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를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다. 무성의한 답변같지만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원시적인 방법으로 전날 저녁 하늘을 보면 대충은 알 수 있다. 맑은 달이나 별이 총총히 피어나는 다음날은 보편적으로 성공적인 일출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루 전 여장을 차려 떠나야 하기 때문에 날씨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갑신년 새해가 밝고도 해돋이를 못 본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떠나보면 좋음직하다. 유명 일출지보다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해를 맞이하면서 새해 설계를 해보는 것은 어떨런지. 그 중 하나가 삼척의 근덕면 초곡리에서 용화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말국재 언덕길이다.

정선에서 동해를 잇는 백복령 고갯길을 넘으면서 추암의 촛대바위 일출을 생각했고 삼척의 새천년 도로변에 조성된 해맞이 공원도 생각했다. 하지만 조용한 해안가에서 파도소리 들으며 잠을 청하고 이른 아침 고깃배가 들어오는 생동감을 만끽하고 싶다.
칠흙속 어둠을 뚫고 근덕면 초곡리 고갯길을 넘어서 남쪽으로 향한다. 초곡항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해변은 용화에 이르러 해안절벽을 만들어낸다. 내리막길을 달릴 때면 늘 차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다. 시원하게 탁 트인 용화와 장호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길은 동해 바닷가 도로변에서도 빼어난 풍광을 보여준다.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주차공간을 발견하고 가까운 곳에 숙소를 찾는다. 삼척시내의 새천년 도로변에는 번듯하게 잘 지어놓은 숙소가 많지만 용화리는 식당 하나도 없고 그저 여름철 피서객들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듯한 민박집뿐이다. 장호항으로 발길을 돌린다. 주린 배를 부여안고서도 직업의식은 계속된다. 식당과 숙소를 어디에 정할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느낌이 괜찮은 못난이횟집(033-573-4303)에 자리를 잡는다. 치장하지 않은 어촌의 단층 건물. 그저 평범한 식당안에는 해돋이를 보러 온 손님들만 두어팀 자리를 잡았다. 모양없이 큼지막하게 썰어낸 모듬회(4만~5만원선)가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맛이 좋다. 식당집에서는 소라민박집(033-572-4031)을 추천해준다. 다른 곳은 5만원이지만 소라집은 3만원이면 된단다.

말국재 언덕위에서 바라본 일출
해돋이를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새벽 3시에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을 청하고 일어난 시각이 새벽 6시30분. 일단 용화관광랜드를 둘러본다. 일출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들고 말국재 언덕으로 오른다.
바다 위를 살짝 붉히며 올라오는 해는 이미 중천을 달려가고 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던 많은 사람들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다시 갈남으로 향한다. 갈남포구에는 낚시객들만 눈에 띄고 월미도라는 섬은 그저 아침 햇살에 모양없이 바다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다. 차를 다시 분토동으로 돌린다. 볼거리 없는 민가만 몇 채 있을 뿐. 전원주택 밑 해당화 가시가 찌르는 사이로 잘생긴 소나무가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 있다.

갈남포구와 어촌 민속관
이어 조업을 마친 어선들이 항구로 부산하게 드나드는 장호항으로 들어선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장호항의 바닷물은 밑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마치 맑은 계곡물처럼. 그래서 갯내음도 없다. 그물을 정리하는 아낙들의 손길은 부산스럽다. 한켠에서는 일시적인 어시장이 형성된다. 오징어, 대게, 곰치, 피문어와 잡어가 전부다. 오전 9시30분~10경이면 물건은 이미 동이 난다. 어물을 사고 싶어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이곳 고기는 질이 좋아 동해에서도 최상으로 꼽히고 그런만큼 가격도 비싼 편이다. 장호항을 벗어나 임원항으로 가는 길목에 갈남포구를 찾는다. 원래 이곳은 처녀신을 기리는 ‘해신당’만 덩그러니 있던 곳. 2002년 7월에 어촌민속관이 생기고나서부터 어촌마을은 술렁거리고 있다. 포장마차에서는 꽁치와 소라, 아지 등의 생선 굽는 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입장료(3천원)를 내고 계단을 따라 오르는 길에는 사람 키의 두 배나 될 정도로 큰 남근석이 열지어 이어진다. 크고 작은 남근석을 깍아 테마랜드를 만들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처녀를 기리기 위해서 해마다 해신당 안에 남근석을 주렁주렁 매달아 혼을 달래 주었던 것을 테마로 꾸민 것이다.
계단을 따라 우측 바닷가 벼랑쪽으로 가면 해신당이 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약 400년 전, 마을 처녀가 미역을 따기 위해 앞바다 바위섬에 가려고 하자 장래를 약속한 젊은 사공이 배를 태워 주었다. 그러나 저녁에 심한 풍랑이 일어 다시 배를 띄울 수 없었고 결국 처녀는 바위에서 애를 태우다 빠져 죽었단다. 지금도 이 마을 앞바다에는 ‘애바위’라 부르는 바위섬이 남아 있다. 처녀가 죽은 다음해부터 흉어가 들고 사고가 잦자 주민들은 이곳에 처녀의 원혼을 모신 사당을 지었다. 지금도 매년 정월 대보름과 10월 5일에 향나무로 깎은 남근을 홀수로 바치면서 제를 올려 풍어와 안녕을 빈다.
갈남에서 고깃배를 이용해 낚시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진철(017-326-4241)씨네로 문의하면 4인기준 8만원 정도에 이용가능하다.
갈남을 지나서 거치게 되는 곳이 임원항이다. 임원항은 삼척의 남쪽 끝자락쯤에 붙어 있는 항구다. 묵호항을 기점으로 강원도 어시장은 임원항이 끝이다. 이른 아침 배가 들어오면 일시적으로 어시장이 형성되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간이횟집도 많다. 여러 가지 활어를 가득 담아 두고 즉석에서 회를 쳐주면 임원천을 바라보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자연산회나 건어물 등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으며 임원항 옆 7번 국도상에서 새벽이면 등대 옆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
■대중교통 : 동서울 터미널(02-458-4851)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4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삼척에서 원덕행 버스를 타고 용화 장호랜드 휴게소를 지나 내리면 장호해수욕장.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된다. 철도는 동해역에 하차해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자가운전 : 삼척에서 7번국도 이용해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 용화~장호해수욕장~갈남포구를 지나면 왼편에 임원항이다. 삼척시내에서 장호항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또는 정선~임계~백봉령 고갯길을 넘어 동해~삼척으로 잇는 도로를 이용해도 된다. 임원에서 돌아나올 때는 원덕에서 태백을 거쳐 영월-제천방면을 이용하면 된다.

■사진설명 : 말국재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이 혜 숙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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