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혁신 전도사’로 젊은 총수 버팀목 낙점
40년 LG맨 ‘경영 마법’재시동

우리나라 재계에서 ‘부회장’(vice chairman)이라는 자리는 매우 중요한 위치다. 일반인이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으로 시작해서 전문경영인(CEO)까지 오를 수는 있어도 부회장 자리에 오르기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 단적인 예로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은 사장단 규모만 60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은 3명에 그친다. 그래서 일반인의 직장생활 최고 영예의 자리는 ‘부회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고 창립자의 직계 가족이나 친인척이 대(代)를 거듭하며 세습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장직은 거의 오너가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룹 총수가 중앙집권적인 경영권을 행사했기에 부회장은 자신의 목소리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총수를 보좌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금씩 부회장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그룹인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SK그룹, 롯데그룹 등 서열 5위 안에 이름을 올리는 그룹에는 각각 많게는 10명까지 부회장이 있는데, 모두 오너에 이어 그룹 내 ‘2인자’의 지휘를 누리며 회장을 보좌하거나, 그룹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총괄 경영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대기업의 부회장이 누구냐, 또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기업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가치척도로 여겨지고 있다. 부회장의 역할과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인데, 예전에는 부회장이라고 하면 회장의 오른팔이나 최측근으로 보좌진 역할에 국한되었다면 요즘에는 부회장의 역할에 따라 그룹의 미래가 좌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최지성 전 부회장이나 이인원 전 부회장은 각각 과거에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이끌면서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바가 있다.

LG 신성장동력 맡은 권 부회장
이번 주 ‘기업 포커스’가 주목한 키워드는 부회장이라는 직책이며, 특히 LG그룹의 새로운 부회장에 대해서 분석해 봤다. 일단 최근 구광모 LG 회장이 취임식도 없이 회장으로서 첫 공식 업무를 조용히 시작하면서 LG의 4세 경영체제가 가동됐다. 구 회장은 6월29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LG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섰다.

구 회장은 40대 초반의 젊은 회장으로 LG그룹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됐는데, 그는 직원들과 상견례 대신해서 LG그룹 지주회사 LG의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고객가치 창조, 인간존중, 정도경영이라는 선대 회장의 경영 방향을 계승해 발전시키겠다”며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구광모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서면서도 공식적인 행사를 갖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회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계열사 경영현안과 업무 파악에 힘을 쏟는 시간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난 7월 16일 구광모 체제 첫 인사를 단행하는데, 하현회 LG 부회장이 LG유플러스 대표를 맡고 권영수 부회장이 LG 대표로 새롭게 자리를 옮기는 이른 바 ‘원포인트’ 교체 인사를 지시한다. 이것은 구광모 회장이 LG그룹의 새로운 2인자가로 권영수 부회장을 곁에 둔다는 뜻이다.

권 부회장은 올해 61세로 1979년 LG전자 기획팀에 입사한 이래 40년 가까이 LG맨으로 뛴 신화적인 전문경영인이다. 그동안 권 부회장은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 사장, LG유플러스 대표이사 부회장 등 전자·화학·통신 등 LG의 모든 사업 영역에서 주력 계열사 CEO를 역임하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이번에 LG 부회장으로 새롭게 임명되면서 동시에 얻은 직책은 최고운영책임자(COO)로 구광모 회장과 지주사 각자 대표를 맡으며 그룹 내 경영 현안을 챙기게 됐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권 부회장이 LG그룹의 안살림과 미래 신성장동력을 맡게 된 것이다.

구광모 회장이 그룹 2인자로 권영수 부회장을 낙점한 이유는 구본무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따라 갑작스러운 LG그룹의 경영권 승계라는 복잡한 문제를 빨리 안정시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경영권 체제 변화에 있어 권영수 부회장은 상당히 필요한 전문경영인일 것이다. 그가 LG그룹에서도 인정하는 재무통이기에 그렇다.

아직 LG그룹은 구광모 체제가 들어섰지만 이에 따른 계열사 분리나, 상속세 문제 등 재무적인 경영판단이 시급한 시점이기도 해서 권 부회장의 중용이 시의적절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나 권영수 부회장과 구광모 회장은 재무 쪽으로 인연이 깊은데, 구 회장이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처음 LG그룹에 입사했을 때 당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권영수 부회장이 재직하고 있었다.

