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티브 인수로 글로벌 실리콘 시장 2위 도약
‘100년기업 KCC’무한도전

KCC는 종합건설자재 전문업체다. 정몽진 KCC회장은 올해초 KCC 신년회 자리에서 이렇게 강조를 했었다. “글로벌 지배력 강화를 통해 장기적 기업 경쟁력을 확보해나가야 합니다.” 정 회장은 특히 올해를 “장기적 기업 성장을 위해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원년”으로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몽진 회장이 KCC의 장기적인 성장 엔진을 위해 고심했던 것이 바로 ‘글로벌 지배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 9월에 정 회장이 세계적인 실리콘업체인 ‘모멘티브 퍼포먼스 머티리얼즈’ 인수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그의 신년사 메시지가 단순한 바람이나 희망사항이 아닌 현실적인 계획이었고, 치밀한 전략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재사업까지 포트폴리오 다양화
여기서 모멘티브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 회사는 제너럴일렉트릭(GE)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계 3대 실리콘업체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 전 세계 주요 지역에 16개 실리콘 생산 공장을 포함, 24개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아주 까다로운 첨단기술 소재 제품을 공급하는 특수소재 전문기업이기 때문에 기술력이 상당히 중요한 분야다.

KCC는 건설자재 전문기업인데, 소재사업까지 그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 향후 기업 경쟁력은 무한대로 커질 수 있게 된다. 소재사업을 통해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에 쓰이는 핵심부품의 재료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와 같은 분야는 매년 빠르게 변화하고 고객의 니즈에 부응하는 제품을 제때 내놓아야 하기에 특성상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분류된다. 한번 주도권을 잡게 되면 그 산업을 선점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찌됐든 글로벌 실리콘 시장에서는 강자들이 여럿 있는데, 미국의 다우듀폰, 독일의 바커 등과 같은 거인들과 함께 KCC는 이 분야의 시장 경쟁을 계속 해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3위 업체인 모멘티브를 이번에 인수하게 되면서 KCC는 세계 실리콘시장에서 2위까지 도약을 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대로 KCC는 건설자재 전문업체다. 이번 인수합병이 성공하면서 KCC는 일단 다양한 사업군을 갖추게 되는데, 모멘티브를 품에 안으면서 주력 사업이 된 실리콘을 중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현재 KCC는 매출의 80% 가까이를 도료와 건자재사업에서만 올리고 있다. 기존에 실리콘사업 매출은 2000억원 가량으로 전체 매출에서 6% 수준에 그치는 아주 작은 분야였다.

모멘티브를 인수했다는 것은 KCC라는 기업의 사업체질을 완전히 뒤바꾸고 새로운 기업으로 탄생하는 것과 진배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실리콘 사업은 KCC 사업비중의 50% 가까이 될 것이다. 거기다가 기존에 실리콘 말고도 도료, 유리, 바닥재, 창호 등 종합 건자재와 인테리어까지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되면서 여러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체력도 갖추게 된 것이다.

현재 KCC는 연간 연결기준으로 매출액이 지난해 3조8000억원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모멘티브와의 합병 이후 매출은 2배가 넘는 6조원대가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는 KCC가 창업 60주년을 맞는 해다. 정 회장은 앞서 신년사에서 임직원 모두가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100년 기업 KCC’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정몽진 회장이 밝혔던 신년 메시지는 오너들의 허황된 목표나 작은 외침이 아니라, 1년도 안 돼 실현되면서 KCC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이 펼치고 있는 일련의 도전과 혁신에 대해 좀 더 꼼꼼히 따져보자.

부친 뜻 받들어 실리콘 ‘통큰 투자’
정몽진 회장이 모멘티브를 인수한 것은 한국 기업사에 있어서도 실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한국기업의 역대 해외기업 인수합병 사례 가운데서도 사상 3번째로 큰 규모이고 KCC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바꿔놓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알려지기로는 정몽진 회장은 상당히 보수적인 경영스타일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고 언론사와 정식으로 인터뷰를 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한다. 또 인수전에서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다. 지난 2011년 인수한 영국 실리콘 원료회사 바실돈이 마지막일 정도다.

그런 그가 모멘티브의 인수금액만 약 30억달러, 우리 돈으로 3조4000억원을 썼다고 하니, 오랜만에 상징적인 베팅을 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참고로 해외 인수합병 중에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가 80억달러,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 49억달러였고, KCC의 모멘티브 인수가 30억달러다.

이번 인수합병의 의미는 앞서 설명한 대로 정 회장이 KCC를 건자재 기업이 아니라 실리콘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보인다. 왜 정 회장이 오랜 보수적인 경영스타일을 깨고 한국 기업사에 기록될 초대형 인수합병을 시도한 것인지 그 동기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답은 KCC 가문의 옛 이야기를 살펴보면 된다. 실리콘사업은 정몽진 회장의 아버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창업주) 때부터 육성해 왔던 KCC의 미래사업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정몽진 회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럽과 러시아, 중국 등의 실리콘공장을 찾아다니며 KCC 실리콘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해외기업들이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로열티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KCC중앙연구소에서 독자적 기술개발에 성공하면서 그 결과 전량 수입해왔던 실리콘의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실리콘사업에 실질적인 투자를 통해 무게 중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 부터였다. KCC는 2003년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유기실리콘 모노머 생산에 성공하며 실리콘사업을 본격화했고 2008년에는 독자기술로 초고순도 폴리실리콘 생산에 성공했다.

정 회장은 2006년 실리콘사업에 투자를 집중해 2012년까지 KCC를 세계 4대 실리콘업체로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는데 2018년 모멘티브 인수를 통해 뒤늦게나마 이런 목표에 한발 다가선 것이다.

정몽진 회장은 1983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나 1986년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91년 KCC 전신인 고려화학에 입사했다. 입사 9년 만인 2000년 KCC그룹 총괄회장 자리에 오른 뒤 지금까지 KCC를 비롯해 KCC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 금강레저 등 그룹 주요 계열사를 이끌어왔다.

아울러 정 회장은 현대그룹과 관계된 오너이다. 정몽진의 큰아버지가 바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이고, ‘몽’자 돌림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가 정몽진의 사촌형이 된다. 정몽진의 아버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동생이 된다.

‘홈씨씨 인테리어’로 B2C 진출
창립 60주년이 된 KCC가 100년 기업으로 가는 제2의 도약대에 올라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0년 이후 KCC는 그룹 차원에서 정상영 명예회장이 쌓아올린 기반 위에 세 아들이 각각 책임경영을 하면서 서서히 변화를 일으켜 왔다. 그룹 총괄 경영은 장남 정몽진 회장이, ㈜KCC 사장직은 둘째 정몽익 대표가, KCC건설은 셋째 정몽열 대표가 맡고 있으면서 ‘2세 경영’ 체제를 순조롭게 가고 있다.

그리고 정몽진 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2000년부터 실리콘과 건축자재 유통사업에 진출하면서 B2B 중심이던 사업구조를 B2C로 다각화하면서 소비자 시장에 관심을 키워왔다. 2007년에 인테리어 종합유통점인 ‘홈씨씨 인테리어’라는 브랜드를 출범시키고 인천과 목포에 대형 매장을 열었던 것이 바로 B2C사업에 있어 상징적인 변화의 모습이었다.

이처럼 KCC는 정몽진 회장 체제에서 숨 가쁘게 변화의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외부에는 그 변화의 가쁜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미 KCC 임직원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가열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 전문기업으로 거듭나는 KCC에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성장의 발판들이 놓여져 있다. 이제부터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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