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 美 제조업 상징 GE의 비극

126년 전에 창업해 미국의 제조업 상징이었던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비교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참담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GE의 주력 사업들은 차례대로 매각 수순을 밟고 있는 중이며, 지난 6월26일에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에서도 퇴출됐다. 이는 갑자기 찾아온 위기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전조가 있었던 비극이었다. GE는 과연 지난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먼저 왜 이렇게 됐는가에 대한 답은 지난해 6월 퇴임한 제프 이멜트(Jeff Immelt) GE 전 회장에게서 찾아야 한다. 이멜트 회장은 아주 드라마틱하게도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기 4일 전에 취임했다.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비행기 중 한대는 GE의 엔진을 달고 있었으며, 센터 건물도 GE캐피털의 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테러가 발생한 후 세계 항공여행 수요가 폭락했다. GE는 세계 최대 항공기 임대업체였기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45세였던 이멜트는 취임 첫 주부터 일생일대의 경영위기에 빠졌던 것이다.

이후 글로벌 기업들이 안보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이멜트는 이러한 트렌드를 기회라 판단했고 GE는 첨단 폭발물 감지 기술을 보유한 아이언 트랙(Ion Track)을 비공개 가격으로 인수했다.
이어서 1년6개월 뒤에 또 다른 업체인 인비전(InVision)도 9억달러에 품에 안는다. 그러나 이멜트 회장은 2009년 두 회사의 지분을 7억6000만달러에 매각하게 된다. 안보 투자가 실패였다는 의미다.

현재 GE가 경영위기에 처한 가장 큰 원인에는 이러한 이멜트 회장의 경영판단 실수를 예로 든다. 순간적인 유행에 끌려 최고 가격으로 관련 기업들을 인수한 사례는 이후에도 많다.

2010년부터 약 5년간 글로벌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고유가 시대를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그러자 이멜트 회장은 석유가스 부문에서 9개 업체를 인수하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든다. 그러나 2016년 유가가 반 토막이 나게 되자 상황이 반전됐다.

2004년에는 미국의 주택 가격이 치솟았다. GE는 이러한 유행에 틈타 WMC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약 5억달러에 인수한다. 그러나 2007년에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서 WMC는 한 해 10억달러의 손실을 입게 된다.

이멜트 회장의 최악의 인수는 2015년 프랑스의 알스톰(Alstom)을 106억달러에 인수한 것으로 GE가 지금까지 가장 많은 금액을 주고 인수한 신기록이었다.
알스톰은 GE의 전력 생산용 터빈 제조를 하는 GE파워의 경쟁사였다. 알스톰은 3만명에 달하는 직원과 낮은 이익률로 인수 당시 말이 많았지만 이멜트는 GE파워의 서비스 판매 능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결과는 대형 터빈에 대한 수요가 폭락하면서 GE파워의 이익률이 절반이나 감소하게 됐다.

이멜트도 퇴임한 지 1년이 지난 GE는 앞으로 어떻게 회생을 할 수 있을까. 지난해 여름 새롭게 취임한 존 플래너리(John Flannery) 회장은 GE의 체질부터 바꾸려고 한다. 내년 말까지 20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각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조명과 철도관련 사업, 기타 몇몇 중소 부문의 사업 등이 포함된다.

앞으로 GE에는 전력, 항공, 헬스케어라는 3개 사업 축이 남아 과거 형태가 상당 부분 유지될 것이다. 항공과 헬스케어의 실적은 양호하다. 그러나 GE파워의 부진을 고려할 때, 이 삼각편대가 성장 궤도에 복귀하는 데에는 몇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GE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는 그래도 여전히 상당히 높은 편이다. GE의 주요 사업 분야는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위기가 기업 생존에 큰 치명타는 아니다.
GE가 고민하는 부분은 미국 제조업체의 자존심이라는 특별한 기업의 가치를 되찾느냐 하는 여부다. 그게 안 된다면, GE는 그저 평범한 기업으로 사람들에게 남을 지도 모른다.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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