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마음 꿰뚫어‘패스트 패션’다크호스 부상
‘파격 가성비 발굴’이 새 10년 견인차

‘경기가 침체된다’고 하면 가장 직격탄을 맞는 산업이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일단 패션업계를 손꼽는다. 패션은 소비트렌드에 있어 약간의 과시욕망을 자극하는 산업이기에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지면, 바로 소비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패션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저성장 침체에 빠진 패션시장 속에서도 SPA 브랜드들은 전체 시장과는 반대로 성장 기조를 계속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SPA 브랜드의 시장 추이를 보면 2008년 5000억원에서 2010년 1조2000억원을 달성하더니 2014년 3조2000억을 돌파하고 지난해에는 3조7000억까지 계속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약 7.4배 성장한 것이다.

SPA는 영문명으로 ‘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다. 우리말로 요약하자면 ‘매우 빠르게 유통되는 의류’라고 보면 되는데, 미국의 패션브랜드 ‘갭’이 지난 1986년에 선보인 사업모델로 의류기획·디자인, 생산·제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제조회사가 맡는 의류사업을 말한다.

또 다른 한국 패션시장의 특징으로는 국내에는 이들 SPA 브랜드의 격전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글로벌 브랜드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자라, 유니클로, H&M 등 SPA 전문 브랜드가 한국의 주요 상권마다 진을 치고 패션 피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들 SPA 브랜드를 이른 바 ‘패스트 패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햄버거, 피자 등 패스트 푸드와 같이 사람들이 빠르게 소비하고 한번 소비하면 반복적으로 찾게 되는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한국의 소비자만큼 유행에 민감하고, 빠른 변화를 즐기는 특성이 글로벌 SPA 브랜드에게는 상당히 좋은 조건인 것 같다.

글로벌 SPA 브랜드의 격전지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저성장 소비시장에서도 성공하고 있는데는 몇가지 결정적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일단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다른 브랜드와 대비하면 절반 가격 이하로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가성비’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성비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매력과 세련미를 SPA 브랜드가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1, 2주 간격으로 매장의 제품을 교체하며 유행을 따라잡는 유통방식이기에 불황속에서도 약진하는 패션 브랜드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글로벌 SPA 브랜드 중에 한국 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유니클로의 사업 전략을 살펴보자. 유니클로의 상품군을 살펴보면 몇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단 유니클로라고 말하면, 히트텍, 에어리즘, 후리스, 경량패딩처럼 이른바 ‘스테디셀러’들이 다양한 제품군을 형성하고 있다. 계절만 되면 사람들이 늘상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된다. 바로 그 스테디셀러 위에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패스트 패션’ 상품들이 시시각각 나온다. 소비자를 위한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명 디자이너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자주한다. 여기서 유명 디자이너라고 하면, 럭셔리 브랜드와 연관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다. 이들과 작업한 제품은 론칭 몇시간도 안돼 순식간에 매장에서 다 팔려나가면서 사람들의 관심도를 확 끌어올리게 된다. 유니클로만큼 한국 SPA 시장을 잘 이해하고 공격적인 마케팅과 기록적인 성장을 하는 브랜드는 찾아보기가 힘든데, 이미 2015년 국내 단일 패션 브랜드로는 최초로 1조원을 돌파해 현재까지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스파오의 콜라보 완판 행진
글로벌 SPA 브랜드의 격전지이자, 치열한 선두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시장 환경 속에서도 국내 최초 토종 SPA 브랜드인 ‘스파오’(SPAO)가 선전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최근 스파오가 패션시장에 빅 히트를 친 뉴스부터 먼저 소개를 하자면, 지난 9일 스파오가 선보인 ‘스파오 해리포터 콜라보레이션’ 상품이 오프라인 매장 오픈과 동시에 2시간 만에 전국적으로 완판을 기록했다. 이때 팔려나간 물량만 25만장이라고 하는데, 이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전부터 미리 줄을 선 사람들로 서울의 주요 매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한국 패션업계에서 이러한 이슈 몰이는 글로벌 브랜드 말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스파오는 2009년 이랜드그룹이 론칭한 SPA 브랜드인데, 사실상 한국 패션기업 중에서 생산, 제조, 유통, 판매 과정을 일체화하는 SPA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 곳은 이랜드그룹 말고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랜드그룹은 로컬 브랜드로 시작한 저력 있는 기업으로 그 당시에 유통망과 제조 노하우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스파오라는 알짜 브랜드를 론칭해서 키워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특히나 2013년 14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스파오는 2017년에 3200억의 매출과 200억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게 된다. 그간 스파오의 연 평균 성장률은 20%가 넘는다고 한다. 최근 5년간 패션업계의 성장률이 2%가 안 된다고 하니, 토종 브랜드인 스파오가 얼마나 무섭게 성장하면서 SPA가 주도하는 국내 패션업계의 지형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이랜드그룹은 잦은 인수합병(M&A)으로 한때 경영위기까지 빠졌던 곳이었는데, 그 이랜드그룹을 다시 경영정상화를 시켜준 고마운 효자 중 한곳이 바로 스파오라고 한다.

