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인물] 최태원 회장의 20년

“지난 20년간 그룹 이익이 200배 성장하는 괄목할 성과를 올렸지만 냉정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끊임없이 진화해 지속적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는 여전히 기존 방식에 안주해 있어 미래 생존이 불확실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지나온 20년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 강조한 내용입니다.

최 회장은 이때 “미래 생존이 불확실한 서든 데스(Sudden Death) 시대에서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딥 체인지(Deep Change)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었는데요. 지난 9월1일이 그가 취임한 지 딱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부친인 고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 1998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오른 이후 20년 동안 SK그룹을 이끌면서 그가 느낀 고민과 과제가 많았을 겁니다. 그 우여곡절과 희비가 교차하는 20년의 세월 동안 SK그룹은 재계 3위까지 올라섰습니다.

수치만 놓고 따지다 보면, 최태원 회장은 성공한 경영자입니다. 20년전과 비교해 보면 SK그룹의 자산은 5.6배(34조1000억원→192조6000억원)나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에 매출액은 4.2배(37조4000억원→158조원), 당기순이익은 무려 170배(1000억원→17조3500억원)나 성장하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냅니다.

지난 20년 동안 최태원 회장을 평가할 때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영적 능력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하이닉스의 인수일 겁니다. 현재 SK그룹의 위상을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반도체 기업인 하이닉스를 품에 안았기 때문입니다.

2011년 이 회사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내외부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인수가격만 3조4000억원이 넘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가장 큰 염려는 세계 반도체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이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경쟁사들이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투자를 줄이고 긴축 경영을 할 때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다는 건 과감한 도전을 넘어서 무모한 모험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죠. 그래서 하이닉스 인수합병은 줄기차게 무산됐었습니다. 그런데 왜 SK그룹은 하이닉스를 인수하게 된 걸까요. 바로 이 순간 최태원 회장은 승부수를 걸었습니다. 그룹 내부의 부정적인 의견에도 과감한 결정을 내린 거죠.

최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나를 믿고 도전하자”며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하이닉스 인수 이후 SK그룹이 반도체 사업으로 비상할 수 있는 성장동력을 꿰뚫어 본 겁니다.

자칫 회장의 오너 리스크도 불러일으킬 수 있었겠지만, 그의 판단은 정확히 적중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30조1094억원, 영업이익 13조7213억원을 기록하는 등 대한민국 초우량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 중입니다. 최 회장의 20년의 경영행보 중에 가장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앞으로의 20년 청사진을 위해 최 회장은 헬스케어, 차세대 ICT, 에너지 신사업 등 중점 육성 분야를 꼽고 있습니다. 모두 치밀한 성장 로드맵과 투자계획들이 공개돼 있습니다.

그러나 최 회장이 바라보는 앞으로의 20년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거 같습니다. 그는 기업의 성장을 넘어서 SK그룹이 사회적 가치로써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 중입니다.

SK그룹이라고 하면 다른 기업과는 달리 사회적 활동을 많이 하는 걸로 유명한데요. 최태원 회장은 평소에도 “기업은 이윤 추구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와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는 걸 경영 철학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길은 한국의 대기업이 가지 않았던 독특한 방향입니다. 앞으로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모든 계열사들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앞세워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할지 지켜볼 일만 남은 거 같습니다.

- 장은정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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