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회장, 순혈주의 깨고 외부 전문가 영입
‘3M DNA’접목, 혁신 가속도

지난 한해 재계 오너 리더십 변동 중에 가장 큰 이슈는 LG그룹일 것이다. 구광모 LG 회장이 취임식도 없이 회장으로서 첫 공식 업무를 조용히 시작하면서 LG의 4세 경영체제가 가동됐다. 구광모 회장은 6월29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LG 대표이사 회장에 올라섰는데, 지난 5월 구본무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만 40세의 젊은 구광모 회장이 4세 경영체제로 LG그룹을 갑자기 이끌게 된 것이다.

당장 160조 매출의 LG그룹의 72개 계열사를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된 구광모 회장을 보면서 그가 어떻게 선대 회장의 경영 방향을 계승해 발전시킬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6월 취임한 구광모 회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특별수행원 참가 이외에 공식적인 행사를 갖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이는 아무래도 회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계열사 경영현안과 업무 파악에 힘을 쏟는 시간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이 아닌가 싶다.

LG그룹 부회장단의 변화 시작
지난 7월16일 구광모 체제 첫 인사를 단행하는데, 하현회 LG 부회장이 LG유플러스 대표를 맡고 권영수 부회장이 LG 대표로 새롭게 자리를 옮기는 이른 바 ‘원포인트’ 교체 인사를 지시한다. 이것은 구광모 회장이 LG그룹의 새로운 2인자로 권영수 부회장을 곁에 둔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예정대로 11월 말에는 부회장단 인사가 큰 폭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40세의 그룹총수인 구광모 회장이 권영수 부회장을 임명한 이후 향후 부회장단 인사 변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조치를 지난 9일 내놓으면서 다시 한번 LG그룹 안팎으로 여론이 들썩였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라고 할 수 있는 LG화학의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다국적기업 3M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을 내정하면서 재계의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신 내정자는 내년 1월 출근을 시작하고 3월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LG그룹이 전통적인 순혈주의를 깨고 외부 인사를 영입한 것은 조직의 체질을 혁신적이고 개방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구광모 회장의 경영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월까지만 해도 LG그룹에 40세 총수 시대가 개막하면서 구광모 회장을 중심으로 기존 부회장을 맡고 있는 6명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견고해 질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구광모 회장이 하루아침에 중앙집권적 경영권을 확보하기보다는 이들 부회장단 전문경영인들과 시너지를 내면서 자연스럽게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걸로 해석할 수 있었다.

6명의 부회장은 앞서 설명한 권영수 LG 부회장을 비롯해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등으로 주요 계열사별 현장경영을 맡길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연말이 다가와 뚜껑을 열어보니 신학철 수석부회장이 LG화학 부회장을 내정되면서 앞으로 이어질 부회장단 인사에서도 나이, 출신 등의 형식을 따지지 않는 인적 쇄신이 이어질 것으로 재계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혁신기업의 리더가 되다
앞서 언급한 대로 LG화학은 전통적으로 내부 순혈주의에 따라 LG맨들을 수장 자리에 앉혔다. 말 그대로 전문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건 LG화학 1947년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왜 외부 영입이 화제의 도마에 올랐는가 새삼스럽게 여길 수도 있지만, LG그룹의 대부분의 계열사 수장으로 외부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것은 정말 한 손에 꼽을 정도다. 2004년부터 LG생활건강을 이끄는 차석용 부회장, 2010년 LG유플러스를 맡았던 이상철 전 부회장 등이 각각 해태제과 대표와 KT 대표를 맡다가 LG로 영입됐으니, 신학철 부회장의 영입은 이번이 3번째가 되는 것이다.

