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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료만 넘겨받곤 “거래 않겠다” 일방통보 다반사
김도희 기자  |  dohee@kbiz.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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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5호] 승인 201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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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개발업체 A사는 거래처 전자결재 시스템을 구축하고 본사에 상주하며 운영과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거래처는 고도화 사업 과정에서 B사의 경쟁사를 선정, A사가 저작권을 지닌 소스코드를 무단 복제·탈취해 해당 업체에 제공했다. 이로 인해 A사는 기술 경쟁력 손실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과의 인수합병(M&A)도 무산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선박부품 제조업체 B사는 선박 엔진 관련 부품을 개발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동안 품질관리를 이유로 수년에 걸쳐 제품의 제조공정도, 관리기획서, 작업절차서, 검사표준서 등을 제공할 것을 요구받았다. 대기업의 요구에 따라 제공했던 기술자료들은 다른 협력업체로 유출돼 공급처 이원화가 이뤄졌고 최근 회사 매출액이 급감했다. 더욱이 대기업과 계약할 때 포함된 제 3자 판매금지 특약 때문에 자체 개발한 제품임에도 수출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계약 전 기술자료만 받고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면을 통해 권리관계를 분명히 하고 중소기업 기술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가 최근 발표한 ‘대·중소기업 간 기술탈취 실태 및 정책 체감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기술자료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고, 기술자료 제공과 관련된 서면도 제대로 발급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 “계약체결 전 기술자료 요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501곳 중 17곳(3.4%)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를 요구받았다고 응답했다. 매출액별로는 ‘20억원 미만’ 소규모 업체가 5.9%로 가장 높았고 업종별로는 기계·설비(8.6%), 자동차(5.5%), 전기·전자(3.6%) 업종에서 기술자료를 요구받은 비율이 높았다.
기술자료를 요구받은 시점은 계약체결 전 단계(64.7%)가 가장 많았고 계약 기간 중(29.4%), 계약체결 시점(5.9%) 순서로 조사됐다.

△대기업이 설계에 반영한다며 (하청업체가) 제작한 제작도면 제공 요구 △협력업체가 개발한 기술 및 제품을 대기업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둔갑 △입찰과정에서 자료 공개 요청 △하청업체 설계 자료를 기반으로 입찰 참여시킨 뒤 기술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단가 인하 등 하청 중소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기술탈취 사례도 다양했다.

문제는 이들 절반 이상이 분쟁에 휘말릴 경우 피해사실을 유일하게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인 서면 조차 제대로 발급받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에 따르면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본인 또는 제 3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다만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를 입증하는 경우 요구목적, 비밀유지에 관한 사항, 권리귀속 관계, 대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수급사업자와 미리 협의해 서면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서면을 받지 않고 기술자료를 제공했다’는 응답이 53.8%로 가장 많았고, 23.1%는 서면을 발급받고 있었지만 협의가 아닌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서면을 받는 수준에 불과했다. 기술탈취 관련 분쟁이 발생해도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C사의 경우, 거래처로부터 자동차 부품 개발 오더를 받아 약 2억원을 투입해 부품과 설비를 제작했다. 그러던 중 납품 제안 단계에서 거래처가 설계자료와 도면 그리고 특허 관련 자료 일체를 요구해 납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공했는데 기술자료를 다 넘기고 나니 C사가 개발한 제품을 양산하지 않기로 했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C사 관계자는 “알고 보니 거래처가 다른 협력업체로부터 이 제품을 납품받기로 계약했고 결국은 거래처에서 우리 기술자료를 다른 협력업체로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계약 전에 기술자료만 넘기고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은 피해사례라는 설명이다.

피해사실 입증 어려워…정부 역할 절실
대기업이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하는 이유로는 ‘불량(하자) 원인 파악’(51.9%)이 가장 많았고 △기술력 검증(45.9%) △납품단가 인하에 활용(24.6%) △타 업체에 기술자료를 제공해 공급업체 다변화(11.2%) 등의 이유도 있었다.

보안 규정 마련이나 직원 교육 실시 등 기술자료 보호를 위한 기업의 노력 정도를 질문한 결과에서는 100점 만점 기준 평균 69.51점으로 조사됐고, 기술탈취 근절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의 엄정한 법집행 및 법원의 적극적 판결’(49.9%)이 가장 많았다.

한편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지난 2월 범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기술탈취 근절 대책이 ‘기술탈취 근절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의 기술탈취 근절 대책은 △가해 혐의 대기업에 대해서도 입증책임 부여 △비밀유지 협약서(NDA) 체결 의무화 △기술탈취 손해배상액 최대 10배 상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같은 정부 대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는 응답은 41.9%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는 응답(13.8%)보다 3배가 많았다. 특히 ‘과징금 상향 및 징벌적 손해배상 등 처벌강화’(44.7%)가 가장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응답기업들은 이 밖에 △기술탈취 행위 범위 확대(22.8%) △기술임치·특허공제 지원제도 활성화(14.6%) △집중감시업종 선정 및 직권조사 실시(10.2%)등도 효과가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원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중소기업도 정부 대책이 기술탈취 근절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으면 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서면을 발급해 권리관계를 분명히 하고 공정한 기술거래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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