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최고령 신약 ‘부채표 활명수’로 장수기업 기틀
‘글로벌 바이오’에 도전, 새로운 100년 신화 부채질

한국에는 100년이 넘는 기업이 그 명맥을 유지하며 생존해 있는 경우가 아주 드문 편이다. 일제강점기 등의 요인 등으로 근대화가 본격화된 시기가 다른 선진국 대비 좀 늦은 탓도 있겠지만, 100년 기업을 일구기 위해서는 적어도 3~4세대에 걸쳐 그 창업정신을 이어가며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마다 잘 대응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재계에 떵떵거리며 대기업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업들 중에도 100년이 넘는 기업은 극소수다. 어떤 대기업은 불과 20년전만 해도 한국재계 1, 2위를 다투다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대기업과 견줘 상대적으로 대외적인 경영환경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들 가운데 100년이 넘는 업력을 유지하며 꾸준히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하는 기업을 보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제약산업 태동시킨 동화약품
올해로 창립 121주년을 맞은 동화약품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동화약품은 국내 제약사 중에 ‘최고령 회사’라고 보면 되는데 활명수, 후시딘, 판콜 등 우리 실생활에 아주 친숙한 일반 의약품들로 성장의 고삐를 놓치지 않고 있다. 동화약품 말고도 100년이 넘는 업력을 유지하는 다른 중소기업들도 있겠지만, 동화약품이 조금 더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고 할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 동화약품이 탄생하면서 국내 제약산업이라는 것이 시작이 됐다는 점과 이어서 동화약품이 일제강점기 시절에 독립자금을 지원한 민족기업이라는 점이다. 

동화약품 하면 딱 떠오르는 제품이 ‘부채표 활명수’다. 지난 1897년 무렵 궁중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궁중 비방에 서양 양약 비법을 더해 개발한 것이 바로 활명수였는데, 이는 한국의 최초 신약이자 최고령 의약품이 되는 시작이었다. 그래서 동화약품을 제약산업을 태동시킨 원조이자 본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왜 한국 최초의 신약이 소화에 도움이 되는 활명수 개발이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한약방에서 탕약을 달여먹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소화불량은 고충 중에 고충이었다. 그때에는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심지어 사람의 목숨을 잃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활명수를 만난 사람들이 탕약 대비 효과도 빠르고 마시기도 쉬운 것을 보고 너무 놀라워 했다고 한다. 한때 활명수를 ‘기적의 명약’이라고 불렀는데, 활명수(活命水)라는 한자 이름 자체가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고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소화불량 개선 효과만으로도 신약이자 명약이라고 불리는 걸 보면 당시 한국의 제약산업이 열악했음을 알 수 있다. 활명수는 한국인이라면 필수 상비약으로 지금도 잘 팔린다. 현재까지 85억병 이상 판매된 활명수는 소화제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뒷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동화약품은 물과 관련해 전통적인 신념과 철학을 갖추고 있다. 활명수를 통해 민족의 오랜 고통인 소화불량을 해결한 뒤로도, 동화약품은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을 계속 펼치고 있고, 특히나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식수 정화 사업, 우물 설치를 통해서 생활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민족기업으로 제약보국 실천
어찌됐든 동화약품은 활명수를 통해 한국의 제약산업을 태동시켰으며 이는 한국 최초의 등록상품이자 상표로 1910년에 ‘부채표’를 올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굳이 왜 동화약품은 그 많은 상표와 이미지 중에 부채표를 골랐을까? 동화약품의 상징인 부채표는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부채인데, 이것은 ‘서로 합해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의미라고 한다. 즉 민족의 화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동화약품의 창업이념은 ‘제약보국’(製藥保國)이다. 설립 당시부터 민족의 융성을 위해 노력했던 동화약품은 일제강점기 때는 활명수 판매수익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조달했고, 한국과 상해임시정부 사이에 비밀 연락망 역할도 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이 동화약품의 CEO들이었다. 이는 한국 기업역사에서도 아주 특이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앞서 설명했던 궁중선전관 민병호의 아들인 민강이 동화약방을 설립했고, 이를 시작으로 윤창식 사장, 윤광열 명예회장 등 3명의 CEO가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독립투사로 활동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지금의 동화약품은 1937년 윤창식 사장이 동화약품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백년기업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윤씨 가문이 맡은 이후 제2의 창업을 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지난 2008년부터 윤도준 회장이 동화약품을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데, 그는 윤창식, 윤광열에 이어 오너 3세 경영자가 된다. 특이하게도 윤도준 회장은 경희대 의대 교수 출신이며 신경정신과 전문의였다가 2005년 5월 부친 고 윤광열 회장의 제안으로 가업을 잇기 위해 부회장 직책을 달고 동화약품에 입사하게 됐고 2008년 경영권 바통을 이어받았다.

국내 제약산업계에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들이 몇군데 있는데, 이런 장수기업들은 대부분 회사경영을 오너 경영체제로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동화약품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제약산업의 여러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새로운 도전을 해왔다. 윤도준 회장 취임이후에도 5명의 전문경영인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새로운 성장도약을 해오고 있다.

신약 R&D 투자 및 수출 확대
윤도준 회장은 조부와 선친의 뜻에 따라 121년의 동화약품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나 경영실적 면에서 2008년 윤도준 회장 체제가 되면서 2011년 까지 꾸준한 매출 성장세를 보여줬다. 회장 취임 당시 회사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약 1750억원, 335억원을 기록했지만 2010년에 매출액 2000억원을 넘고 2011년에는 2346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를 했다.

그러나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2012년 정부가 일괄 약가 인하 정책으로 동화제약뿐만 아니라 제약사들의 납품가격이 일제히 하락하면서 성장세가 멈추게 된다. 이후에 윤도준 회장은 다국적 제약사 출신의 CEO들을 영입해 반전의 기회를 노리게 된다. 윤 회장이 꺼내 든 카드는 그동안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전문의약품 분야에서의 연구개발(R&D) 투자였다. 동화약품은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147억원, 133억원을 R&D에 투자했는데, 이는 매출액 대비 6.9%, 6.0%에 해당하는 비중으로 제약사 중에서도 공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동화약품은 1973년 국내 유일의 희귀약품센터와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신제품 개발에 나섰으며 윤 회장 취임 이후 2010년 현재의 최첨단 연구소를 경기도 용인에 신축하고 신약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출시한 항생제 ‘자보란테’는 국산 신약으로 동화약품의 수출 무기가 돼 주고 있다. 현재 중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중동국가 등에 수출되고 있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 의약선진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제약사들마다 바이오의약품에 미래 성장기틀을 마련하고 있듯이 동화약품도 현재 피부암 치료제, 당뇨병성 신증 치료제 등의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국의 최고령 의약품 활명수의 안정적인 매출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신약개발과 해외수출에 도전하고 있는 동화약품은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윤도준 회장이 121년의 동화약품을 어떻게 변신시킬지 궁금하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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