구광모 회장이 신학철 부회장 선임으로 그룹에 알리는 메시지는 앞으로 경영의 모토는 ‘안정’이 아니라 ‘혁신’ ‘글로벌’이라는 걸 읽을 수가 있다. 이번에 신학철 내정자를 영입하기 위해 구광모 회장이 직접 발품을 팔며 스카웃 제의를 했다는 것이 알려진 내용이다. 일단 구광모 회장이 2009년~2011년까지 미국 뉴저지법인에 일할 때 3M의 혁신적인 사업과 글로벌 확장성을 눈으로 확인했고, 한국인 출신 신학철 수석부회장을 눈여겨봤다는 것이다. 그는 3M의 차기 회장 후보로 지목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니, 구광모 회장이 그를 LG화학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신학철 내정자가 몸담고 있는 3M이 어떤 기업인지를 알면, 구광모 회장이 추구하는 LG화학의 미래상을 그릴 수가 있을 것이다.

3M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기업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고 있는데, 재미난 사실은 100년이 넘는 업력 속에서 끊임없이 주력 사업의 방향을 혁신했다는 점이다. 3M은 1902년 광산업체로 창업했지만, 이후 연구개발에 주력해 글로벌 혁신 제품을 시장에 대거 쏟아냈다. 1930년대 만든 ‘스카치테이프’는 접착테이프의 보통명사가 됐다. 그리고 ‘포스트잇’은 20세기 세계 10대 히트상품으로 꼽힌다. 3M의 지난해 매출은 약 35조6000억원으로, LG화학 약 25조7000억원 보다 1.5배 정도가 많다.

신학철 내정자는 3M에서 근무하며 2인자 자리에 오를 정도로 샐러리맨의 신화를 기록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1957년생으로 충북 괴산군 출신인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1978년 방산 업체인 풍산금속에 엔지니어로 입사하면서 평범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듯했었다. 그러다가 1984년 한국3M으로 일터를 옮긴 뒤 소비자사업본부장을 거쳐 1995년 3M필리핀 사장에 오르게 되면서 그의 인생이 달라지게 됐다.

그는 3M 평사원 입사 20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 본사 해외 사업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에 올랐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데, 수석부회장 직급은 제임스 맥너니 3M 회장 바로 아래 직급에 해당하는 높은 자리다. 그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업무 준비를 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가장 먼저 출근해 8시간 근무시간을 15분 단위로 쪼개며, 다양한 업무와 미팅을 이어가는 등 3M 안에서도 ‘혁신의 아이콘’‘혁신 전도사’로 통하고 있다.

신 내정자는 그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나 강연회를 통해 얼굴을 종종 알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기업의 혁신이 중요함을 강조해 왔다. 신학철 내정자가 외부 출신이고 LG화학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사업체에서 일한 것은 아니지만 소재·부품 사업 전반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점은 LG화학의 다음 성장엔진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한 리더십이 아니었나 싶다.

세계적 화학기업으로의 도약
LG화학이 신학철 내정자를 영입하는 것은 근본적인 성과 및 실적에 위기가 찾아와서는 결코 아닐 것이다. 일단 LG화학은 실적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이 순항 중이다. 현 박진수 부회장 체제 아래에서 매출 28조원을 이룩하며 세계 화학기업 ‘톱10’으로 거듭나는 등 어찌됐든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LG화학은 사업구조의 고도화를 기치로 내걸고 에너지, 물, 바이오·소재 등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왔다. 차세대 먹거리로 키워온 전기차 전지 사업도 혁신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그간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가 결실로 나타나야 하는 아주 중차대한 시기가 도래하면서 이를 확실히 이끌 리더십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석유화학도 다시 한번 혁신하고 글로벌 경영시스템을 도입해 수준을 격상시켜야 할 중요한 시기다. 이래저래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신학철 내정자는 누구보다 글로벌 기업에서 쌓은 역량과 경험으로 LG화학을 글로벌 혁신기업으로 도약시킬 적임자로 보인다. 그가 3M에서 쌓아온 글로벌 인맥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자동차 경량화 신소재 관련 글로벌 사업자와의 파트너십 구축을 강화해야 하는데 신 내정자라면 충분히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신학철 내정자가 과거에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말한 인생 좌우명이 있다. ‘치기언이과기행(恥其言而過其行)’이다. 자신의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뜻이다. 구광모 회장과 함께 LG화학의 새로운 부회장 리더십이 태동하고 있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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