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으로 경영난에 허덕이던 중소기업들이 이번엔 원자재가격 상승과 물량부족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철강재 등의 기초원자재와 관련해서는 오는 3월이면 중소기업들이 보유한 원자재 재고량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 국내 경제가 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격급등에 ‘사재기’까지= 선철과 고철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주물업계의 경우 최근 1년간 두 원자재의 가격이 두배 가까이 급등했다.
선철의 경우 국내산이 작년 1월 kg당 200원 했지만 최근 300원까지 뛰었고 수입산은 kg당 450원까지 오른 상태다. 고철가격도 작년 1월 kg당 150원 하던 것이 320원 정도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철강재 등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다른 업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철 스크랩이 최근 1년간 약 69.4% 올랐고 빌렛 50%, 코크스 189%, 슬래브 28.6% 각각 인상됐다.
이처럼 원자재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물건을 선점하는 ‘매점매석’의 사례도 늘고 있다.
주물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철가격이 급등하자 제강업체들이 국내산 고철을 싹쓸이 하고 있다.
이는 국내산 고철가격이 수입산보다 훨씬 낮게 형성돼 있어 사재기로 한몫 챙겨보려는 이기적 심리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허만형 이사는 “제강업체뿐만 아니라 고철 중간수집상들도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을 예상, 물건을 내놓지 않고 있어 이같은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물량이 아예 없다= 원자재가격 폭등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중소기업들에게 사실 더 큰 문제는 물량부족에 있다. 물건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는 게 중소기업자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한국철망공업협동조합 연상우 전무이사는 “최근 중국에서 연강선재의 한국수출을 중단하면서부터 업체들이 원자재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면서 “최근 연강선재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밝혔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서병문 이사장은 “중소기업들의 원자재 확보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머리를 삭발하고 할복자살을 하더라도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말해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납품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양부석 부장은 “앞으로 재고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게 될 3월이 고비다. 지금까지 불황에 허덕여온 중소기업들이 이번엔 원자재 구득난으로 조업을 단축하는 사태가 전격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산성 급격히 악화= 원자재난으로 중소기업들의 채산성도 악화되고 있다. 원가는 수직 상승하고 있지만 정작 대기업들이 가격조정을 해주지 않아 납품가격은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기자재공업협동조합 오병일부장은 “조선기자재 업계의 경우 수주에서 납품까지 걸리는 기간이 보통 3∼6개월”이라며 “3개월 이전 계약가격으로 물건을 납품해야하며, 중소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난 왜 왔나?= 지난해 세계경기가 회복되면서 철강석 등 원자재 수요가 급증, 가격폭등이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원자재가격 상승은 ‘물먹는 하마’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2008년 북경올림픽 등 각종 국제행사를 유치하면서 이에 필요한 건축, 사회간접자본을 곳곳에 건설중에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기초공사 등에 소요되는 각종 원자재를 자국내는 물론, 전세계 물량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 철강원자재 공급을 도맡아 하고 있는 포스코가 물량 감산방침을 밝히면서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포스코의 철강원자재 감산방침은 최근 이 회사가 민영화되면서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저급재 생산을 줄이고 고급철강재 생산을 늘리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해결책은 없나?= 우선 정부 등 공공기관들이 나서 중소기업 납품가격을 현실화시키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올해 조달물품을 지난해 책정한 예산으로 지출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앞장서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지자체 및 산하기관에 협조를 구해 원자재 가격인상분을 반영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대기업들의 납품가격 조정을 독려하는 한편, 원자재를 매점매석하는 업체들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단속을 추진해 가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포스코, 공익역할 제대로 해야”
그러나 무엇보다 중소기업들이 강조하는 것은 포스코의 역할이다.
국내 대부분의 기초철강재를 책임지는 포스코가 ‘공공적인 역할’을 간과한 채 ‘이윤 극대화’라는 단순한 목적으로 하급철강재 감산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 중소기업계는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자국 수요를 위해 기초원자재 수출을 기피하고 있는 반면 정작 국내에서는 원자재 파동으로 위기를 맞고 있어도 포스코가 수출을 조금도 줄이지 않고 있는데 대해 중소기업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수출규모 늘리기에 급급해하는 산업자원부에서 암묵적으로 포스코를 부추기고 있다는 업계의 주장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서병문 주물조합 이사장은 “국민기업인 포스코는 최근 5년간 매년 1조원 이상씩 순이익을 내고 있지만 이제는 원자재 가격 안정이라는 공익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지난 6일 오후 긴급하게 ‘철강재 수급 원활화 대책회의’를 열었다. 주물, 금속, 기계 등 20여개 철강재 관련 협동조합 대표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철강재 증산 및 제품가격 현실화를 위해 산자부, 포스코 등 관계기관에 적극 건의하기로 했다.

△사진설명 : 최근 원자재 수급 불안으로 중소기업들이 조업을 단축하는 등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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