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콘 등 포장용 금속드럼을 생산하는 A사는 2012년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으나, 당해 연도에 아스콘이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공공조달시장 참여가 제한됨에 따라 기업을 분할해 중소기업을 신설했다.
#B사는 2008년부터 LED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를 통해 사업을 확장했으나, 2011년 해당 제품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LED 생산실적 및 평균 가동률, 수출 등이 급감해 2014년 중소기업으로 회귀했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성장해 중견기업이 되면 세제나 예산 등 각종 중소기업 지원 제도가 단절되고 규제가 강화돼 경영환경이 급변하게 된다. 때문에 초기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상을 ‘피터팬 증후군’으로 부르며 문제가 되고 있다.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역주행하는 사례는 많다. 한 사무가구 업체는 정부 조달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교육가구 사업부문을 떼어내 중소기업으로 분리한 경우도 있다. 지방의 철강 제조사는 중견기업이 된 후 공공시장 참여가 어려워지자 회사를 쪼개서 중소기업으로 돌아갔다. 피터팬으로 남기 위한 법인 ‘쪼개기’와 ‘조직 나누기’는 비일비재하다.
中企도 다음 단계 성장 회피
한국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에게 피터팬 증후군은 당장에는 크게 와 닿지 않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중견기업을 거쳐,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걸림돌이 된다. 실제로 일부 중소기업은 고용이 필요한데도 사람을 뽑지 않을 뿐더러 의도적으로 회사를 분할하는 등 중소기업 규모를 유지하려 애쓰기도 한다.
최근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중소기업 범위를 막 벗어나 중견기업 입성을 앞둔 중소기업 10곳 중 3곳이 이러한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고 성장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많은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이 되지 않으려고 회피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각종 지원 정책을 보면 이해가 갈 수도 있다.
중소기업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은 △정책금융 △기술개발 지원 △인력 지원 △판로 지원 △수출 지원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무려 160여가지나 되는 지원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기업 전체의 99%, 고용의 88% 가량이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어 ‘9988’이란 이야기 나온 지도 오래됐다.
다만 대기업과 중견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비중이 월등하게 높은 것은 한국경제의 미래 성장을 봤을 때 그렇게 생산적인 구조는 아닐 것이다. 기업의 지속성장하려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으로 차근히 성장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중견기업과 대기업 대비 생산성과 고용 안정성이 뒤처지고 임금과 복지 수준도 낮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회피하는 일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경제에서 국내 기업들의 규모 분포는 밑이 넓고 허리가 가는 ‘첨탑형’으로 점점 더 굳어져 가고 있다.
이제라도 중소기업이 성장을 해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서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사례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와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고용 증가-생산성 향상-매출과 영업이익 증대-중견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성장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팬 증후군은 비단 중소기업, 중견기업이라는 개별기업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기업 비중을 하향 평준화하는 요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야 한다.
관계기관 중견기업정책 회의
최근 정부와 유관기관들이 초기 중견기업의 애로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는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0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함께 70여개 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관계부처·기관 합동 정책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동욱 산업부 중견기업정책관,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을 비롯해 관계부처와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부는 올해 400여개 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편입될 것으로 예상하며 이들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우선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부담을 완화하고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하기 위해 중견기업계가 건의한 37개 성장디딤돌 과제 중 21개 과제를 개선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지속 발굴할 계획이다.
이날 설명회에서 정부는 △중견기업 비전 2280 △일자리 △공정거래 △상생협력 등 주요 정책을 소개하고, 유관기관이 추진 중인 중견기업 지원 사업을 안내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상생협력,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법 등 공정거래 제도를 안내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등 노동 현안들을 소개했다.
중견기업 비전 2280은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정부가 정책적으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중장기 계획안이다.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2022년까지 월드챔프 1조클럽 80개가 육성되고 중견기업 수는 5500개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업종별 핵심 연구개발(R&D)을 활용해 향후 5년간 총 2조원을 투입, 중견기업 유망 분야를 지원하고, 코트라가 추진하는 ‘월드클래스300’ 2단계 사업을 추진해 전기·자율차, 에너지신산업, 바이오 등 미래 신산업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중견기업의 신사업 창출 및 중소벤처기업과의 상생형 인수합병(M&A)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견기업 혁신성장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지역 채용로드쇼, ‘일자리 Dream 페스티벌’ 등을 통해 초기 중견기업 인력난 해소 및 우수 청년인재 취업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날 이동욱 산업부 중견기업정책관은 “관계부처·기관의 역량을 모아 우리 기업이 ‘중소→중견→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성장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중견기업 중심의 상생협력·공정거래를 확산시켜 건전한 산업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제시했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이번 정책설명회는 중견기업이 정부 주요 정책 및 지원 사업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면서 “중견기업이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환경변화에 대응해 혁신성장을 견인하고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해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선진국 중견기업 육성전략 확대
최근 프랑스 정부가 중소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하기 위한 ‘경제 성장과 기업 혁신을 위한 실행계획 법안’을 발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 개혁 및 기업규제 완화 정책과 관련한 핵심 법안 중 하나가 바로 중소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놓는 일이다.
프랑스의 정책을 살펴보면 우선 종업원 수에 따른 기업 구분을 기존 7단계에서 4단계로 줄이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는 기존에는 종업원 수 10명·20명·25명·100명·150명·200명 미만, 200명 이상으로 나눠 기업에 대한 지원 및 규제를 달리하고 있었다. 이를 종업원 11명·50명·250명 미만, 250명 이상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종업원 250명 이하 기업이 규제에 대한 걱정 없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7단계를 거쳐야 하는 법인 설립 절차도 대폭 줄여 인터넷을 통해 한번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소기업에 대해선 감사와 파산 절차도 간소화하기로 했다. 지역별 수출 상담 센터를 설치하는 등 수출 지원도 강화한다.
수많은 히든 챔피온을 탄생시킨 독일은 2006년 ‘중소·중견기업 육성전략’을 수립한 이후 시장개척, 신기술 도입, 상속세 개혁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는 ‘미래형 미텔슈탄트(중견기업) 육성 정책’과 2016년에는 ‘디지털 전략 2025’를 수립해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R&D와 해외진출, 창업, 디지털화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선택과 집중을 통한 글로벌 중견기업을 육성 중이다. 특히 중견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출·인력확보·R&D·해외진출·지식재산권·표준화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2016년 예산 기준으로 중소-중견기업 협력 R&D에 11억엔을, 글로벌 기업과의 제휴 지원에 130억엔을, 해외진출 지원에 60억엔을 투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