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시장서 ‘카피차’ 이미지 벗은 지리에 추월 허용
‘수소차+α’가 新성장엔진

최근 한국경제의 주요 산업군의 동향을 살펴보면, 유독 부침을 겪고 있는 산업이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가 주도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이다. 미국, 중국 등의 주요 수출시장에서 여러 악재에 직면한 국내 자동차업계는 새로운 돌파구와 성장동력원을 찾지 못하면 ‘현대의 속도’로 불리던 현대자동차의 신화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의 떠오르는 자동차 기업인 지리자동차의 리수 푸 회장은 “전 세계 자동차가 중국을 달리게 할 게 아니라 중국 자동차를 세계로 나가게 하자”며 볼보자동차에 이어 다임러까지 넘보고 있다. 지리자동차는 현대자동차를 롤모델로 삼던 중국의 토종기업이었는데, 이제는 현대차를 추월하려고 한다. 새로운 라이벌 중국기업이 이처럼 가속페달을 올리고 있는 와중인데, 현대자동차는 재도약의 해법을 가지고 있을까?

美관세폭탄 일단 막아
국내 자동차 업계가 부진한 이유는 복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수시장의 침체와 수입차 공세 등으로 인해 좀처럼 성장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발 ‘관세 폭탄’까지 터지면서 자동차업계의 비상등이 켜지고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에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가 수출한 물량이 약 253만대인데, 미국에 수출한 물량은 84만대가 조금 넘는다.

 만약 미국의 여러 통상 계획 중에 최대치인 25% 관세를 부과한다면, 현대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는 무려 3조원이라고 한다. 3조원의 관세는 장사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한해 영업이익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렇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4조5000억원이었다.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을 때 정의선 부회장은 북한이 아닌 미국으로 건너가서 자동차 관세 대응에 총력을 펼쳤다고 한다. 그 결과 9월24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할 때 관세 재검토에 대한 미국측 반응을 이끌어 냈다. 자동차 산업이야말로 미국 관세라는 것이 가장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분야가 아닐 수 없으니, 지난 9월24일 회담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사를 결정할 아주 중요한 회담이라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대외 악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현대자동차의 2000년대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중국에서 현대자동차는 매우 기념비적인 기록을 달성하면서 안착을 하게 되는데, 2002년 10월 베이징자동차그룹과 손잡고 합작회사인 ‘베이징 현대차’를 설립하게 된다. 국내 인기 모델인 쏘나타, 아반떼 등을 조금씩 개조해서 중국 현지에 맞는 브랜드와 모델로 출시를 했다.

현대차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는데, 베이징의 택시 가운데 60%가 현대차로 바뀐 적도 있고 2010년대에 들어서서도 초반에 연간 270만대의 전체 생산량을 자랑하기도 했다. 세계 완성차 업체 중에 중국시장에 가장 늦게 진출했던 현대차의 눈부신 발전을 두고 ‘현대의 속도’라고 중국 사람들이 칭하기까지 했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현대차가 중국 성장에 날개를 단 시기는 재미있게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무렵이었다. 이때 남다른 영업전략을 쓰기 시작한다. 앞서 베이징 택시의 60%가 현대차 모델이었다고 했는데, 정말 변함없고 질 좋은 자동차를 고르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이 바로 택시운전기사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차는 택시운전기사를 겨냥한 마케팅을 구사하게 된다. 보통 택시는 불필요한 옵션을 빼고 저렴하게 공급하기 마련이고, 장시간 운행을 하기에 운전기사들 입장에서는 저렴하고 질 좋은 자동차라고 손님들에게 추천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 뒤로 현대차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게 되면서 SUV 모델을 출시하게 되고, 중국시장의 자동차 트렌드에 있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2017년 사드 사태로 인한 판매량 급감과 이에 따른 생산공장 가동 중단이었다. 판매 부진과 부품 대금 미납 등으로 인해 협력업체의 납품 거부사태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2017년 상반기 중국 판매량은 전년대비 43%나 감소한다. 중국이라는 최대 시장에서 겪게 되는 최대 위기였다.

