이인호 차관 주재로 주요 업종별 협회·단체와 ‘노동시간 단축 동향점검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지난 1일부터 3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해 주요 업종의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보완할 지점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회의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가전·자동차·자동차부품·조선·철강·석유화학·정유·섬유·뿌리·일반기계·바이오 등 업종별 관계자가 참여했다.

조선, 기계, 자동차 등의 수주형 생산업종과 연구개발(R&D) 업계는 공통적으로 “수주형 업종의 특성상 납기가 임박할 때 장시간 근로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근로시간 단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과 같이 집중근로가 필수적인 업종이 취할 수 있는 대책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인력을 충원하거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숙련도와 전문성이 중요한 R&D 인력의 경우 당장 충원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가이드북을 통해 업무가 많을 땐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대신 업무가 적을 때 근무시간을 줄여 특정 기간 동안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맞추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으나, 업계에서는 이 역시 어렵다는 반응이다.

업종별 협·단체, 애로사항 쏟아내
현재는 노사가 합의하면 3개월까지 적용기간을 늘릴 수 있게끔 돼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적용기간을 6개월 또는 1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이날 참석한 단체들은 섬유업계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한 인력 확보를 위한 지원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뿌리산업도 업종 특성상 납기가 임박할 때 장시간 근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인력 확보를 위한 지원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선과 기계 업종도 수주 산업 특성상 납기를 앞두고 장시간 근로가 발생하는 문제를 호소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가전 업계는 생산라인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개발 인력은 근무 강도가 비교적 높다고 지적했다. 중소 장비업체 등은 주문생산하는 비중이 높아 장시간 근로가 발생할 수 있다.

정유·석유화학은 교대제를 운용하고 있어 평소에는 노동시간 단축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정기적으로 하는 대보수 기간에는 장기간 근무가 필요한 어려움이 있다. 자동차 업종은 평상시 노동시간 단축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자동차부품은 납기가 임박할 때 장시간 근무할 수밖에 없다. 
철강은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중소·중견기업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바이오 업계도 연구개발 인력 운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산업부 “단축기업에 임금지원 확대”
이날 정부는 13개 업종 관계자의 건의에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관련해 실태조사를 통해 업계 애로사항을 파악한 후 현행 제도상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될 시 단위 기간을 연장하도록 협의하고 근로자의 임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일자리 함께하기 지원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정부가 제시한 방안에 따르면 300인 미만 기업 중 선제적으로 근로 단축을 시행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 기존 월 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지원액을 늘리고, 지원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 또한 300인 이상 기업도 지원액을 월 40만원에서 60만원으로 늘리고, 재직자 임금보전 지원대상도 확대한다. 

이인호 산업부 차관은 “근로시간 단축이 산업현장에 원활히 안착할 수 있도록 업계 동향을 점검하고 기업인 의견·건의사항을 수렴하기 위한 현장과의 소통 활동에 매진할 예정”이라며 “업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동참해 우리 경제·사회 선진화에 앞장서달라”고 말했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도 전날 홍종학 장관이 현장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한 데 이어 이날 최수규 차관이 대전 소재 영상센서 기업 아이쓰리시스템을 방문했다.

중기부 장·차관도 잇따라 현장점검
아이쓰리시스템은 개인별 근로시간 확인시스템과 업무시간 표준화·관리, 유연 근로시간제 등을 도입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근로시간 단축 전에는 특·야근을 포함해 생산직은 주 55시간, 연구·사무직은 최대 64시간씩 근무해왔다.

정한 아이쓰리시스템 대표는 “우리 회사 연구직은 주 40~64시간을 근무했는데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넉달 만에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가라니까 쉽지 않다”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현행 최대 3개월인데 이를 늘려줘야 숨통이 트인다”고 하소연했다.

정 대표는 이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여 우선 15명 정도 신규 채용을 계획 중”이라며 “하지만 실제로 일해 보면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최수규 중기부 차관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부 시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정한 대표와 임직원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며 “근로시간 단축의 현장안착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관계 부처에 적극적으로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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