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넘어 신성장동력‘포트폴리오’로 승부수
‘패션·리빙·면세점’삼각편대 출격

현대백화점의 경영행보는 아주 조용하고 고집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조용하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경영자가 나서는 일이 별로 없이 내실경영을 해왔다는 것이고, 고집스럽다는 건 다른 경쟁사인 롯데나 신세계와는 달리 오랫동안 본업인 백화점 사업에 집중하고 다른 사업으로의 확장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다소 늦게 진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백화점의 본사 사옥을 가보면, 누구나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는데,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 금강쇼핑센터가 바로 본사 사옥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40여년의 세월 동안 바로 이 금강쇼핑센터라는 허름한 건물에서 지냈다. 다른 경쟁사들이 백화점 본사에 걸맞게 현대식 건물로 사옥을 짓는 것과 달리 현대백화점은 쓸데없는 외형을 꾸미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이 독특한 기업문화이다.

정지선 취임 이후 변화 태동
현대백화점의 전신은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1971년에 설립됐다. 당시 현대그룹의 주력회사는 현대건설이었는데, 현대건설이 국내외 진출하는 사업현장에다가 바로 금강개발산업이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했다. 이와 함께 서울 용산구 주변에 6개의 금강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등 당시에는 아주 작은 회사였다.

그러다가 1985년부터 화려한 변신을 시작하는데, 압구정에 현대백화점 본점이자 1호점을 지으면서부터 ‘명품백화점 신화’를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이 현대건설의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회사를 새로운 성장도약판에 올려놓은 것이다. 정몽근 명예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9남1녀 중 셋째 아들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정몽필 현대제철 회장과 한국경제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현대차그룹을 일군 정몽구 회장에 이어 현대가(家)의 명맥을 이어오는 경영자다. 

현대백화점은 2001년 정주영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독립경영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2003년 정몽근 명예회장의 큰 아들인 정지선 회장이 당시에 31세의 나이로 총괄부회장에 오르며 현대가에서 누구보다 빨리 3세 경영자로 올라섰다. 정지선 회장은 한국경제에서 대기업 3세 경영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지선 회장은 지난 2008년에 총괄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의 정점에 올라 섰는데, 정 회장이 2003년부터 경영에 참여한 이후 6년 동안 가업승계를 위한 내실 다지기를 진행했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는 현대백화점 점포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매년 1~2개의 신규 점포를 개장하면서 외연을 넓히고 있고 특히 오는 11월에는 서울 강남 코엑스의 핵심 유통시설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시내면세점을 열어 면세점 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젊은 3세 경영자인 정지선 회장이 주도하는 현대백화점그룹은 과거와는 완전하게 달리 변신과 도전의 방향으로 그룹의 미래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동안 롯데와 신세계가 천문학적인 투자금으로 여러 사업을 확장하고 앞으로도 투자계획을 밝혀온 것과 달리 현대백화점그룹은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유통 대기업 ‘빅3’에 들어가는 현대백화점의 위상을 본다면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년 삼성동 사옥 시대 연다
일단 현대백화점그룹이 내년 삼성동 무역센터 인근 신축 건물로 본사를 이전한다는 건 40년 넘은 압구정 시대를 마감하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포석이 아닌가 싶다. 삼성동 사옥의 이유 중 하나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신성장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면세점 사업을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추진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현대백화점은 11월에 현대백화점면세점을 무역센터점 3개층을 할애해 연다고 하는데, 규모만 5000평이 넘어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 이어 국내에서 두번째로 넓다고 한다. 면세점사업은 현대백화점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면세점 사업의 강자인 롯데그룹은 지난해 6조원이 넘는 매출을 면세점 사업에서만 올렸고, 지난 2016년 명동에다가 서울 시내 첫 시내면세점을 연 신세계그룹도 92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유통 3사 중에서는 맨 마지막으로 2016년 특허를 획득해 본격적으로 면세점 사업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신규 사업에서는 다소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의 기반인 오프라인 유통에서는 꾸준한 성장을 해왔던 것이 최대 경쟁력이다. 최근 행보는 더 빨랐다. 2014년 현대시티아울렛 가산점을 시작으로 도심 및 프리미엄 아울렛을 6개 열었고, 백화점도 2곳을 추가했다.

현대백화점이 최근 가장 중점을 두는 것으로는 유통업이라는 기존 인프라와 연계할 수 있는 리빙, 패션 사업의 확장이었다. 정지선 회장은 연초부터 새로운 비즈니스 발굴을 강조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과거 경영행보를 보면 2012년 현대리바트와 한섬을 잇달아 인수한 것은 유통업과의 시너지를 고려한 포석이었다고 본다. 한섬은 타임, 마인 등 국내 패션브랜드에 강점이 있는 곳이다. 지난해에는 해외브랜드 강화를 위해 SK네트웍스의 패션사업부문도 인수했는데 이를 통해 타미힐피거, DKNY, CK, 클럽모나코 등의 국내 사업권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한섬과 SK네트웍스 패션사업 인수로 국내 패션부문에서 업계 4위로 단숨에 올라섰다. 국내 패션업계가 포화상태로 최근 5년 사이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현대백화점은 백화점과의 시너지를 통해 ‘고급화 전략’을 썼고, 현대백화점·현대홈쇼핑·현대H몰 등 막강한 유통망의 지원사격으로 패션사업에서만 매출 1조20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정 회장, 빠른 경영 보폭
현대백화점그룹이 최근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홈 리빙(home living)’과 관련된 사업들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12년 현대리바트를 인수해서 가구 사업을 그룹의 한 축으로 세웠다. 현대백화점이 단순하게 유통 중심으로 매출의 대부분을 그곳에서만 캐내려고 하다가는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 없기에, 정지선 회장은 이른 바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 도약하자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현대리바트는 지난해 매출액 8884억원을 기록하면서 국내 1위 업체인 한샘은 물론 글로벌 가구 공룡 이케아와의 경쟁을 위해 몸집을 부풀리려고 한다. 정 회장은 한화L&C의 인수합병을 추진 중인데, 이 회사는 인테리어 자재 전문업체로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긴 우량회사다. 한화L&C를 품에 안으면 지난해 매출 1조9700억원 가량을 올린 한샘을 제치고 현대리바트가 업계 1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리바트의 확장 말고도 최근 3~4년 사이에 정지선의 현대백화점은 아주 빠른 경영보폭을 보여줬다.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린푸드를 통한 식품사업을 기업 간 거래(B2B)에서 소비자 거래(B2C)로 확장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현대렌탈케어를 설립해 생활가전 렌털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같은 해에 에버다임을 인수해 건설장비 사업 쪽으로도 영토를 확장했다. 현재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현대HCN는 지난해 매출 2900억원, 영업이익 490억원을 올리며 안정적인 수익원이 돼 주
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제 더 이상 변화를 주저하는 기업이 아니다. 백화점·홈쇼핑·면세점이라는 유통업과 홈리빙·급식·렌털 등 비유통업의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면서 미래 실적이 촉망되는 알짜 기업으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제2도약기에 접어든 현대백화점그룹은 2020년까지 매출 23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혁신과 비상의 양 날개를 장착한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목표치가 불가능하지는 않아 보인다. 정지선 회장은 혁신과 도약의 칼날을 꺼내 들었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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