지리자동차의 빠른 추격
올해 상반기 중국과 미국의 현대차 판매량은 조금씩 늘어나는 듯 했지만, 다시 하반기 실적이 어두워지고 있다. 그러니까 현대차의 위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현대차가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 자동차 업계는 씽씽 속도를 올리고 있어 대조적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자동차는 ‘카피차’라는 오명을 받았다. 2000년 초반 대우자동차 시절 마티즈를 중국의 체리자동차가 거의 99% 카피해서 QQ라는 모델로 출시했는데, 이걸 두고 당시 중국 자동차에 대해 한참을 비웃음 거리로 삼기도 했다.

기술력에서 많이 뒤처졌던 중국 기업들은 그 뒤로 일취월장한다. 카피차를 만들던 체리자동차만 해도 지금 중국 5대 자동차 브랜드가 됐다. 단순 모방을 넘어 자신만의 기술로 자기의 브랜드 차를 만들고 있다. 카피차로 유명한 중타이자동차의 경우도 과거 현대차 카피를 넘어 포르쉐, 아우디 등 고급 명품 자동차를 카피하고 있는데, 이는 점점 디자인을 넘어 수준 높은 기술력까지 모방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자동차 산업이라는 것이 생산에서 공급까지 이르는 전후방 영향력과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고 나면 기술의 성장속도가 가속화되는 측면이 있는데,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기에 토종 기업들이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법률상 외국기업과 현지업체의 합작을 필수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 이는 해당 기업의 기술을 현지업체에 공개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들만의 홀로서기까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폭발적인 성장을 한 중국의 자동차 기업은 지리자동차다. 최근 중국 시장 판매량 순위에서 폭스바겐 합작회사인 이치폭스바겐, 상하이폭스바겐이 1, 2위를 차지하고 있고, 3위는 상하이 GM, 4위가 지리자동차다. 10위는 베이징현대차다. 지리자동차는 합작회사도 아니고 중국의 토종기업으로 현대자동차를 롤모델로 삼던 곳인데, 이제 현대자동차가 지리자동차를 배워야 할 판국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기술력 좋은 현대차와 가성비 좋은 중국자동차를 두고 선택만 하면 되는 형국까지 왔다.

지리자동차는 빠른 기술혁신으로 성장세를 올렸고 이어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웠다. 볼보 같은 스웨덴의 전통 있는 자동차 회사를 지리자동차가 2010년 인수를 했다. 그 당시에 볼보의 경영상황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지만 지리자동차에 자금수혈을 받고 볼보는 글로벌 시장에서 실적 면에서도 좋은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돈이 많아 잘 사는 것만 아니라, 경영도 잘 하고 있다는 것이 지리자동차의 성장 비결이다. 볼보 인수 당시 지리자동차의 맞상대는 현대자동차였다. 운명의 장난처럼 볼보 인수 이후 지리자동차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고, 현대차를 거의 따라 잡으려고 한다.

이후 지리자동차는 말레이시아 국민차 ‘프로톤’을 인수했고, 미국의 기업인 ‘플라잉카’(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인수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약 10조원을 들여 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 지분 약 9.7%를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기업의 추격을 막을 현대차의 대응 방법은 무엇일까? 현대차에는 세계적인 자동차 선도기술도 있다. 전기차와 경쟁 중인 수소자동차의 경우 현대차를 포함해 도요타, 혼다 등 독자 생산능력을 가진 곳은 전 세계 3곳 뿐이다. 수소차 상용화에 있어서 현대차가 가장 앞서고 있다. 수소차 인프라만 잘 마련되면 전 세계 선두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현대차가 위기를 극복할 결정적인 원동력을 확보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라는 것은 순간순간 기술과 판매와 마케팅에 의해 엎치락뒤치락하는 냉혹한 경주와 같다. 현대차가 지금 투자하고 승부수를 걸어야 할 것은 바로 내년이나 내후년이 아니라, 5년 뒤 10년 뒤 현대자동차가 달릴 트랙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장기적인 계획만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선두진영을 놓치지 않고 롱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중국기업들이 그걸 롤모델 삼아 승부를 걸었고 지금 선두진영으로 급속도로 따라들어오고 있다. 현대의 속도라는 신화가 다시 시작되려면, 이를 교훈 삼아 새로운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이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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