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 주 드레스덴에 있는 롱가버거 사옥은 매우 독특하다. 바구니를 닮은 이 건물은 완공된 지 10여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도상학의 극치’와 ‘최악의 건물’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모처럼 사옥을 짓는다면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까? 빌딩을 새로 건립하려는 경영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볼 만한 의문이다. 해답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먼저 첨단 공법과 최신 디자인으로 두고 두고 화제가 될 만한 건물을 짓고 싶다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준 비즈니스의 특성이 사옥에 반영되길 기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을 디자인할 때, 자연물이나 상품 등의 구체적인 형상을 닮게 하려는 것은 아주 큰 모험이다. 자칫하면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켜서 모처럼의 노력이 조롱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롱가버거 사옥(사진)의 디자인은 매우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롱가버거는 세계 최고 수제(手製) 바구니를 만드는 회사다. 1만명이 넘는 직원과 7만명의 세일즈맨, 그리고 수백만명의 고정 수집가를 거느린 롱가버거의 연 매출액은 10억달러가 넘는다. 하루 4만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 롱가버거의 제품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일반 바구니와 한달에 한번 생산되는 특별 바구니, 수집가용 바구니가 그것이다. 특히 제작한 기술자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 수집가용 바구니는 소장품 시장에서 매우 인기 있는 품목이다.

1983년 32.95달러에 팔렸던 바구니가 최근 경매 시장에서 1600달러에 거래되는 빅히트를 치기도 했다. 야후 옥션에도 현재 수백개의 롱가버거 바구니가 소비자들의 구매 클릭을 기다리고 있다. 1972년 데이브 롱가버거(Dave Longaburger)가 3대째 이어져온 가업을 되살리기 위해 롱가버거를 설립했을 때만해도 이 회사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데이브의 할아버지가 아메리카 인디언들로부터 단풍나무 소재 바구니 제조 기술을 배워 시작한 가내공장이 아버지 대에 이르러 빛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 대공황 이후 등장한 값싼 플라스틱 그릇에 밀려 수제 바구니의 입지는 매우 좁은 상태였다.

가업을 이어 롱가버거를 창업한 데이브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12남매 중 다섯째인 데이브는 간질과 언어장애를 갖고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 무려 7년이 걸렸지만, 졸업 후에는 식당과 야채가게 운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등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데이브는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고급 수공예품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아버지가 취미 수준으로 운영하던 수제 바구니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변에선 잘나가던 비즈니스를 접고 전망 없는 사업을 시작한다며 반대하고 조롱했지만, 데이브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데이브의 예상은 적중했다. 자연 소재를 일일이 손으로 엮어서 만드는 롱가버거 바구니는 데이브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힘입어 미국 여성들이 가장 아끼는 수집품 중 하나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언어 장애를 가진 그였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바구니마다 기능에 걸맞은 스토리를 담을 수 있었다. 바구니들을 용도에 따라 피크닉 바구니, 시장 바구니, 비디오와 CD 바구니, 꽃 바구니, 사탕 바구니, 커피 바구니, 목욕용품 바구니 등으로 특화해 중산층 가정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1990년대 중반, 미국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롱가버거는 번듯한 사옥 하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었다. 3000여명의 바구니 기술자들과 수천명이 넘는 직원들이 여러 지역 사무실과 공장에 분산돼 일하는데 따른 비효율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건축회사들이 새 사옥 디자인 공모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들은 데이브의 반대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데이브는 회사의 모든 사무실과 공장들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거대한 바구니같은 사옥을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데이브는 바구니 아이디어야말로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주변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대다수의 직원들과 은행가, 건축가, 시공사 엔지니어들은 데이브의 바구니 아이디어를 그가 평소에 즐겨 하는 농담 수준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의 진의는 확고한 것이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 의사를 개진했으나, 데이브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결국 세계적인 건축회사 NBBJ와 협력해 1997년말 오하이오주의 드레스덴에 실제 바구니 형상의 7층짜리 회사 건물을 완공시켰다. 여기에는 3000만달러가 투자됐다.

주요 언론 보도를 통해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독특한 건물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바구니 제작 공정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건물 내부를 둘러보면서 사람들은 롱가버거 바구니의 애호가가 됐다. 새 사옥 건립으로 롱가버거는 관광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았다. 광산 폐쇄로 활력을 잃었던 드레스덴은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숙박시설과 놀이 시설들이 세워졌고, 바구니 제조 과정 견학과 드레스덴 관광을 연계한 여행 프로그램들도 속속 개발됐다. 롱가버거와 드레스덴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공생 관계가 된 것이었다.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건물 디자인 하나가 회사 사업의 성패와 구성원들의 사기를 크게 좌우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큰 파급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형상을 완벽하게 재현해 비범한 예술품의 경지로 승화시키려면 어떠한 반대와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열정과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데이브의 성공적인 디자인 경영 모델에는 바로 이런 투철한 의지와 과감성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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