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둘러싼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내수 증가세가 약화된 가운데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 고용부진이 추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미·중 무역전쟁 확전으로 수출마저 내리막을 걸으면 내수·수출·고용 모두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3%에서 2.9%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 눈높이도 0.1%포인트 내렸다. 올해 정부의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3%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소비·투자 부진 속 5개월째 일자리 쇼크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KDI 경제동향’ 7월호에서 “한국의 내수 증가세가 약화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경기개선세가 완만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5월 주요 지수를 보면 소매판매액은 4.6% 늘며 전월(5.5%)보다 증가 폭이 축소됐다. 서비스업 생산도 2.3% 증가하며 전월(2.7%)보다 둔화했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기준치인 100을 넘는 105.5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12월 이래 계속 하락세다.
5월 설비투자는 기계류 감소 여파로 전년 같은 달보다 4.1% 줄며 감소로 전환했다. 설비투자 관련 선행지표는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고 KDI는 지적했다.
5월 특수산업용 기계 수주액도 2년 만에 감소로 돌아섰고 6월 반도체제조용 장비 수입액과 기계류 수입액(속보치)도 2개월 연속 감소했다.
건설투자도 둔화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KDI는 판단했다. 건설기성 증가율이 크게 낮아지고, 주택 인허가실적 등 선행지표도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5월 건설기성(불변)은 보합이었다. 건축부문 증가 폭 축소 탓에 증가율이 전월(1.5%)보다 낮아졌다.
1∼5월 주택준공은 24만5000호로 착공(19만7000호)보다 많았고, 주택 인허가실적도 13.8% 감소했다. 앞으로 건축부문 둔화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월간 취업자 증가폭이 20만명에도 못 미치는 ‘일자리 쇼크’가 5개월째 이어지는 점도 내수 추가 위축으로 직결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취업자 증가폭은 14만2000명에 그쳤다. 지난해 증가폭 31만60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며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이 몰아쳤던 2009년 하반기(-2만7000명 )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는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장기화에 따른 제조업 부진이 일자리를 줄이고 있어서다.
2분기 제조업 취업자는 9만1000명 줄어들어, 2017년 2분기(-2만1000명) 이후 4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6월만 보면 12만6000명 감소해 2017년 1월(-17만명) 이후 1년 5개월 만에 최저치다.
KDI는 이러한 모습을 토대로 민간소비 개선 흐름이 다소 완만해지고 있다고 봤다.
5월 전산업 생산 증가율은 전월(2.0%)보다 낮은 1.7%를 기록했다. 광공업생산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월(0.8%)에 이어 0.9% 성장해 증가세를 탔지만 자동차와 기타운송장비 등에선 여전히 부진했다. 여기에다가 서비스업 생산이 발목을 잡으며 전산업 생산 증가폭이 다소 줄었다.
5월 제조업 출하는 0.9% 늘어 전월 감소(-1.8%)에서 증가로 전환했다. 제조업 재고율도 전월(113.4%)보다 하락한 108.7%를 기록했다.
미·중 무역전쟁 시작…수출 ‘마이너스’ 출발
그나마 의지할만하다고 평가를 받던 수출마저 삐걱대고 있다. 고용이 가계 소득을 줄여 내수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수출마저 흔들리면 한국경제가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은 140억달러로 1년 전보다 1.9% 줄었다. 통상 10일간 수출 속보치는 조사 대상 기간이 짧다 보니 조업일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이달 1∼10일 조업일수는 7.5일로 1년 전보다 0.5일 더 길었음에도 수출액은 줄었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달 1∼10일 수출이 줄어든 것은 1년 전 대규모 해양플랜트 수출에 따른 기저효과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 성장세에 크게 기여했던 수출 증가세는 최근 횡보를 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7개월간 증가세를 이어가던 수출은 지난 4월 1년 전보다 1.5% 감소하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5월에 한달 만에 반등에 성공했지만 6월에는 다시 소폭 감소하면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최근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대외 통상환경이 예상보다 빠르게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을 계기로 주요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도미노처럼 확산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의 대중수입이 10% 줄면 대중 수출이 282억6000만달러(약 31조5200억원) 감소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대중 수출 규모의 19.9%에 달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는 민간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제기된 이 같은 비관적인 전망이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미·중이 예고대로 25% 수준의 관세를 부과해도 대미·대중 수출 감소 폭은 각각 2017년의 0.09%, 0.19%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눈높이 낮춘 한은…올 성장률 3.0→2.9% 하향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발표한 ‘2018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을 2.9%, 내년은 2.8%로 제시했다. 4월 경제전망 때 제시한 올해 성장률 3.0%, 내년 2.9%보다 각각 0.1%포인트 내린 것이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이 2.9%로 돌아간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이다. 올해 1월, 4월 전망 때 한은은 올해 한국경제가 3.0%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중 무역갈등 심화로 수출이 영향을 받고 투자도 둔화할 것이란 판단이 하향 조정 배경으로 보인다.
이달 잇따른 미·중의 고율 관세 부과 결정으로 보호무역 파고가 거세지면서 세계교역을 둘러싼 하방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은은 상품수출 증가율 전망을 4월 3.6%에서 이번 달 3.5%로 낮췄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2.9%에서 1.2%로 1.7%포인트나 낮게 전망했다. 그간 설비투자 증가세를 이끈 반도체 등 정보통신(IT) 분야에선 기저효과 등으로 증가율이 큰 폭으로 낮아질 것으로 진단됐다.
신기술 부문, 자동화 설비 등을 제외하면 다른 업종에서도 설비투자 증가세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 기업들이 몸을 사리며 유지 보수 중심으로 보수적 투자만 할 것으로 점쳐진다.
한은은 지식재산생산물투자 증가율도 2.9%에서 2.7%로 낮췄다. 건설투자 증가율 전망치도 -0.2%에서 -0.5%로 더 떨어뜨렸다.
한은은 주거용 건물이 입주 물량 확대로 증가 폭이 꺾이고 비주거용 건물도 올해 감소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앙정부, 공공기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줄어 토목 감소세도 지속하리라고 내다봤다.
한은은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은 4월 전망 때와 같이 2.7%로 제시했다. 양호한 소비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 청년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추경)·기초연금 인상 등 정부 정책이 소비 증가세를 뒷받침할 것이란 시각에서다. 다만 고용 여건 개선 지연,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은 민간소비 증가세를 제약할 수도 있다고 한은은 덧붙였다.
한은은 “올해 국내 경제는 투자가 둔화하겠으나 수출이 양호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소비도 개선 흐름을 보이면서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이라며 “내년에도 수출, 소비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잠재 수준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제 상방 리스크로는 △주요국의 확장 재정정책과 투자 증가세 확대 △정부의 경제 활성화 대책에 따른 내수 여건 개선이 꼽혔다.
반대로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수출여건 악화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가속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는 경기 하방 리스크를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