도전적 경영스타일로 실적 개선
재무통으로 불리는 권 부회장이 그룹내 계열사 수장을 맡은 곳마다 눈부신 실적 개선을 보여줘서 LG그룹 안에서 그의 입지는 상당히 탄탄하다. 권 부회장의 실적개선은 상당히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경영 스타일에서 나온 결과물로 그가 LG유플러스,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에서 기록한 독보적인 성과는 지금도 그룹 내에서 회자될 정도라고 한다.

그가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의 CEO가 된 것은 각각 2007년과 2012년 무렵이었는데, 각각 LCD패널과 차량용 배터리 분야의 세계시장 1위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실적 개선은 물론 LG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무엇을 할지 체질까지 바꾸었기 때문에 그에게 ‘1등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2016년 LG그룹이 권영수 부회장을 LG유플러스 부회장으로 발탁한 것을 놓고는 만년 3등으로 불리던 LG유플러스를 확 바꿀 수 있는 적임자가 그 밖에 없기에 그랬다는 이야기가 많았었다.

권 부회장은 LG유플러스 수장을 맡은 지 1년도 안된 전년동기 대비 영업이익을 7000억원대로 올리면서 18% 증가시켜 버린다. 당시 이러한 실적 개선이 얼마나 놀라운 성과였냐면, 경쟁기업인 SK텔레콤과 KT가 각각 영업이익 증가가 각각 0.1%, 4.5% 그쳤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LG유플러스 가입자 수도 2016년 1200만명에서 2017년 1300만명으로 100만명이 늘리며 탄탄한 사업기반을 구축해 놓았다.

그는 혁신 전도사이기도 하다. 이동통신의 모바일 사업뿐 아니라 인공지능 스마트홈 핵심 축을 담당하는 사물인터넷과 인터넷 TV 사업도 차세대 먹거리로 성장시키면서 국내 홈IoT 시장에서 100만 가구 가입자를 최초로 돌파하기도 했다. 요즘 재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미래 화두인데, 권 부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신사업을 LG유플러스 CEO 시절에 하나둘 마련해 놓기도 했다.

예를 들면 LTE 통신망으로 드론을 조종해 물류 수송 등에 이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드론 관제 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했고,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에 IPTV와 사물인터넷을 접목한 점도 시장에 큰 관심을 받았다.

LG 4세 경영체제의 미래 사업은
어찌됐든 LG그룹은 아주 중차대한 변곡점 위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당장 LG그룹의 72개 계열사의 매출은 160조원이며 재무건전성도 상당히 괜찮다. 지금 현재 상황은 양호하다는 평가다. 그런데 변화의 물꼬가 느닷없이 터져나왔다. 지난 5월 구본무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구광모 회장으로의 4세 경영체제가 급작스럽게 시작되면서 LG그룹의 아픈 속내가 다시 드러나고 있다.

새로운 경영체제에 맞춰 전체적인 사업 구조조정도 필요하고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육성도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됐다. 특히나 LG그룹이 안정적인 수익원이라고 하는 생활가전과 TV사업에만 의지하기에는 격변하는 글로벌 시장환경에서 어려운 위기를 언제든 겪을 수 있게 된다. 특히나 13분기 연속 적자를 보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도 실적 개선을 해야 한다.

주요 미래 사업이라고 하는 LG디스플레이도 최근 중국의 대규모 물량 공세에 밀려서 올해 1분기부터 손실을 보고 있다는 점도 최대 고민거리다. 앞서 미래 성장동력으로 투자하고 육성한 자동차 전장사업이나 태양광 발전 사업 등도 아직 그 달콤한 열매를 따기에는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광모 회장은 험난한 4세 경영의 길을 같이 걷는 동반자로 권영수 부회장을 낙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누구보다 계열사 사정에 밝고 경험이 풍부한 권영수 부회장이 구광모 회장과 함께 신사업 진출과 M&A를 이뤄낼 걸로 짐작된다. 아마도 권영수 부회장의 첫 경영방침은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LG전자 휴대전화 사업의 실적개선과 중국과의 경쟁심화로 지지부진한 LG디스플레이에 대한 재무구조 개선 등일 것이다. 전통 LG맨인 권영수 부회장의 경영 마법이 다시 시작됐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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