스파오가 왜 인기일까? 그것은 영화 시장처럼 매번 대형 히트작을 계속 터트리기 때문이다. 일부 충성고객들이 없어서 못 샀다고 하는 일명 ‘짱구 파자마’ 같은 것도 대표적인 히트상품이다. 이 제품은 지난해 1차 판매할 때 30분 만에 완판이 됐고, 이어 한달 뒤 2차 판매할 때는 2시간 만에 완판 행진을 기록하게 된다. 파자마 단일 품목만 4만5000장을 팔았다고 하니, 그깟 파자마가 뭔 흥행이냐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이슈를 만들어냈다.

스파오가 기존에 대중적인 콘텐츠와 콜라보 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세일러문과 콜라보레이션한 상품도 초기 물량만 2시간만에 2만5000장이 완판됐고, 배우 김혜자와 콜라보한 ‘혜자 경량 패딩’도 엄청난 이슈 몰이를 하면서 올해 겨울에도 관련 상품이 인기몰이를 할 정도로 스테디셀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단순 깜짝 이벤트를 넘어 꾸준히 인기를 끄는 상품군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눈여겨 볼 점이다.

어찌됐든 스파오의 콜라보 전략은 스파오만의 독특한 방식은 아닐 것이다. 이미 국내 SPA 브랜드는 모두 구사하는 전략이다. 특히나 유니클로는 마블, 디즈니와 같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과 손을 잡고 관련 상품을 쏟아낸다.

앞으로 10년의 과제는?
그런데 왜 스파오의 콜라보 제품이 사람들에게 더 인기를 끌까? 또 글로벌 SPA 브랜드도 많은데 왜 하필 토종 스파오를 찾게 되는 걸까? 일단 그 질문의 첫 답을 보려면, 매장에서 찾아야 한다.

스파오에는 ‘데일리 시트’라는 게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매장 직원들이 서로서로 소비자들의 동향 정보를 주고받는 보고서다.

오늘은 주로 어떤 제품이 많이 팔렸다든지, 어떤 제품을 원하는데 재고가 없다든지, 어떤 제품에 컴플레인이 들어왔는지 등 매일매일 축적되는 소비자들의 현장 반응이 데이터화되고 이것은 실시간 스파오의 디자인실로 연결된다. 이것이 바로 수일 내에 제품으로 만들어져 매장에 입고가 된다.

이것이야 말로 패스트 패션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와 같이 아래에서부터 각종 의견을 수렴해서 디자인실이 보고를 받고 제품 양산을 결정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SPA 브랜드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스파오가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는 전략 중에 또 하나는 매장마다 책임경영과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파오에서는 점장이 본사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관리만 하는 게 아니라, 점장이 의류의 배치나 수요예측과 심지어 가격까지 제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점장 책임제’라는 독특한 경영방식을 쓰고 있다. 점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점장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스파오는 혁신을 이뤄내게 된 것이다.

스파오 브랜드도 론칭 10년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계속 성장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유니클로의 최근 변화부터 살펴보자. 유니클로의 자매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GU’가 지난 9월 한국에 상륙했는데, 역시 새로 진입한 SPA 브랜드다. 청바지 가격이 990엔(약 9900원)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제품 가격이 5000원에서 1만5000원 사이라고 하니, 젊은 친구들이라면 가격 때문이라도 찾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들었다. 이미 일본에서 이러한 상품성과 전략이 검증됐다는 점이 무서운 것이다. GU는 확실히 SPA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가성비로 승부하는 다크호스다. 

스파오 입장에서 이러한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까? 이미 국내 패션시장은 고가의 럭셔리 시장과 중저가 SPA 시장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고착화되고 있다. 스파오는 SPA 시대에 잘 적응한 토종 브랜드로 성공했다. 이제는 SPA 시대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SPA 브랜드가 돼야 할 것이다. 유니클로가 GU와 같은 서브 브랜드로 새로운 저가 브랜드 시장을 개척하듯이, 스파오도 전체 시장을 압도할 만한 새로운 도전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파오의 다음 10년의 향방은 바로 여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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